매일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2020년 부안에 있는 작은 펜션으로 첫 집필 여행을 다녀온 뒤에 종종 어딘가에 가서 글을 쓰고 오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런 마음이 무색하게 여러 가지 사정이 생겨 좀처럼 두 번째 집필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시간만 흘렀다. 2024년 초에야 강화도에 있는 책방 시점에 머물다 왔지만 글을 쓰기에 하루는 찰나였다. 전처럼 조금 더 오래, 가능하면 4박 5일 여정으로 떠나고 싶었다. 이동을 제외하고 온전한 3일이 있어야 어느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은 해 여름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다시 떠날 일정을 잡았다. 추석 연휴 기간에 세 번째 집필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어디로 떠날지가 고민이었다. 부안에 다시 가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전에 묵었던 펜션이 리모델링 중이었다. 그리고 끼니를 해결하기 편한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부안에 있는 펜션은 훌륭한 아침을 주긴 했지만 점심과 저녁은 알아서 해결해야 했는데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식당 단 한 개도 없었다. 차로 10분 정도는 이동해야 작은 식당이 몇 개 있었고 20분 정도는 가야 선택지가 많아졌다. 차를 타고 다녀온 식당에서 먹은 백합죽이 맛있긴 했지만 그 식사가 즐겁고 편한 기억으로 남아있진 않다. 집필 여행이라고 정해둔 기간에는 차를 타지 않고 걷고만 싶었던 것 같다. 차에는 서울의 소란스러운 기억과 치열한 생활감이 같이 실려온 것만 같았다.
숙소 예약 어플에서 머무를 만한 곳을 물색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식당이 여럿 있는 곳은 행정구역 상으로는 시골인 것 같아도 사진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더 이상 시골 마을에 있는 펜션이 아니었다. 자연에 둘러싸여 오직 글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은 식당과는 멀었다. 어플 검색 조건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다 문득, 템플스테이가 떠올랐다. 절은 대부분 산속에 있었고 템플스테이를 하면 삼시 세끼 밥을 준다. 체험형 템플스테이는 예불이나 명상 체험, 다도 체험 같은 정해진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지만 휴식형 템플스테이는 프로그램 참여가 자율이다. 절에 머무는 모든 시간이 자유 시간인 것이다. 이때 글을 쓰면 완벽한 집필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딴 절에서 머물며 눈 뜨면 글을 쓰고 공양 시간에 맞춰 밥을 먹고 경내를 걷거나 근처 산길을 거니는 나날. 완벽해 보였다.
템플스테이는 보통 1인실이 아닌 다인실 위주다. 템플스테이의 목적이 불교 체험이고 불교의 덕목 중 하나가 승가에 대한 존중, 즉 공동체에 대한 존중이기 때문에 공동체 생활을 장려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마음 편히 글을 쓰기 위해서는 혼자여야 했다. 그래서 1인실을 제공하는 절을 골라야 했고 이 부분이 조금 어려웠다. 홈페이지에서 사찰 검색을 할 때 1인실이 있는지 여부를 필터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찰 정보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오랜 작업 끝에 마음에 드는 절 세 곳을 고를 수 있었다. 경남 하동에 있는 쌍계사와 전남 구례에 있는 연곡사, 강원도 동해에 있는 삼화사였다. 예쁘기로 유명한 쌍계사와 고향인 전주에서 가까운 연곡사가 더 끌렸지만 결국 집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운 삼화사로 정했다.
삼화사는 두타산에 있는 무릉계곡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에서 출발하니 동쪽으로 한없이 차를 몰아야 했다. 동해 IC를 빠져나와 서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무릉계곡 표지판이 보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무릉계곡 옆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니 오른쪽으로 무릉반석이 보였고 더 올라가서 작은 다리를 건너니 삼화사가 보였다. 삼화사 뒤편 살짝 높은 지대에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는 별채가 보였다. 내가 배정받은 방에는 창문이 하나 있었고 창을 통해 눈에 들어오는 건 산, 회색 바위와 초록색 나무와 하얀 안개를 품고 있는 산뿐이었다. 바로 앞을 지나고 있는 계곡물은 보이지는 않아도 쏴아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흘렀고 개굴개굴 개구리 소리와 찌르르르 풀벌레 소리가 끊길 듯하다가도 이어졌다. 무릉계곡에서 노닐었다는 신선이 여기에도 머물렀던 게 분명했다.
도착한 이튿날부터 시간에 맞춰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것 외에는 온전히 자유로웠다. 방에는 작은 나무 책상이 있어서 글을 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구석에 있던 책상을 창문 아래로 옮겼다. 글을 쓰다 고개를 들면 산이 보였다. 산을 보다 글을 쓰고 글을 쓰다 산을 봤다. 모닝 페이지도 쓰고 글쓰기 모임에 공유할 글도 썼지만 가장 쓰고 싶었던 소설은 이번에도 진전이 없었다. 이건 삼화사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였다. 당시 나는 내 글을 어떤 방향으로 고쳐 쓰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이렇다 할 결과물을 만들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템플스테이가 글쓰기에 최적화된 여행이라는 생각은 확고해졌다. 도시의 소음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짝에서 끼니 걱정 하지 않고 하루 종일 혼자 있을 수 있는 곳. 흔치 않을 것 같지만 전국에 100군데 넘게 있는 곳. 다음 집필 여행도 어딘가에 있는 절로 떠날 것 같다.
템플스테이: https://www.templestay.com/
템플스테이 가격은 1인실 기준 1박에 7~12만 원이다. 매우 합리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