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소설을 쓸 때, 작법서를 읽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전에 쓴 「글쓰기에 관한 책」에서 글쓰기 책이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책에서 알려주는 대로 비문을 고쳐 쓰고 너무 긴 문장을 짧게 나눠보고 반복적으로 쓴 단어나 표현을 바꿔보니 이전에는 덜커덕거렸던 문장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정보를 전달하는 글이나 주장을 펼치는 글을 쓸 때는 기본적인 작법서에 나오는 내용만 적용해도 충분히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글에서 중요한 것은 글에 담긴 정보의 질이고 글쓴이가 펼치는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가이다. 사람들이 『총, 균, 쇠』가 좋은 책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제레드 다아아몬드가 쓴 문장들이 유려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작법서는 이런 글을 쓰고 싶지만 문장력이 부족한 작가에게 유용하다.
하지만 나는 정보를 전달하는 글이 아닌 소설을 쓰는 법이 배우고 싶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을수록 이런 책을 수백 권 읽는다고 해도 좋은 소설을 쓰는 법은 배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작법서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무언가는 어디에서 배울 수 있을까?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애당초 부족한 무언가는 무엇인가?
작법서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작법서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글쓰기에 관한 책은 많았지만 소설가가 쓴 소설 쓰는 방법을 담은 책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헤르만 헤세나 제인 오스틴이 작법서를 남겼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아마도 이들의 말이 원칙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들은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위대한 작가들이 쓰는 법에 대해 침묵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처럼 쓰는 방법은 규칙이나 원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특정 방법을 따라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마음을 배우는 것이고, 글을 쓰는 마음에 대해서는 가르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것 아닐까. 작법서를 쓴 소설가는 찾지 못했지만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는지를 이야기한 소설가와 시인은 꽤 많이 찾을 수 있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는 에세이집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에쿠니 가오리로 추정되는 사람)은 건강검진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간다. 의사는 검진 결과 몇 가지 문제를 찾았다며 몸 어딘가에 스노보드, 소형 보트, 비행기, 눈사람, 연인 같은 수많은 것들이 걸려 있다고 알려준다. 당신이 온 세계의 사소한 것들을 온몸으로 주워 모은 것 같다는 의견도 건넨다. 걱정하며 진단 결과를 듣던 ‘나’는 의사의 마지막 말을 듣고 무언가를 이해했다는 듯 “그건 어쩔 수 없어요. 나는 소설가니까.”라고 말한다. 에쿠니는 소설가란 온 세계의 사소한 것들을 주워 모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게 오래 품었던 것 중 일부가 소설로 태어나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김영하 작가가 어디선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작가는 어느 정도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말씀하시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좋은 마음이 아닌 다른 마음을 품고 쓴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미처 몰랐다.
마루야마 겐지가 말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는 도를 닦거나 무술 수련을 하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자세 같다. 마루야마는 소설을 쓰고 싶으면 교우 관계를 정리하라고 조언한다. 먹는 것과 입는 것 등 생활 규범을 엄격하게 통제하며 오직 글만 쓰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마루야마는 시골에 살면서 매일 비슷한 검은색 옷을 입고 하루 한 끼 식사를 하며 글을 쓴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릴케는 시인이 되고 싶어 조언을 바라며 편지를 보내온 카푸스에게 시를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나는 글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라고 한다. 자연에 다가가라고 이야기한다. 야콥센의 책들을 읽어보라고 한다. 마음속에 있는 모든 문제들을 살아 내 보라고 한다. 고독을 사랑하라고 한다. 왜 시를 쓰는 방법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걸까 싶었지만 이런 삶을 사는 것이 릴케가 생각하는 시를 쓰는 방법인 것 아닐까.
작법서를 읽으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정돈된 꽃다발의 만드는 일인 것 같다. 꽃의 잎과 가시를 정리하고 크기와 색을 고려해서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는 일. 꽃 사이사이가 비어 보이지 않도록 초록빛 식물을 채워주는 일. 이런 방법들을 먼저 배운 다음 꽃을 찾아 나설 수도 있지만, 결국 꽃이 있어야 꽃다발을 만들 수 있다. 릴케를 비롯한 작가들이 말한 마음과 태도가 꽃을 키우는 방법일 것 같다.
예쁘고 풍성한 꽃을 만들고 싶다. 수 없이 많이 만들고 싶다.
어느 정도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사소한 것들을 주워 모으고 싶다.
두문불출하며 오직 글만 써보고 싶다.
고독을 사랑하고 싶다. 마음속에 있는 모든 문제들을 살아보고 싶다. 자연 속에 살고 싶다.
좋은 소설을 쓰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모르겠다는 생각에 초조했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먼저 이런 마음을 배우고 싶다. 이런 태도로 삶을 살아내고 싶다. 이런 마음과 태도로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좋은 소설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마음과 태도를 가지는 것이 좋은 글을 쓰는 방법 아닐까.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김진준 옮김, 문학사상, 2005.
에쿠니 가오리,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김난주 옮김, 소담출판사, 2020.
마루야마 겐지,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김난주 옮김, 바다출판사, 2019.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2018.
스티븐 킹이 쓴 『유혹하는 글쓰기』가 유명한 소설 작법서라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