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역사를 바꾼 열두 가지 사건 사고. 열 번째 이야기
항공 여행은 두려움이 바탕이 된 설렘으로 인해 묘한 기분을 선사한다. 여행은 기쁘지만 하늘을 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이륙 전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한다. 실제로 해외여행이 드물었던 80년대에는 승객들이 항공기에 탑승해서 혹시 모를 추락에 대비해 낙하산을 찾았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비행기 낙하산 이야기는 당시 유행했던 웬만한 우스갯소리 단골 소재였다.)
사실 인간이 하늘로 진출한 것은 고작 백 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똑같이 땅에서 떨어지지만 배를 타는 것과 비행기를 탈 때 느끼는 공포는 전혀 다르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나도 물에선 손과 발로 헤엄을 쳐서 살 수 있지만 하늘에서는 어떤 행동을 해도 다른 결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땅에서 발이 떨어진다는 공포는 생존을 위해 우리 DNA에 새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끔찍한 사고를 통해 알게 된 생존 비책
그럼 추락하는 항공기에서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수천 미터 상공에서 지상으로 추락한 여러 사고에서도 생존자는 나타난다. 2013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 중 기체가 두 동강이 날 정도로 참혹했던 아시아나 214편 사고에서 사망자는 단 세 명이었다. 2002년 중국국제항공 129편 여객기가 착륙 중에 김해 국제공항 인근 돛대산에 추락했다.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항공사고 중 가장 최악으로 기록된 이 사고에서, 항공기 형태가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심각했지만 1/5이 넘는 탑승객이 목숨을 건졌다. 커다란 항공사고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비결은 뭐였을까?
바로 Brace Position이라 불리는 충격방지자세 덕분이다. 이 충격방지자세가 전 세계 항공사의 공통된 매뉴얼로 적용된 건 1989년 영국 케그워스 항공사고 이후부터다. 당시 브리티시 미들랜드 국제항공 소속 92편은 런던 히드로 공항을 이륙한 지 30분 만에 엔진에 이상이 생겨 급히 인근의 케그워스 이스트 미드랜드 공항에 비상착륙을 시도했다. 이때 조종사가 문제가 있는 엔진이 아닌 다른 엔진의 작동을 멈춰버리는 바람에 항공기는 활주로 바로 앞 고속도로 제방에 추락하고 만다.
항공기가 산산조각이 났을 정도로 끔찍한 사고였지만 당시 탑승객의 60% 이상이 생존했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충돌 10초 전, 기장이 기내 전체에 비상착륙 충격에 대비하라고 지시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높은 생존율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이들 대부분이 골반 및 하체 부위 골절 등의 부상을 입었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 기록적인 생존율의 비밀과 생존자들의 부상 원인을 밝히기 위해 모였다.
그 결과, 충격에 대비하라는 기장의 지시에 따라 승객들이 머리를 숙인 사실이 생존율을 높였으나, 적절하지 못한 자세가 하체 부상을 야기한 것이 밝혀졌다. 이 사고 이전까지는 항공사마다 제각각 다른 충격방지자세를 운영했기에 안전성이 입증된 표준화된 모델 도입이 추진되었다.
스칸디나비아항공 751편의 기적
1991년 12월의 추운 겨울날, 스웨덴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을 출발해 덴마크 코펜하겐을 거쳐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하는 스칸디나비아항공 751편에서 기적이 발생했다. 알란다 공항에서 제빙작업을 마치고 이륙한 지 25초 만에 엔진에서 폭발음이 들리며 기내로 연기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폭발 1분 뒤, 앞선 문제에 채 손쓸 틈도 없는 사이에 두 엔진 중 하나가 작동을 멈췄고, 다시 1분 뒤 나머지 엔진도 정지해버렸다. 이륙한 지 단 3분 만에 항공기에 장착된 모든 엔진이 다운되어 버린 것이다. 기내 전기를 공급하는 엔진 기능이 정지되니 기내 전자장치를 비롯한 제어시스템도 먹통이 되었다. 죽음의 사신이 눈앞에 보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기의 순간이었다.
기장은 알란다 공항으로의 회항을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인근 숲에 비상착륙을 시도했고, 객실승무원과 승객들에게는 착륙 충격에 대비하라고 전했다. 객실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충격방지자세를 취하도록 지시했다. 항공기는 숲의 나무와 부딪히면서 인근 벌판에 추락했고 동체는 세동강이 나버렸다. 하지만 승객과 승무원 단 한 명도 목숨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 비슷한 사고에서 대부분의 탑승객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고에서는 충격방지자세 덕분에 생존율 100%라는 기적이 펼쳐진 것이다.
끝나지 않은 논쟁
충격방지자세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와 논쟁이 진행 중이다. 충격방지자세가 효용이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부터 어떤 자세가 적절한가에 대한 방법론적인 접근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다. 자동차의 경우는 실제로 충돌 테스트를 하면서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충격방지자세의 효용성을 검증하고자 항공기를 가지고 충돌 테스트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미국 항공청인 FAA는 별도의 테스트 셀(TEST CELL)을 구비해서 보다 효과적인 충격방지자세를 권고하고 있고, UN 산하의 ICAO에서도 전문 연구기관을 설립해 충격방지자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AIRBUS와 BOEING 같은 항공기 제작사도 각자 나름의 충격방지자세에 대한 기준을 두고 있다. 하지만 저마다 각기 다른 자세가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좌석을 만드는 전문 제작사에서는 승객의 충격방지자세를 염두하지 않은 상태에서 좌석의 충격 안전성을 테스트하는 문제로 인해 아직 전 세계 표준은 세워지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고 충격방지자세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추락하는 항공기에서 승객이 머리를 숙이고 자세를 낮추는 것이 생존성을 높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사고를 통해 분명하게 배웠다.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승객의 생존성을 높일 수 있는 자세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비상시 이를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승무원의 훈련을 강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