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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군 Aug 08. 2021

가지 않은 길.

초임 장교의 업무 딜레마

최근 이국종 외과의사가 '골든아워'라는 책을 읽었다. 산산이 부서져 가면서도 한국에 중증외상센터를 만들어 보고자 발버둥 치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답을 모르는 것이면 차라리 나을  있다. 답을 손에 쥐고서 단순히 현실적 영역에 발이 묶인다는 것은 정말 속이 썩어가는 심정일 수밖에. 그의 글을 보면서 로버트 프로스트가  '가지 않은 '   구절이 떠올랐다.

<이국종 교수의 저서 '골든아워 1,2권>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남들이 가지 않을 길로 발길을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모험적인가. 얼핏 보면 굉장히 멋있는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현실 감각을 가지고 다시 보면 그 길을 바로 '고생길'이다. 이국종 교수의 고난과 번뇌로 다 여기서 비롯된다. 남들이 하지 않을 걸 함으로써 말이다. 군대라고 다를까? 군대도 한국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한국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선임의 충고

장교들은 OBC라 불리는 초군반 훈련 기간 중에 본인이 앞으로 근무할 부임지에 방문할 기회를 갖는다. 여기서 방문은 잠깐 얼굴 비추고 인사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동안 그 부대에서 먹고 자면서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지휘실습' 훈련이다. 지휘실습 훈련 전에 초임장교들은 저마다 국방부 인트라넷을 뒤져서 근무지의 직속상사들에게 전화를 돌린다. 얼굴 한번 안 본 사람들에게 전화로 할 말이 뭐 있겠나. 대개 그저 잘 봐달라는 청탁(?) 밖에는 없는 무의미한 짧은 통화로 끝난다. 개중에 운이 좋은 친구들은 자기 학교 직속선배가 근무 중이거나 한 다리 건너 아는 지인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들과 통화하면서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로 전화에 웃음이 가득한 것으로 보면서 주변 동기들은 새삼 부러운 눈빛을 보낸다. 나도 그런 부러운 눈빛을 보내는 이들 중 하나였다.

내가 가는 부대는 동원사단으로 상비사단에 비하면 병력은 10% 남짓에 불과하고 간부인원도 편제 대비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내 바로 직속 상사는 소령 참모였고 바로 아래 정훈장교로 나와 2년 기수 차이가 나는 학군선배가 있었다. 부대 위치는 서울 근교라 지하철이 다니는 아주 좋은 여건이었다. 덕분에 다른 동기들이 기차를 타고 저 멀리 지방으로 갈 때 나는 혼자 더블백을 메고 지하철에 올랐다.

<군대 레토나 지프차, 에어컨은 안 나온다.>

약속한 지하철 역에 다다르니 선배가 지프차로 마중을 나왔다. 고작 초임장교에 지프차라니. 세상 이런 환대가 없었다. 운전병이 곁눈질로 새로오는 소위를 위아래로 훑었고 선배는 기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내가 지휘실습을 왔다는 사실은 바로 그의 전역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위병소를 통과한 지프차는 연병장에서 우리는 내려줬다. 이날 지휘실습온 9명의 초임장교는 사령부에서 사단장에게 신고가 계획되어 있었다. 바로 사령부로 향하지 않고 근무할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참모에게 인사도 해야 했거니와 아직 다른 8명이 다 부대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투병과 초군반 훈련은 대부분 남쪽 지방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서울로 오려면 기차를 타고 한참을 이동해야 했다. 반면 내가 교육받던 초군반은 경기도 성남에 위치해 있어서 도착시간이 일렀다.


사무실로 향하는 와중에 선배는 몇 가지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야, 너 눈 좋냐?"

"예, 시력 1.5 가량 됩니다."

선배가 약간 과장을 섞어 다시 물었다.

"와 너 눈 진짜 좋구나, 그럼 여기서 저기 있는 건물 보여?"

"예 잘 보입니다."

선배는 그 건물이 포병연대 본부라고 알려줬다.

"그러면 저기 입구 바로 옆이 연대 행정반인데, 창문 안으로 애들이 뭐하는지도 보여?"

왜 이런 것을 묻는지 도저히 가늠이 안됐다. 포병연대는 연병장을 가로질러 우리가 서있는 반대편에 있어서 상식적으로 사무실 안을 볼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아닙니다, 거기까지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게 니 앞으로의 군생활이야, 쨔샤."

선배는 아마 후임이 오면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던 듯했다. 그 앞의 전임자가 선배 본인에게 했던 농담을 나에게 대대로 이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선배는 농담 이후에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군 생활의 철칙을 말해줬다.

"야, 너의 안 보이는 군생활에 하나 팁을 주자면 여기서는 뭔가 새로운 걸 하려고 하면 안 돼. 어릴 적 교과서에서는 1%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개척자가 위인 일지 모르지만 여기서는 그런 사람을 또라이나 고문관이라고 불러. 남들이 하지 않은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굳이 그걸 내가 나서서 할 필요가 없어. 나서면 정 맞고 피곤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들도 말하지 않았나. 군대에서는 중간만 가는 게 최고라고. 그런 말의 연장선으로 생각됐다.

"그런데, 우리 참모님은 1%야. 앞으로 잘해봐."


1%의 비애

선배의 말을 틀리지 않았다. 우리 참모는 정말 1%의 사람이었다. 늘 새로움을 추구하고 변화를 꾀했으며 다른 결과를 내고자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늘 최상의 것이어야 했다. 짧은 군 생활이지만 이때의 경험은 그대로 뼈에 새겨졌다.

'한국사회에서는 절대로 새로움에 도전해서는 안된다'

여기에 삼성의 계열사 사장은 달팽이로 하나의 이론적 근거를 더했다. 이른바 '선두 달팽이 이론'이다. 점액을 뿜고 길을 내어 가는 달팽이 특성상 선두에 선 달팽이에 비해 바로 그 뒤를 따르는 달팽이의 점액 소모는 30%, 에너지 소모를 1/35만을 쓴다고 한다. 효율성의 극치다. 게다가 앞을 거의 못 보는 달팽이의 특성상 앞선 달팽이를 따라가는 것이 길을 잃지 않는 방법도 되지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미물인 달팽이마저 앞선 달팽이를 따라가는 건 다 이유가 있다.>

군대에서도 똑같다. 앞에서 했던 선례를 따르지 않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선두 달팽이를 자처하는 행위다.  가령 정신교육 강사로 새로운 사람을 초빙하는 것도 어렵다. 작년에 했던 사람을 올해 다시 불러하는 것은 쉽다. 한나절 거리 일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장병들에게 조금 더 좋은 강의를 주고자 평판과 호응이 좋은 새로운 강사를 섭외하려면 일주일짜리 업무가 된다. 이 사람을 왜 초빙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윗사람들을 이해시켜야 하는 게 가장 어렵다. 최소한 타부대에서 강의한 경력이라도 있으면 조금이나마 편한데 그마저도 없으면 맨땅에 헤딩이 불가피하다. 새로운 강사가 대적관은 어떤지, 강의 효과와 호응은 어떤지, 이번 주제와 적합한 인물인지 등등을 다 보고서로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만에 하나 문제가 생겼을 경우 책임을 나눌 수도 없이 혼자서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이렇게 고생을 하고도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야근만 늘어날 뿐이다. 그러면 자연히 손은 작년에 했던 보고서 파일을 꺼내 그 강사 연락처로 다시 전화를 하게 된다. 새로운 1%가 되는 건 너무도 고달픈 일이기 때문에.


간부로 군생활을 하면 이런 딜레마를 맞닥뜨릴 일이 잦다. 두 가지 길 중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 더 좋은 것임을 알고 있지만 선택지를 그곳으로 하기에는 주저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니 주저함이라기 보단 선뜻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가 전역하고 군대가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사회가 여전한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면 군대만 획기적으로 변했다고 기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군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중간만 가면 되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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