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은 급여에서 오지 않는다.
대선을 앞두고 여러 후보들의 수많은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병사 급여 인상도 그중 하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병사 월급 200만원"
"2030년까지 최저임금 수준으로 급여 인상"
"전역 지원급 1,000만원"
2030 남자들의 표심을 의식한 탓일까? 아니면 이제라도 국가에 헌신한 이들에 대한 보상을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군 징집으로 인해 청춘을 소비한 것에 대한 연민일까?
로마의 카이사르가 말했다. 모든 나쁜 제도도 처음에는 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고. 병사 급여 인상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우리는 지적해야 한다.
먼저, 병사 급여 인상은 모든 군대 관계자의 급여 인상을 촉발하여 국방비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병사만 급여 인상한다는데 무슨 말이냐 할 수 있는데, 군대 구조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군 조직에서 병사는 가장 하단부를 담당한다. 병사 위로는 부사관이 있고 부사관 위로 장교 그리고 그 위에는 장성이 자리한다. 피라미드 구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군대에서 가장 하단부의 급격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상층부로 전이된다.
예를 들어, 만일 병사들 월급이 200만원이 되면 병장의 바로 윗 계급인 하사의 월급은 얼마가 되어야 할까? 210만원? 220만원? 넉넉하게 250만원? 하사 월급은 250으로 정한다고 하자. 그런 중사는? 중사 위의 상사는? 계급별 급여 차이를 두지 않을 수는 없다. 지휘관보다 급여를 많이 받는 이등병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세계 어디에도 그런 군대는 없다.
지금도 신임 하사나 소위도 급여 200만원을 받지 못한다. 병사 월급이 200만원이 되면 신임 하사는 적어도 220만원 신임 소위는 250은 쥐어줄 수밖에 없다. 예상하지 못한 전체 군대의 급여 상승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군대에는 군인만 있는 게 아니다. 군인과 함께 근무하는 군무원과 공무직도 있다. 이들의 급여는 그대로 놔둔 채로 군인 월급만 올릴 수 있을까?
2017년 20여만원 하던 병사 월급이 20201년 60만원이 되었지만 군대 내 급여 인상 압박은 없었다. 당연하다. 최저임금을 한참 밑도는 급여이기 때문에 다른 직급과 직군에 급여 인상으로 전이될 요인이 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병사들의 급여가 최저임금에 다다른 순간, 국방부 전체 근무인원에 대한 급여 인상 압박은 현실화될 것이다. 국방부 공무원과 일반 공무원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는 곧 모든 공무원의 임금 인상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병사 급여 인상의 다른 부작용은 적정 수의 군 간부 인원 확보가 불가능해진다.
병사의 복무 기간은 18개월 간부는 출신마다 다르지만 단기 부사관은 최소 4년 , 장교는 최소 28개월이다. 병사에 비해 긴 복무기간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군 간부로 전역하는 경우, 별다른 사회적 혜택이나 안전망이 없다. 이들이 가지는 유일한 혜택은 의무복무 기간 중 병사보다 많이 받는 급여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병사 급여가 인상되는 경우 군 간부 지원에 대한 메리트가 없어진다. 생각해보라. 군대를 부사관이나 장교로 복무하면서 월 200만원 언저리 되는 월급을 받으며 3~4년을 복무할 바엔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1년 6개월 병사로 다녀오는 게 훨씬 이득이다. 단순히 계산하면 병사로 복무한 뒤 전역해서 2년 6개월을 편의점 알바를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병사 월급만 올리는 경우 군 간부 획득 문제가 가속화될 것이고 간부 급여를 같이 올린다고 하더라도 큰 폭의 상승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시기만 다소 뒤로 미뤄질 뿐이다.
우리나라 군대는 지금도 간부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간부가 100% 완편 되어 있는 부대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군대 내에서 간부 1명이 하는 업무량과 책임의 범위는 일반 병사와 비할바가 아니다. 그리고 전문성에서도 차이가 난다. 매년 국방개혁 과제로 '전군의 간부화'가 슬로건으로 제시되는 이유다. 저출산으로 인해 입대 자원 자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군 간부 비율을 높이는 것은 북한군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군 간부 비율을 높이는 것이다. 숫적으로 60만명을 유지할 수 없으면 질적으로 향상된 40만명을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병사 급여 인상은 군 간부로 지원할 유인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마지막으로, 나라에 대한 헌신의 대가는 돈으로 계산해서는 안된다.
돈은 어떤 행위에 대해 가장 쉬운 보상 방법이다. 세상에는 돈으로 보상하는 것이 적절한 때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떠한 숭고한 행위에 대해 돈으로 보상을 하는 경우 그 행위는 보상받는 돈의 값어치 정도로 평가절하받게 된다. 만일 안중근 의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공작 활동비로 매월 200만원 급여를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가 했던 모든 항일 투쟁이 한낱 200만원의 급여를 받고 한 행위에 그친다.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병사 월급 인상 이유가 촉발된 것은 사회적으로 군 복무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밝고 아름다운 2년을 국가를 위해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군 가산점은 위헌으로 폐지되었고, 군대를 다녀온 것은 한낱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군인을 지칭하는 단어는 '군바리'로 사회적인 존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럴 거면 돈으로라도 보상해라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날을 국가에 2년간 헌신한 보상액은 얼마가 적절할까? 지금처럼 월 60만원이 맞을까? 아니면 최저임금 수준이면 적당할까? 월 천만원을 준다면 그들이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달려갈 수 있을까? 안중근 의사는 월 1억을 받았기 때문에 손가락까지 잘라가면서 항일투쟁을 이어갔을까?
우리가 아는 답은 분명하다. 숭고하고 존엄한 가치일수록 돈으로 치환해서는 안된다. 2017년 20만원 받던 병사 급여가 2021년 60만원이 되었다고 해서 병사들의 자부심이나 만족도가 3배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급여를 동결하거나 더 낮추더라도 사회적인 보상과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 것에 대한 존경과 존중이 자리 잡는 다면 그 편을 더 선호할 것이다.
단순한 급여 인상이 아닌 국방의 의무를 다한 이들에게 사회가 어떠한 혜택을 주어야 할지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