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성 정책의 폐해
지난 대선 일이다.
대선 주자 모두 병사 월급 200만원을 주요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이때 글을 하나 썼다. 병사 월급이 200만원이 되면 대한민국 군대 기반이 흔들린다고.
엄청나게 많은 비난과 원색적인 댓글이 줄을 이었다.
이제 병장 월급이 150만원을 넘어 곧 200만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든 병사 월급 인상은 시대의 요구였기에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 군대의 구조를 보면 너무 성급한 정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간부가 사라진다>
군대는 병사 수에 못지않게 많은 간부로 이뤄져 있다.
하사-중사-상사-원사로 이뤄지는 부사관 계급
소위-중위-대위의 위관장교
소령-중령-대령 영관장교
그리고 소수의 장성급 장교가 군 병력의 약 1/3을 담당한다.
예전부터 군인은 돈을 잘 버는 직업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돈이 안되고 고된 직업으로 분류되는게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처음 초급 간부로의 유인이 크기 때문이다. 바로 병사와의 임금 그리고 지위의 차이다.
일반 병으로 입대할 때 30~40만원을 받는다고 할때 하사나 소위로 초급간부의 길을 선택하면 150~180만원 정도로 병사에 비해 3~4배 높은 급여를 수령할 수 있다. 이 점이 긴 복무기간과 힘든 훈련 그리고 높은 근무강도 등의 불이익을 감내하고서도 선택하는 큰 유인이 된다. 어차피 의무복무로 군대를 가야하는거 기왕에 갈 때 돈이나 벌어서 오자는 생각이 간무 모집의 높은 경쟁률의 주요 이유였고 높은 경쟁률 덕에 훌륭한 인적 자원을 선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간부가 된 이들은 군대에서 보낸 시간이 인생의 투자로 치환되어 자연스레 장기복무로 이어져 군대 허리를 튼튼히 했다.
그런데 병사 월급이 어느덧 하사 급여를 넘어서고 내년이면 소위 월급과도 큰 차이가 없어진다.
월 200만원을 받으며 18개월 복무할지 그와 비슷한 급여를 병사의 3~5년을 복무할지 선택의 기회가 있다면 어디를 고를 것인가?
전자는 계급은 낮지만 10개월 정도만 지나면 이제 중/고참급이 되어 군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어지고, 최근엔 휴대전화 사용도 가능해지고 병 기본권이 향상되어 부조리도 거의 겪지 않는다. 반면 후자는 계급은 놉지만 수많은 업무와 책임 그리고 야근과 당직근무 등 고된 업무 강도에 시달리고 70-80년대와 같은 계급에 따른 특혜도 거의 없다.
결과는? 육사의 조기 전역 신청률, ROTC 경쟁률, 부사관 모집률, 각 일선 부대별 초급간부 미보충 현황을 보면 금방 드러난다. 더 이상 젊은 이들에게 직업군인은 병사에 비해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닌 것이다.
<초급간부 처우 개선으로 해결이 될까?>
정부와 국방부는 초급간부 모집에 비상이 걸리자 초급간부 처우 개선으로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처우 개선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생각해보자. 가장 짧은 복무기간을 자랑하는 ROTC를 예로 들어보자. 28개월 장교로 근무하면서 월 200만원을 번다고 가정할 때 기대 수익은 약 5,600만원, 병사로 18개월 근무하면 3,600만원이다. 10개월을 더 고생하면 2,000만원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10개월 동안 전역하고 최저임금을 받으며 편의점 알바를 하나 군대에서 스트레스 받으며 훈련과 야근을 수시로 하나 거의 같은 돈을 번다. 아니 오히려 사회에서 알바를 하는 편이 더 기대 수익이 높다. 요새는 편의점 야간 알바만 해도 300만원을 버는 시대다. 그러니 군 간부를 지원하는 일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초급간부에게 보조금을 몇백만원 준다거나 관사 시설을 조금 개선한다는 이야기로는 별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초급간부 급여를 올린다고 해도 하사 월급은 중사나 소위보다 높을 수 없고 소위나 중위 월급은 대위 보다 더 줄 수 없다. 그리고 군인도 공무원인데 다른 비슷한 수준의 직급보다 현격하게 더 급여를 줄 수도 없다. 결국 더 줘봐야 월에 10~20만원 선이다. 연으로 환산하면 100~200만원 남짓 푼돈이다. 이 돈을 더 벌자고 10개월을 들여 국가에 헌신할 이가 얼마나 될까? ROTC가 이럴진대 사관학교를 선택해서 6년 그리고 10년씩 의무복무를 하라 하면 계산기를 두드려볼 필요도 없어진다.
더욱이 대학생을 기준으로 할 때 보통 병사는 1~2학년을 마치고 입대해서 전역한 뒤 학교를 2~3년간 더 다니면서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장교는 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해서 전역하면 바로 사회로 던져진다. 사회로 나올 아무런 준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나 기업에서도 군 간부출신이라고 해서 더 우대하는 분위기도 전혀 없다. 사회로 나가는 경쟁에서 이미 뒤처지고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군 간부를 선택해서 의무복무를 할 이유는 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병사의 급여 인상 자체는 문제가 없다. 고된 군 복무를 하는데 사회적 보상은 전혀 없는 우리나라다. 그나마 조금 있던 군 가산점도 여성단체들의 항의와 소송으로 다 없어졌다. 군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군바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분단국가임에도 군인에 대한 존경심과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군 복무에 대한 보상도 없고 자긍심도 느끼지 못하는 사회에서 자연히 최소한 최저임금 수준으로 노동의 댓가를 지급하라는 목소리가 커졌고 지금에 이르렀다.
한국군의 구조는 기형적이다. 젊은 남성의 희생을 바탕으로 굴러갔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려니 뿌리부터 흔들린다. 그렇다고 다시 병사 급여는 30~40만원 시대로 돌릴 수는 없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로마시대 격언이 있다. 권리는 주는 것보다 뺏는 것이 몇 배는 더 어렵다고.
군 초급간부 처우 개선은 답이 될 수 없다. 초급간부 처우만 개선하면 그 다음은? 하사/소위/중위 대상 처우개선을 하면 중사/대위 계급의 중간 허리의 반발을 달래야 한다. 그들의 처우개선을 하면 상사/소령/중령 등의 계급에 대해서도 선물보따리를 내어놓아야 한다. 그럼 그들과 비교되는 경찰이나 소방은? 돈으로 주는 혜택은 분명 한계가 있다. 돈으로 모든 걸 대신할 수도 없다. 몇백만원 수당을 걸면 전장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적진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나올까? 그렇게 군대가 운영이 될 수 있을까?
게다가 저출생 시대다. 한해 20만명이 출생하는데 그 절반인 남자아이가 10만명이 전부 군대를 간다고 해도 60만 병력 현상유지도 요원한 현실이다. 사람이 귀한 시대가 되었다. 전과 같은 방식과 생각으로 군대를 운영할 수 없다. 뿌리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구조적인 혁신을 하지 못하면 필히 그 조직은 망할 수밖에 없다.
병사 월급 200만이 선심성 정책으로 시작되어 잘못된 결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구조혁신과 개혁의 시작으로 기억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