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별책부록>더 많이 가지면 행복할까?

그림책 <오, 멋진데!/마리 도를레앙 글그림>

by 장소영


가끔 홈쇼핑 방송을 10분 이상 보고 있으면 홀린 듯 폰을 꺼내 주문을 하곤 한다.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니라 토크쇼를 하는 것 같은 쇼호스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재밌기도 하고 더불어 소비욕구도 퐁퐁 샘솟는다.

그런데 홈쇼핑을 볼 때마다 드는 궁금증이 있다. 쇼호스트들은 정말 저 많은 제품을 본인 말처럼 항상 애용하고 있는 걸까. 요즘은 이것만 입는다든지, 이거만 바른다는 말을 듣고 있으면 쓸데 없이 가본 적도 없는 쇼호스트의 집을 상상해보게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랑 상관없는 일에 괜한 호기심이 발동하곤 한다.

주말이면 뒹굴거리며 채널놀이 하는 걸 무척 좋아하는 나는 어느 날 L사의 한 쇼호스트가 비싼 명품 가방을 팔면서 이런 말 하는 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명품 가방 하나쯤은 있어야죠. 이런 가방이 있어야 중요한 자리뿐만 아니라 직장인들도 고급스러운 멋을 낼 수 있잖아요. 여자에게 핸드백은 이제 얼굴이나 마찬가진데, 아무거나 들고 다닐 수 없죠.”

몇 년 전 남편이 외국 출장을 다녀오면서 사다 준 명품 가방을 떠올리며 난 하나 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 주말에 그 쇼호스트는 6만 9천 원짜리 가방을 아주 열열이 소개하고 있었다.

“어떻게 매일 몇 백만 원짜리 명품가방을 들고 다녀요? 손때가 타거나 흠집 날까 무서워서 모셔두는 경우가 많잖아요. 자주 들고 다니지도 못하는 명품보다는 이런 핸드백이 데일리(매일)로 들 수 있어서 실용적이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갑’이죠.”

이렇게 들으면 이 말도 맞는 거 같고, 저렇게 들으면 저 말도 맞는 것 같은 현란한 쇼호스트들의 '한 입으로 두말하기'. 결국 그럼 두 개 다 있어야 하는 거네. 명품도, 평범한 것도 모두 다. 집게되는 접속 수와 구매수를 보니 다들 “저건 사야 해. 사야 해.”하면서 서둘러 폰을 꺼내 결제를 했나보다.

쇼효스트 말을 듣고 사는 건지, 스스로 필요에 의해 사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사고 나선 모두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합리적이었는지 이야기 하곤 한다.


'이미 비슷한 물건이 있지만 쿠폰을 사용해 난 더 저렴하게 샀어. 그러니까 앉아서 돈 번 거지.'

'원래 20만 원도 넘는데, 난 세일해서 10만 원도 안 주고 샀어.'

'남들은 백화점 가서 더 비싼 것도 잘 사는데, 난 그래도 홈쇼핑에서 싸게 샀으니 이 정도는 괜찮은거 아냐?'

'지난번 산 건 항암성분이 있는 거고, 이건 혈액순환에 좋은 거니까 다르지. 몸에 좋다는데 먹고 건강하면 돈 버는 거 아냐?'


“그래, 싸게 잘 샀네. 꼭 필요한 걸 샀네.”하는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일까. 정말 필요해서 샀다면서 굳이 저런 말을 왜 하는지, 내 귀엔 꼭 자기변명처럼 들리는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 안을 들여다보면서 '작년엔 뭘 입었던 거지' 생각하게 된다. 분명 벗고 다닌 것도 아닌데 해가 지나면 왜 입을 옷이 없는 것 같은지. 입을 것이 없다는 옷장 안은 아이러니하게도 새 옷을 걸 자리도 없을 만큼 빽빽하게 옷들이 들어차 있다.

작년에 홈쇼핑에서 4개 5만 9천원에 샀던 니트는 왠지 후줄근해 보이고, 비싸게 주고 샀던 옷은 몇 년 지난 거라 유행에 뒤처지는 것 같아 내키지 않는다.

가서 확 질러버릴까 싶다가도 주머니 사정 생각해 참는다. 옷 하나 시원하게 사 입지 못하는 처지가 초라하게 느껴져 한없이 우울해진다. 마음이 헛헛한 것인지 배가 고픈 것인지, 사발면에 물을 붓고 SNS 연다.

개인 피티를 받으며 멋진 등근육을 자랑하는 친구의 사진, 근사한 레스토랑의 저녁 식사 음식 사진, 여행 중임을 알 수 있는 사진, 멋진 취미 생활을 하고 있는 사진 등이 촤르륵 올라와 있다.

수많은 '좋아요'와 '댓글'이 달린 글을 보면서, 남들은 멋지고 근사한 삶을 누리며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이러고 살고 있는 건가 싶어 괜히 짜증이 난다.


누구의 얘길까?

어떤 특정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보통 우리들의 이야기다. 내 얘기기도 하고, 내 친구 얘기기도 하다.


지금처럼 SNS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친구들 모임이나 동창모임, 동아리 모임 등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전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 각자 살아가는 얘기들을 공유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잦은 모임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친분과는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페이스북,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등으로 그들의 안부와 뉴스, 취미생활 등을 쉽게 공유하며 '좋아요'와 댓글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만남을 자제해야 하다 보니 언택트 기반의 이런 소통 창구가 더 활발해지는 듯하다.

그런데 난 틱톡도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하지 않는다. 남들이 다 한다고 해서 한 때 계정을 만들어 사진을 올리고 글을 남겨 본 적도 있긴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요즘은 계정도 탈퇴해 버렸다. 시대착오적이고 트렌드에 뒤떨어졌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게으름이다. SNS는 어지간히 부지런한 사람이나 하는 거란 생각이다.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음식 나오면 먼저 먹기 바쁘고, 딱히 남길 특별한 일상도 없다. 그런데 누군가는 내가 보기엔 별별 시덥잖은 순간을 다 핸드폰을 들어 찍고 올린다. 우리 아이들이 보는 커뮤니티를 슬쩍 넘겨다봐도 정말 별별 사소한 걸 다 공유하고 있구나 싶다.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 자신의 순간을 간직하고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 정말 존경스럽다. 얼마나 부지런한가 말이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도 대단하다. 그게 어딘지, 뭘 하고 있는지, 뭘 먹고 있는지,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많은 걸 짐작하고 읽어내는 예리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서로에게 관심이 참 많은 정스러운 민족.

쇼셜 커뮤니티를 안 하는 두 번째 이유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성격 탓이다. 남의 시선 하나하나에 엄청 신경 쓰는 나 같은 사람이 sns까지 하려면 삶이 정말 심히 고단할 것 같아 애저녁에 포기해 버린 것이다. 난 정말 비주얼적으로 보여줄 게 너무 없는 사람이다 보니 억지춘향으로 했다가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게 뻔했다.


'대한만국 1%가 타는 차'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홈쇼핑만큼 자극적으로 우리 주머니를 노리는 것이 또 있다. 트렌드 변화를 선도하는 광고업계는 사람들의 소비 지향적 욕구에 맞는 광고 문구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상품의 필요성과 특징을 자랑하는 광고가 아닌 상품의 이미지를 내세우는 광고! 이 물건을 사면 당신이 남들보다 우월할 수 있다는 부축임은 결국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한다.

소비자의 자랑질이 물건을 많이 팔 수 있는 최고의 홍보 방법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앞 다투어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물건을 선점하고, 부지런히 그 물건을 과시하면서 남들에게 더 많은' 좋아요'와 부러움을 받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를 참 잘 이용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은 통로로 보여지는, 그래서 때로는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별별 걸 다 공유하는 시대에 살다보니 남들보다 더 많이, 더 좋은 걸 갖고 싶은 욕구는 점점 더 커지는 게 당연한 이치가 되어버렸다.

가진 자의 만족과 가지고 싶은 자의 욕구에 ‘끝’이 있겠는가. 옷, 신발, 액세서리뿐 아니라 핸드폰과 각종 가전제품은 늘 새 것,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기술로 끝없이 이어질 텐데.

내가 오늘 산 새 물건은 사는 그 순간 더 이상 새 것이 아니다. 유행의 텀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것은 어느 순간 또 다른 더 새롭고 신기한 것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유행은 쫒아갈 수도 없이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다가고,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한다.

딱 이런 상황을 보여주는 그림책, 프랑스 작가 마리 도를레앙이 쓰고 그린 <오, 멋진데!>라는 작품은 물건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그림책이다. 틀에 박힌 규칙에서 탈피하는 것을 좋아했던 작가의 재미있는 상상은 허황된 상상이 아니라 그 모습 그대로 지금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물건들이니까요.
상인은 낙심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외쳤어요.
"자, 사세요! 외투, 단추, 소시지, 소파, 양탄자...."


풍요 속 빈곤이란 말처럼, 넘쳐나는 물건들 속에서 사람들은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있다. 기존의 것은 너무 식상해서 더 이상 가치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내 옷장 속에 넘쳐나는 옷을 보면서 입을 게 없다고 말하는 나처럼 말이다.

남들 갖은 건 나도 가져야 하고, 남들이 다 가지고 있으면 또 식상해 하고, 이젠 나만 가질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찾고 있는 사람들.


그러던 어느 날,
상인은,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어요.
"자, 사세요!
구두잔, 가방모자, 양탄자 우산..."
그 말에 길 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우뚝 멈추고 돌아봤어요.
"구두잔? 가방 모자? 양탄자 우산?
오, 멋진데! 여태껏 그런 건 없었잖아."
사람들은 새로운 물건에 흥분했지요.


사람들은 프라이팬 몇 개를 뒤집어쓰고 멋진 모자라며 뽐내고, 신발과 구두를 새로운 커피 잔이라며 우아하게 홀짝거린다. 아이들은 새로운 침대라며 서랍장 안에서 잠을 자고, 소시지로 줄넘기를 한다. 조금 이상하고 불편해도 상관없다. 이건 유행이니까. 그래야 남들한테 꿀리지 않으니까. 똑 같은 것에 새로운 의미만 부여해도 열광하는 단순한 사람들의 욕망에 상인만 호황이다.

이 유행은 얼마나 갈까.

오래가면 좋았을 텐데, 사람들은 너무 쉽게 싫증을 낸다. 그래서 또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 비슷비슷한 물건들이 조금씩 모양만 바뀌어 쏟아져 나온다. 사람들은 기존 것을 버리고 또 새로운 걸 찾는다. 늘 이게 문제다.


요즘 내가 아주 즐겨 보는 애플리케이션이 하나 있다.

“당근!” 하고 경쾌하게 울리는 알림음에 마음에 드는 물건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온라인 중고 마켓. 가까운 동네 사람들끼리 중고 물건을 거래할 수 있는 당근 마켓을 알게 되고 제법 유용하게 써먹는 중이다. 나에겐 불필요한 물건이지만 그냥 버리긴 아까웠던 것들을 싸게 사고팔 수도 있고, 선한 마음으로 무료 나눔을 할 수도 있으니 이렇게 좋은 시스템이 생겨 참 반갑다. 최근에 쓰지 않는 의자와 독서실 책상, 그리고 자리만 차지하던 운동기구를 필요한 사람에게 보냈다. 방법도 간단하다. 문고리 거래라고 집 현관 앞에 물건을 내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는 비대면 거래다. 파는 사람도 가져가는 사람도 좀 덜 민망한 괜찮은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어떤 사람들은 당근 마켓을 거지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라고 폄하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무례한 거래 경험이 있었나 보다. 좋은 뜻으로 이용만 한다면 요즘처럼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꽤 괜찮은 채널이란 생각이 드는데. 제발 처음 생긴 좋은 취지로만 이용되길 바랄뿐이다. 누구도 못 쓰는 쓰레기를 버리는 수단이 아니라 안 쓰는 물건을 다시 쓸 수 있게 만드는 공간으로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집 밖보다는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집이 좀 더 편한 공간이었으면 한다. 그런데 내가 사는 집의 주인이 나인지 물건인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집에 들어오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래서 인지 사람이 아닌 물건에 압도당했던 생활에서 벗어나 비움을 실천하자는 취지로 방송이나 책에서 한 동안 자주 등장하던 ‘미니멀 라이프, 미니멀리즘’이 다시 언급되고 있다.

tvN의 ‘신박한 정리’는 이러한 취지를 반영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사람 사는 모습이 어찌나 다들 그리 비슷한지. 우리는 모두 많이 가지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사는가 보다. 그런데 빈틈없이 채워진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공통적으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물건을 소유했을 때 느끼는 잠깐의 행복을 위해 너무 긴 행복을 포기하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아무 것도 달라진 것 없이 그저 조금 비웠을 뿐인데 감동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이 가져야 행복한지 다시 한 번 되묻게 된다.

아마 사람과 사람의 관계뿐 아니라 물건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도 '적당함, 적절함'의 거리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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