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별책부록>혹시, '쿨병'에 걸린 거라면?

그림책 <먼지아이> 정유미 글그림

by 장소영

난 뒤끝이 있는 편이다.

다시 말하면 쿨한 것과는 거리가 멀단 얘기다.


니가 사는 그 집, 그 집이 내 집이었어야 해
니가 타는 그 차 (oh~oh~), 그 차가 내 차였어야 해
니가 차린 음식 (음식~), 니가 낳은 그 아이까지도
모두가 내 것이어야 해. 모두가 내 아이였어야 해


박진영의 <니가 사는 그 집>의 노래 가사처럼,

놓친 것, 얻을 수 없는 것, 과거의 실패, 좌절들을 떠올리며, 가끔

'만약~그때 그랬더라면?', '그때 그 말을 했었더라면?'

하는 하나마나한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과의 관계, 일의 성취에 있어서 나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에 닿으면 집착하고 후회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쿨한 사람'을 늘 동경하고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도 자주 한다. '쿨하다'는 말이 왠지 멋지고 시크하게 느껴져,좀 더 성숙한 인간이라면 쿨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쿨하다는 말을 싫어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쿨해 보이려는 것을 싫어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앞둔 상황에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녔다. 다행히 오래 걸리지 않아 제법 괜찮은 곳에서 합격 연락이 왔고, 너무 좋아서 제일 친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해 그 소식을 알렸다.


"거긴 지원자가 별로 없었나 보네."
"어? 어 뭐 그렇게 치열했던 건 아닌 거 같아. 거기서 날 좋게 봐줘서 다행이지."
"거기 좋은 곳이라며? 근데 심사 기준이 까다롭지 않았나 봐?"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합격 소식에 들떠 있던 나는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그 친구 전화를 끊고, 다른 친구와 몇 통의 전화를 하고 나서도 그 친구와의 통화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가시긴커녕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애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자꾸 곱씹게 됐다.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친구니까 솔직히 말하고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찝찝한 기분으로 며칠을 보내다가 그 친구를 만나 아주 어렵게 그 얘기를 꺼냈는데,


"그걸 아직도 생각하고 있었어? 하하하 농담으로 한 거지. 에이구 쿨하지 못하게스리.소영이 너 뒤끝 있다."

뭐 이런 식의 말을 했던 것 같다.


난 친구의 쿨한 농담 하나 받아 주지 못하는, 쿨하지 못하고 뒤끝 구질구질한 사람이 된 채 그 친구와의 관계를 끝냈다.

긴긴 시간이 흘러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일이 뭐 그렇게 친구와 연을 끊을 정도로 큰 상처였을까 싶긴 하다.

그 친구는 기억하지도 못할 이 애길, 아직도 떠올리는 걸 보면 역시 난 쿨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게 확실하다.


그 친구가 말한 쿨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듣기 싫은 말을 들어도 그러려니 넘어가는 것이 쿨한 것일까?

상처 받고, 힘들고, 괴로워도 관계를 위해 참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이 쿨하고 뒤끝 없는 것일까?

그런게 쿨한 것이라면 지금의 난 그때보단 정말 엄청 쿨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상처 받고 힘들어도 제법 잘 참는 편이니까.


사전적으로 '쿨하다는 것은 필요 이상의 감정소비를 하지 않고 뒤돌아 보지 않는 것을 대변하는 말'이다.

난 남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은 할 수 있지만, 혼자서 있을 때 뒤돌아보고 곱씹으며 거기에 많은 감정을 쏟는 편데...


그렇다면 난 쿨한 건인가, 쿨하지 않은 것인가!


생각해보니 난 쿨한 것이 아니라 쿨해 보이려고 했던 것 같다.

스스로 쿨한 성격이 아니라 타인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했을 때 제법 성숙한 모습으로 어지간한 일엔 평정심을 잃지 않는 멋진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쿨해야 할 때, 소화되지 않은 수많은 감정 때문에 힘들어하고 괴로워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분명 털어버리고 싶은 감정이고, 털어버렸다고 생각한 마음인데, 돌아보면 아직도 내 가슴에, 내 머리에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는 감정의 찌꺼기들 고개를 든다.

못 본 체해보았지만, 소화시키지 못한 감정들은 외면하면 할수록 더 끈질기게 달라붙어 날 괴롭혔다.

쿨? 개나 줘버릴 감정이다.




일주일 내내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주말이 돌아오면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쉬고만 싶다. 밥 차려줘야 하는 식구들만 없다면 정말 하루 종일 안 먹어도 상관없다. 아니 식구들은 나의 명령(?)으로 알아서 라면을 끓어먹든 시켜먹든 할 수도 있으니 그것도 괜찮다. 하지만 봄이( 반려견)는 예외다. 다들 밥을 먹고 나가면 봄이와 나만 남는데, 이 녀석 밥도 챙겨줘야 하고 산책도 시켜줘야 한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바빠서 집에 늦게 돌아온 탓에 봄이가 집안 여기저기에 화풀이를 해 놓은 흔적도 치워야 했다. 온 집안에 요상한 냄새가 진동을 해 참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결국 무거운 몸을 일으켜 청소기를 밀고, 세탁기도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박박 물걸레질을 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한다. 말로 하니 참 후다닥 별거 없는 작업인 듯싶지만 훌쩍 몇 시간이 지나간다. 땀이 삐질삐질 나니 시원하게 한바탕 샤워를 한다. 덤으로 화장실 변기며 욕실 구석구석까지 청소한다.

'아~! 이 맛에 청소하지!'

개운한 기분으로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틀었다.

까무룩 잠이 쏟아지는데 코가 간질간질하다. 쓰윽 문지르고 다시 자려는데 또 인중 근처가 간질간질하다. 핸드폰을 켜 얼굴을 살펴보니 하얀 뭔가가 나풀나풀 붙어 있다. 가만 보니 봄이한테 빠진 하얀 털뭉치였다. 쓸고 닦고 다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에 남아있던 것이 지금 나타난 것일까.

집안일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청소를 정밀하게 하지 못한 탓이겠거니 했다. 그러고 보니 소파 구석이며, 거실장 밑이며 여기저기 손이 덜 간 곳에 아직 돌돌돌 먼지들이 숨어 있었다. 다시 일어나 치울까 싶었지만 당장 안 치운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거기 있는 거 알았으니 언제고 치우면 그만이지 싶어 다시 팔자 좋게 누웠다.

세상 이렇게 편할 수가.

물론 청소 강박이 있는 사람에게는 참고 넘기기 힘든 일일 테지만 난 상관없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00의 엄마도, 00 총각도, 0호 학생도, 00 아저씨도 ,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너무 보편적인 일상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을 놀라게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나의 작은 인형상자>, <연애 놀이>등을 쓴 정유미 작가이다.

소개 할 <먼지 아이>는 애니메이션이기도 하고 그림책이기도 하다. <먼지 아이>은 2009년 깐느 영화제 감독 주간에 첫 선을 보인 후, 스티븐 스필버그가 고문으로 있는 뉴욕 햄튼 국제 영화제뿐 아니라 10여 개의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화려한 경력이 있다. 그리고 미국, 캐나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그리스 등 전 세계 70여 개 영화제에 상영되면서 박찬욱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 <박쥐> DVD 특별 부록에 수록되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작품을 보고 '한국의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중요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후 2014년에 그림책으로 펴내면서 한국 그림작가 최초로 라가치상(매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개최되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기간에 아동 도서 중에서 우수작품을 선정해 수상함. 아동분야 최고의 권위가 인정되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5000컷에 달하는 세밀하고 부드러운 연필 드로잉으로 그려진 그림을 한 장 한 장의 넘기며 보는 재미가 있어 그림책이 더 좋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면 글자 없이 그림만으로 이루어진 스토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무표정한 먼지 아이의 모습도 꽤나 귀엽다.

스토리는 앞서 내가 말한 주말의 평범한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쩜 이리 내 얘기 같은지. 보다가 당장 일어나 다시 청소를 할 뻔했다. 아마 이 그림책이나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들은 나처럼 당장에 청소 욕구가 생길지도 모른다.


추운 겨울날 저녁, 주인공은 이불 위에 붙어 있던 먼지아이를 발견하고 느닷없이 청소를 시작한다.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해 가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침대 밑, 화장대 위, 식탁 밑, 씻어두었던 컵 안, 욕실에서 차례로 먼지 아이를 만나게 된다.

생각지도 않은 곳곳에 살며시 얼굴을 내미는 먼지 아이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 몸으로, 주인공에게 발견될 때마다 그녀의 얼굴을 말끄러미 바라보다 돌아서 숨어버린다. 먼지 아이의 얼굴이 주인공의 모습을 꼭 빼닮았다. 애써 숨으려는 먼지 아이를 그녀는 가차 없이 집어 들어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고, 물로 씻어내 버린다. 당연한 일이다. 청소란 그런 것이니까.

그림책 < 먼지 아이 中>

청소를 다 끝내고 그녀는 자신의 몸에 붙은 먼지도 구석구석 씻어낸다. 말끔히 치워진 혼자만의 공간을 휘익 돌아보며 그녀는 마음의 평온함과 차분함을 느끼는 듯하다. 그렇게 격렬하게 청소를 했으니 이쯤 되면 찾아오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그녀는 소박한 혼밥을 준비한다. 보기만 해도 포만감이 드는 하얀 밥을 그득 떠서 식탁 위에 앉은 그녀는 밥 위에 살포시 앉아 먼저 밥을 먹고 있는 먼지 아이를 발견한다. 구석구석 다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또 나타난 것일까!

숟가락으로 떠서 버리려고 하다가 그녀는 잠시 생각한다. 그리고 쿨하게 다시 밥 한 공기를 떠 먼지아이와 함께 자기 몫의 밥을 묵묵히 먹는다.

그림책 < 먼지 아이 中>

그림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생각했다.

왜 그녀는 그렇게 집요하게 치워버렸던 먼지 아이를 버리지 않고 그냥 두었을까?

받아들임, 인정, 그리고 새로 시작함의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평생 셀 수 없이 많은 청소를 하게 될 것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신이 머물렀던 공간, 머무르고 싶은 공간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평범한 바람일 테니까.

하지만 평생을 쓸고 닦고, 치워도 어느새 또 쌓이는 먼지를 완전하게 없앨 수 있을까!

아마 온 집안을 무균실로 만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깨끗하게 청소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집 어느 구석에도 자신들이 발견하지 못한 먼지 하나쯤은 숨어 있을 테니까. 그러니 완전무결한 청소란 있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또다시 청소할 맛이 나지 않겠는가.


깨끗이 청소를 했다곤 하지만 금방 뽀얗게 내려앉아 쌓이는 먼지처럼 아마 우리 마음에 쌓인 내면의 먼지도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마음 언저리 어딘가에 숨어 켜켜이 쌓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곳에 누군가의 한 마디로 다시 상처가 나고, 걱정하지 말자 생각했던 일에 다시 불안이 엄습해오고, 지우고 싶었던 기억이 솔솔 다시 떠올라 고통스러운 순간이 오는 게 아니겠는가.

그림책의 주인공 그녀가 밥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내려다보는 마음은 씻어내도 남는 내면의 앙금, 감정의 찌꺼기, 잊고 싶은 기억 같은 것을 마주하는 우리들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깨끗이 치워지지 않는 마음, 닦아도 흔적이 남는 상처,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기억들을 그림책 속의 그녀처럼 쿨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그러면 의외로 모든 것이 단순해질 것이다.

상처 받았으면 아파하고, 고통스러우면 울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면 된다. 잊고 싶은 기억이 있는데 순간순간 떠올라 괴롭다면 누군가에게라도 홀가분하게 털어놓아보자. 혼자 무거웠던 그 기억이 말이 되어 나오는 순간 별 것 아닌 일이 돼버릴 수 있다. 잠재된 기억 저편으로 밀어버리고 스스로를 억압하면 잠시 잊힌 듯 보이지만 언젠가는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완전한 행복도, 완전한 불행도 없음을 인정하고 간간히 찾아드는 슬픔과 불안, 걱정, 잊고 싶은 기억들을 있는 그대로 수긍해보는 것이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누구나 그럴 수 있어.'

치워도 쌓이는 먼지처럼 내면의 감정 찌꺼기도 늘 있는 것이니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받아들여 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인색하다.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성숙하지 못했다고 자책한다. 속은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긍정으로 포장해 쿨하고 멋진 척을 한다. 그건 쿨한 것이 아니라 쿨해 보이려는 것뿐이다. 그러다 '쿨병' 걸린다.

쿨한 것과 쿨해 보이려는 것은 다르다.

쿨해 보이려는 사람은 겉으론 무심한 척하고 있지만 속으로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엄청나게 갈망하고 있 것이다.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란 뜻이다. 이들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 '뭐 상관없어. 난 쿨하니까!'하고 자신의 감정을 왜곡해 버리고, 심지어 타인의 감정을 무시하고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때때로 상대에게 함부로 아무 말이나 떠들어 놓고, 상대가 불쾌한 감정을 표현하면,

"에이 왜 그래. 농담으로 한 걸 가지고. 쿨하지 못하게."

"난 아무 의미 없이 한 얘긴데, 그걸 아직도 꽁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자기 뒤끝 있다!"

하면서 오히려 상대방을 교묘하게 깔아 내린다.

이처럼 타인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사람, 공감지수가 떨어진다는 것은 쿨한 것이 아니라 단단히 '쿨병'에 걸린 이다.

누군가 자신이 한 얘기 때문에 속상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그 사람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안내를 해준 것이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말이다.

'쿨하지 못하네, 뒤끝 있네'라고 치부해버리는 그 사람 참 불쌍하다.

'쿨병'에 걸린 무능하고 안쓰러운 사람들 때문에 상처 받을 필요도 없다.


쿨하다는 것은
아프면서도 아프지 않다고
하는 게 아니라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다.
타인의 눈치를 보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발산하는 것이다.

진짜 쿨하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다.
-이용현 <울지 마, 당신中>


밀어두었던 묶은 빨래를 하고, 쌓여있는 설거지를 하고 구석구석 대청소를 하고 나면 잠시 개운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먼지는 또 쌓이고 일거리는 또 생긴다. 그렇다고 안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또다시 힘을 내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먼지를 치워내는 것처럼, 자신이 내면을 말끄러미 들여다보고 자기 안에 숨겨두었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정리해보자.

정말 털어낼 감정은 물로 씻어내듯이 깨끗이 치워버리고, 그래도 또다시 생겨나는 걱정, 불안, 나쁜 기억, 고민스러운 마음에는 '그럴 수 있어.'라며 인정하고 다독여 주자.

그럴 수 있는 솔직한 마음이 진짜 쿨한 것이.


혹시 '쿨병'에 걸려있던 거라면, 이제부터라도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진짜 쿨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자주 음 청소를 하며 남길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해아야 한다.

그리고 부디 번드르르한 긍정의 포장으로 자신의 감정을 둘둘 감아 숨기는 것을 '쿨하다, 멋지다'라고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먼지 아이>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해보세요.


https://youtu.be/cc3JmwQOT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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