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별책 부록>나도 반창고를 붙이고 싶어.
그림책 <태어난 아이/ 사노요코 글그림>
우리는 종종 처음 만난 사람과 통성명을 하면서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언제 태어났는지 물어보고 서열정리와 호칭정리를 하곤한다.
"몇년 생이에요? 어,저보다 위시네요. 말 편히 하세요."
언젠가 사주팔자를 보러 점집을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도 역시 제일 먼저 묻는 말이,
"생년 월일은? 태어난 시는?"이었다.
우리에게 언제 태어났는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에게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라는 통지서가 왔다.
17세 이상이 되었으니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을 증명하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증명서를 발급해 주겠다는 것이다. 주민 등록증을 발급할 때 반드시 적는 것도 이름, 주소 그리고 생.년. 월.일이다. 물론 등록증이 발급되기 전에도 태어난 아이들은 출생 신고를 한 후 생년월일을 기본으로 한 등록 번호를 받게 된다. 그 번호를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는 태어났음을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다.
태어난다는 것은 존재에 가치를 부여해 주는 그 시작점, 곧 삶의 출발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한 명 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날마다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세상일에 동요되지 않는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다.
발을 부딪쳐도, 태양이 뜨거워도,모기에 물려도, 사자가 나타나도, 강아지가 간지럽혀도 아무 상관이 없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배가 고프지도 않다.
우리에게 『100만 번 산 고양이』로 잘 알려진 사노요코의 그림책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다.
그림책 겉표지부터 눈길을 끈다.날카로운 펜으로 짧게 끈어 그린 그림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빨강과 초록의 강렬함에 비해 아이의 표정은 전혀 아기답지 않다. 귀엽지도 앙증맞지도 않은 아이는 꾹 다문 입과 어디를 보고 있는지 모를 무표정한 눈을 하고 있다. 꽤나 시니컬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이는 내내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 없다'고 말한다.
이 그림책을 보다 생각난 아이가 한 명 있다. 그 아이는 그림책과는 반대로 태어나고 싶었지만 태어나지 못했던아이다.
KBS 예능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의 사연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20살이 되도록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고 살았던 '하나'라는 아이.
법적으로 태어난 적이 없는 그 아이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아니 다닐 수가 없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도박과 폭력을 일삼았던 아빠와 그 폭력에 무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엄마, 그리고 그렇게 방치되었던 아이.
20년이라는 짧은 삶이 얼마나 굴곡졌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방송 후 '역대급 굴곡녀'라는 슬픈 별명도 얻었을 만큼 충격적인 사연이었다.
그래도 그 아이는 꿋꿋하게 삶을 살았고 잘 컸다. 변호사를 찾아가 주민등록도 만들고 검정고시를 통해 학업도 이어가고 있었다.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고 그래서 끝끝내 태어난 아이.
아무도 태어나게 해주지 못했던 자신의 삶에 스스로 숨을 불어 넣은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졌다.
'태어난다는 것'과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부모님이 몇년 몇월 몇일 몇시에 나를 나아 주셨으니 그걸로 우린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엄마의 자궁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온 그 순간 난 정말 태어난 것일까?
기억나진 않지만 엄마와의 연결 고리인 탯줄을 끈고 나와, 태어나자마다 무섭고 서럽고 아쉬워 첫 울음을 터트렸던 그 순간 난 정말 태어났던 것일까?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지나가던 강아지가 자기를 따라와도,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고 인사를 하는 여자 아이가 있어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던 강아지가 다른 강아지와 싸워도, 그 강아지에게 여자아이가 물려도 상관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의 팔다리를 물어 뜯겨도 아프지 않다며 상관하지 않는다.
왜?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 없습니다."
문득 저 말의 의미가 무겁게 다가온다
날 낳아주신 부모님이 계시고,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고, 태어난 생일이 버젓이 있으니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여기에서 '태어났다'는 말은 단순한 생물학적 출생을 의미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하나'는 '생물학적인 출생'을 얻는데 20년이 걸렸지만, 이미 그 의미 이상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찾아가고 있기 으니 ' 정신적인 출생'을 했다고 보고 싶다.
하지만 아직 '반은 태어나고 반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
살아가면서 모른척하고 싶어 외면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난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며, 아무 상관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태어나지 않은 척 했다.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나한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괜히 내가 피해를 볼 것 같아서.
'불필요한 오지랖'이라며 나도 모르게 저 말을 수도 없이 많이 했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다쳐서 울고 있던 여자아이를 따라간다.
여자아이의 엄마가 달려왔습니다.
"아파! 아파!"
여자아이가 울먹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여자아이를 달랬습니다.
그러고는 막대기로 강아지를 혼내 주었습니다.
.
.
.
엄마는 여자이를 깨끗이 씻기고, 약을 바른 다음
엉덩이에 반창고를 딱 붙여 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갑자기 자기도 반창고를 너무 붙이고 싶어졌다.
'호~호~'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깨끗이 약도 발라주고 덧나지 말라고 정갈하게 붙여준 반창고! 태어나지 않으면 붙일 수 없는 반창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결국 반창고가 붙이고 싶어서 태어나기로 결심한다.
드디어 태어난 아이는 두 손을 번쩍 들고 보무당당하게 우뚝 섰다. 여태까지 시큰둥하던 아이의 얼굴에 옅은 표정과 함께 생기가 돈다.
"엄마, 아파!"
태어난 아이는 이제 배가 고프고, 모기한테 물리면 가렵고, 바람불면 깔깔깔 웃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친구에게 자기의 반창고를 자랑하기도 한다
.무엇을 이루고 싶어서, 멋지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반창고를 붙이고 싶어서 태어난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
성공을 하고 싶고, 멋진 차를 타고 싶고, 예쁜 옷을 입고 싶고,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것은 추후의 문제다.
우리가 태어난 것은 사랑받고 싶고, 위로 받고 싶고, 상처 받았을 때 약을 발라 주고 반창고를 붙여여 줄 누군가와 더불어 살고 싶어서이다.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한 편의 영화처럼 각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 비가 내릴지, 언제 햇살이 비칠지, 언제 폭풍이 몰아칠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어쩜 비를 맞고 싶지 않아서, 폭풍 치는 것이 너무 두려워서 문틈으로만 세상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태어나지 않았으니 나랑 상관없는 일이다.' 외면하는 삶을 과연 우리는 정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아프고 겁나지만 비에 흠뻑 젖어도 보고 폭풍에 흔들려도 보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진짜 '태어난 아이'로 살수 있을 것이다.
태어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상처받고 상처 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 그 상처에 예쁜 반창고 하나 붙여줄 누군가를 찾고, 나 또한 누군가의 상처에 반창고 하나 정성스럽게 붙여줄 수만 있다면 태어나 보는 것도 꽤 괜찮은 것이다.
반창고를 떼었을 때,
어떤 상처는 어여쁜 새살이 돋아 말끔하게 치유되어 있을 것이고, 어떤 상처는 보기흉한 흉터를 남기기도 하겠지.
물론 그래서 '태어나는 건' 피곤한 일이이기도 하지만 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