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별책부록>어느 날 머리 위로'톡'떨어진 무엇!

그림책 <빨간 열매/이지은 글그림>

by 장소영

이지은 작가의 < 빨간 열매>는 수묵화 느낌의 그림에 강렬한 빨간색이 콕콕 박혀 있어 여백의 미와 절제미를 맛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짧은 글 텍스트는 빨리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고 싶게 만드는(page-turner) 매력이 있다. 하지만 좋은 명화를 만났을 때 한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그림을 바라보듯이, 그림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문다. 그림책 표지에는 책 길이(세로로 긴 판형)만큼이나 큰 나무가 서 있고, 그 나무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곰의 모습이 보인다.

시선이 위를 향하고 있는 곰의 모습! 간절하게 뭔가를 찾는 듯 보이기도 하고, 잔뜩 호기심이 동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큰 나무 몸통을 움켜 잡은 곰의 앞발과 뒷발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위로 올라가려는 의지가

느껴다.

겉표지를 넘기니 <빨간 열매> 제목과 어울리는 붉은색의 면지가 가득 눈에 들어왔다. 습관처럼 연 맨 뒷장의 면지는 앞 면지과 같은 붉은색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 밖의 너무나 예쁘고 밝은 노란색이었다. 이야기의 변화를 예견해주는 것 같아 그림책에 대한 호기심이 배가 된다.


깊고 깊은 숲 속의 이른 아침!! 일찍 일어난 작은 아기곰 한 마리가 총총총 혼자 숲길을 걷는다. 얼마를 걸어온 것일까. 배가 고픈 아기곰은 나무에 기대어 앉는다. 그때 머리 위로 '톡' 빨간 열매가 하나 떨어진다. 배가 몹시 고프던 아기곰은 그 빨간 열매를 소중하게 쥐고 한입 베어 문다. 너무 맛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딱 하나밖에 없는 열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그 열매인가!!

맛보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한 번 맛보고 나니 다시 먹고 싶어 진다. 아쉬움에 아기곰은 그 열매가 떨어진 나무 위를 올려다본다.

'또 먹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끝도 보이지 않는 높다란 나무에 망설임 없이 용기를 내어 오르는 아기곰!

빨간 열매를 찾아 오르고 오르다 보니 곰의 눈에 보이는 빨간 것은 모두 '빨간 열매'처럼 보이는 것이 아닌가!

빨간 무언가를 발견하고 '아'하고 잠깐의 기대감을 갖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아기곰이 찾던 그 빨간 열매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기곰은 실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찾으려던 것이 아님을 빠르게 인정하고 그것과의 만남을 즐기는 여유를 보인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나무 꼭대기 끝까지 다다랐지만 빨간 열매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어느새 날이 저물어가고 아기 곰은 지는 해를 황홀하게 바라보며 외친다.


'엄청 큰 빨간 열매!
맛있겠다!'
그림책 <빨간 열매 中>

고등학교 시절까지 크게 기억나는 실패의 경험이 없다. 내가 하고 싶고, 하겠다 마음먹은 것은 늘 계획대로 잘 되는 편이었다. 그런데 큰 좌절을 맛본 적이 없던 나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일이 생겨 버렸다.

대. 입. 낙. 방!

'세상에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말도 안 돼.'

몇 날 며칠을 울고 불고 식음을 전폐했다.

이제까지의 세상은 나를 위주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만 세상 밖으로 밀려난 패배자 같은 기분! 난 때늦은 사춘기를 극심히 겪으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을 꾸역꾸역 걸어갔다.

그렇게 당장 죽을 것 같은 시간들이 지나고, 얼레벌레 원하지 않던 대학에 들어가 대학생활을 시작하니 뭐 그런대로 재미도 있고 지낼만했다.

평탄하게 대학생활을 하고, 몇 번의 달콤한 연애와 몇 번의 아픈 이별을 경험하기도 했다.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지면서 '아, 날 미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잊을 수 없는 상처도 경험하고 나니, 제법 성숙해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20대를 보내고, 30대를 살아내며 직장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의 시간을 살았다.

다 처음 하는 것들이라 몹시 서툴렀지만 남들만큼은 해내며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살아가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큰 아이는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대한민국의 고3이 되어 있었고, 어느새 난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와 실랑이를 하면서 무시로 늙어가는 것 같아 서러웠다.


러던 어느 날, 내 머리로 빨간 열매가 하나 '톡'하고 떨어졌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 전에도 대학원에 대한 고민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여러 가지 안 되는 조건들을 먼저 떠올렸었다. 그런데 그때와는 달리 큰 망설임 없이 '하고 싶다.'의 막연한 마음에서 '해야겠다'는 결심의 마음으로 전환이 되었다.

대학원을 다니던 2년 반의 시간을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예민한 시기의 아이와 남편의 이직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일과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방전된 체력 등 여건은 그 어느 때보다 정말 좋지 않았다. 하지만 '빨간 열매'를 먹고 싶다는 기대감과 열망이 그 모든 것들을 상쇄시켜줄 만큼 강렬했고 또한 적절했던 것 같다.

때마침 배가 고픈 아기곰 앞에 떨어졌던 빨간 열매처럼 나에게 '학업'에 대한 열정이 불붙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시기 내가 겪고 있던 여러 결핍에서 오는 배고픔 덕분이었을 것이다.

물론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몇 번의 후회와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수반되었다. 머리는 생각만큼 유연하게 돌아가지 않았고, 그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한없이 하찮고 보잘것없는 내 존재를 자각하게 했다.

4학기에 수사학 강의를 들으면서 엄청나게 잘난 많은 사람들 틈에서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화낼 대상도 없이 늘 화가 난 상태로 수업을 들었다. 그 강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내 '적' 같았고, 너무 꼴 보기 싫었다.

'잘났어, 정말!'

그래서 그들을 외면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입을 앙다물고 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 시간이 너무 괴로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늘 똥물을 뒤집어쓴 기분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반학기가 지났을 무렵,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적지도 않은 돈으로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 시작한 공부인데, 누구를 위한 혼자만의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간절히 원하던 빨간 열매를 찾기 위해 나선 길 위에서, 원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남 탓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부족해 보이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타인들에 대한 부러움, 욕심이 자꾸 날 화나게 만들었구나를 인정하고 나니 그때서야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상대방들이 잘난척하고 나대서 화가 났던 것이 아니다. 그 잘난 사람이 내가 아니란 사실이 화가 났던 것이지.

그럼 방법은 하나이다. 더 이상 화만 내고 있을 게 아니라 더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 그것이 원래 목적이었으니까.

과제를 좀 더 꼼꼼히 준비하고 다른 사람들 것도 열심히 탐독했다.

강의 시간에 화가 나서 앉아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교수님을 찾아가 도움도 요청했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하려고 노력하던 어느 날 한 선생님이 내 과제를 보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과제 글 너무 좋아요."

"아, 그래요? 감사해요. 칭찬받으니 좋네요. 샘 과제도 도움이 많이 돼요."

"그런데 너무 피곤해 보이세요. 일이 너무 많으신가 봐요. 수업시간에 말씀도 별로 없으시고...."

뒷말은 들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동안 내내 화가 나있는 사람에게 말 한마디 걸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싶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혼자 꽁했던 마음을 조금씩 풀고 나니 아주 아주 간혹 있는 맥주 한 잔 하는 자리에서 실없는 소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교수님께서 내 과제를 학기 가장 우수한 논문으로 평가해 주셨다. 그동안 쌓였던 모든 앙금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날 이긴 것 같은 성취감!

교수님도 동기들도 모르는 나 혼자의 삐짐은 그렇게 칭찬 한 마디로 깨끗이 끝이 났지만, 그 일로 나는 조금 자란 기분이 들었다.


흔들리지 않고 성장하는 사람은 없다. 추락도 해봐야 비상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성장은 실패와 성공이 공존하기에 우리는 무모한 듯 보이는 일에도 열정을 쏟고, 도전장을 던져보는 것이 아닐까!




아기곰은 밑에서 누군가 자기를 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일까? 그야말로 믿고 보는 '비빌 언덕' 같은 존재에 대한 믿음 같은 것 말이다. 아기곰은 겁 없이 나무에 오르고 망설임 없이 붉은 태양에 몸을 던진다.


비빌 언덕
믿는 구석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을지 모를 아기곰의 '빨간 열매 찾기'는 다행히 해피 엔딩이다. 떨어지는 아기곰을 받쳐준 푹신한 무엇, 바로 큰 곰이 있었다.

그림책 <빨간 열매 中>


처음 썸네일에서 아기곰을 구해준 대상은 '엄마'였다고 한다. 그런데 출판 과정에 편집자가 '엄마'라는 말을 빼버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작가도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편한 기분이 들던 터라 과감하게 삭제했다고 한다.

빼고 보니 큰 곰의 존재가 읽는 사람에 따라 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게 된 듯하다. 누군가에게는 가족, 연인, 친구 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내면의 힘, 사회 규범(제도)과 같은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


나에게도 학업이라는 빨간 열매를 따려고 무모할지도 모르는 걸음을 내딛고 있을 때 나를 지켜준 큰 곰과 같은 존재가 있었다. 늘 공부하고, 일하고, 애 키우고, 살림하는 딸이 너무 안쓰러워 어쩔 줄 몰라하시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던 엄마 아빠!

하지만 한 번도 엄마 아빠의 존재에 대해 깊이 의미를 두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늘 내가 열심히 했고 내가 잘라서 이 곳까지 와 있다고 생각했.

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당연함!

당연하다고 생각한 뻔뻔함 때문이었다.


때때로 부족한 학비를 대주시고, 굶고 다닐 딸 뭐라도 먹이시려고 매일 김치며 밑반찬을 대주시고, 저녁에 집에 돌아왔는지 궁금해도 혹시 운전하는 중일까 봐 전화도 못해 보시고, 잘 들어왔다는 전화에 비로소 잠을 청하셨던, 큰 곰 같은 부모님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인데...


"엄마, 엄마네 집에 들어가 살면 안 되겠지? 그냥, 물어본 거야. 대출이자도 부담스럽고 해서... 아니다. 미안해. 엄마! 신경 쓰지 마."


형편이 어려웠던 그때, 어렵게 꺼낸 그 말에 엄마 아빠는 계약을 연장해야 할 세입자를 내보내고 바로 집수리를 하셨다.

"네가 그렇게 하는 게 좋으면 그렇게 해. 엄마 아빠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야지."

시며 내가 엄마네 들어와 살면 생길 긍정적인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애써 힘을 주셨다.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엄마네 들어가 살진 않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하나 있는 딸자식 때문에 엄마 아빠 마음은 또 얼마나 아팠을까 싶다. 내색도 못하시고.

그런데 그때 난 내 생각만 했다. 내가 힘드니까.

받는 것에 익숙한 자의 자기 합리화와 뻔뻔한 이기심이다.

그렇게 한없이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자원자가 있기에 난 지금껏 크고 작은 힘든 시기를 잘 버텨낼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간절히 먹고 싶은 빨간 열매는 있다. 당신의 빨간 열매는 어떤 것인가! 그 열매를 먹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런 당신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큰 곰 같은 존재는 무엇인가!


그림책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아기곰은 자기를 구해준 큰 곰이 나눠준 빨간 열매를 수북이 쌓아놓고 맛있게 먹는다. 그 모습이 꼭 나 같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덥석 저지르고 마는 아기곰처럼, 나도 든든한 믿는 구석을 방패 삼아 저 멀리 보이는 노랗고 맛있어 보이는 또 다른 열매를 꿈꾸고 있다. 그 꿈에 이르는 길에 또 다른 어떤 일들이 생길지 짐작할 수는 없지만, 그 열매를 맛보기 위해 오르고 또 오를 것이다. 다시 떨어질지라도 말이다.

그때 나를 받쳐줄 든든한 '비빌 언덕, 믿을 구석'이 바로 나 자신이었으면 좋겠다.


"아기곰을 받아 준 큰 곰처럼 든든한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힘이 될까, 생각합니다.
내일의 노란 열매를 다시 꿈꾸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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