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시간을 자면 합격하고 다섯 시간을 자면 불합격한다는 의미로 시험을 앞둔 사람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압박하는 심리적 장애물이기도 합니다.
대입 수험생일 때 평일에 5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잘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나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적은 없어도 은연중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잠에 대해 인색한 문화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아침 늦게까지 이불 속에 들어가 있으면 부모님의 불호령이 떨어지고, 낮잠을 자는 사람은 대개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4시간씩만 자도 거뜬하다는 성공한 유명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비정상이라는 생각보다는 성공하려면 저렇게 해야되는구나라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고속성장 사회 속에서 우리는 잠에 대해 관대하지 못했습니다.
수면의 중요성
우리는 일생의 대략 3분의 1을 잠을 자는데 할애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일생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잠으로 보낸다는 점에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잠이 박탈된 상태의 몸 컨디션을 떠올리면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매일 좋은 잠을 잘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인 매슈 워커는 UC버클리대학교 신경과학 및 심리학 교수로 수면 연구 분야의 저명한 권위자입니다.
이 책은 일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수면이 우리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저자는 "잠은 식단 및 운동과 함께 건강의 3대 기둥이다." 이라는 표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잠은 기둥 이상의 것이다. 잠이라는 토대를 빼내거나 아주 조금 약하게 만들면 식사와 운동에 아무리 신경을 쓴다고 해도, 그 효과는 떨어진다. "라고 주장합니다.
책은 수면이 우리 건강에 미치는 중요한 역할을 언급합니다. 잠은 생리계통 (심혈관, 대사작용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인지능력 (학습과 기억) 및 창의성과도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몸은 망가지고 뇌는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충분한 수면은 수면 부족일 때에 비해 학습능력을 높이고 기억력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창의성도 높여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종 질병들의 발병 가능성을 수면 부족일 때에 비해 확연히 낮춰줍니다.
그렇다면 꿈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제 잠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잠을 자면서 꾸는 꿈도 중요한 것일까? 비현실적이고 비논리적인 상황이 펼쳐지는 꿈은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일까?
꿈은 렘(REM)수면 동안에 꾸게 됩니다. 렘수면 동안 신체는 잠들어 있지만 뇌는 깨어있습니다. 그래서 대뇌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각종 시청각정보들이 꿈의 내용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사람은 보통 하룻밤에 4~6회 가량의 렘수면을 반복한다고 하니 우리는 매일밤 4~6회 가량의 꿈을 꾼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깨어나면 금방 기억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간밤의 꿈에 대해 물으면 기억나는 게 없거나 깨기 직전의 꿈 1개 정도만 기억하게 됩니다.
저자는 꿈이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낸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우리가 깨어있을 때 당한 부정적인 경험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같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그 부정적인 에피소드를 떠올릴 때 당시의 부정적인 감정까지 같이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손을 놓쳐 홀로 남겨지고 엉엉 우는 경험이나, 길을 가다 자동차에 치일 뻔한 아찔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때의 에피소드를 기억할 수 있지만 그 때 당시의 공포와 충격이 같이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그 부정적인 경험과 부정적인 감정은 분리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경험에서 감정을 벗겨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렘수면 동안의 꿈입니다.
책은 관련된 임상 결과들을 서술하면서 꿈의 감정 해소 기능을 설명합니다.
꿈의 부정적 감정 해소와 관련된 임상 결과 세 가지
1) 뇌 활성 스캔
무작위로 추출된 피실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후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사진을 보여주고 뇌의 감정을 관할하는 부분을 MRI스캔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아침에 그 사진을 보여준 후 12시간이 지난 당일 저녁에 동일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때의 뇌 활성을 스캔했고
두 번째 그룹은 밤에 사진을 보여준 후 12시간 지난 다음날 아침에 동일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뇌 활성을 스캔했습니다.
동일한 시간이 지났지만 잠을 잔 두 번째 그룹에서 감정에 관여하는 뇌의 활성이 상당히 감소한 반면, 잠을 자지 않은 그룹에서는 그런 감소 결과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즉, 똑같이 부정적인 사진을 보여주고 12시간 후 다시 그 사진을 보여줬을 때 잠을 자고 난 사람들은 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현저히 무뎌졌습니다.
2) 아픔에 관한 꿈과 우울증
이별이나 이혼 등 개인적인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꿈 내용을 기록하고 1년 뒤 이들이 우울증에 빠져있는지를 연구했습니다.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아픔과 관련된 꿈을 꿨는지 물어보고 관련된 꿈을 꾼 사람들을 추적 관찰한 결과, 1년 뒤 대부분 우울증에 빠져 있지 않았습니다. 반면 그 상황에 대한 꿈을 꾸지 않은 사람들은 1년 뒤 우울증에 빠져 있을 확률이 높았습니다.
개인적인 아픔이 있는 경험을 꿈으로 꿨을 경우, 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감소하고 정신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3) PTSD 환자에 대한 치료
전쟁에 참여한 이후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는 군인들은 렘수면 매커니즘에 장애가 있고
밤에 반복적인 악몽을 꾼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이 악몽을 꾸는 이유는 렘수면 동안꿈이 제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꿈이 부정적인 경험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떼어내려고 시도하지만 PTSD 환자들은 렘수면 매커니즘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을 벗겨내는데 실패합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꿈은 이런 시도를 하지만 실패하고, 그다음 날에도 시도를 하지만 또 실패합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PTSD 환자는 악몽이 반복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쟁에 참여했던 PTSD 환자들을 대상으로 프라조신이라는 고혈압 치료약을 처방했다가 우연히 이 약의 부작용으로 뇌의 노드아드레날린 분비가 감소하는 효과를 발견합니다.
노드아드레날린은 렘수면을 교란하는 화학물질인데 이 노드아드레날린 분비가 감소하자 PTSD 환자들은 건강한 렘수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PTSD 환자들의 악몽이 감소하는 임상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후 거듭된 임상 시험 결과들을 토대로 미국 보훈부는 프라조신을 악몽치료제로 공식 승인했고, 미국 FDA도 이 약을 고혈압 치료 외에 PTSD 환자의 악몽 치료제로 공식 승인했습니다.
꿈이 하는 역할
저자에 따르면 꿈은 부정적인 경험으로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분리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부정적인 경험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벗겨냄으로써 정신적으로 회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렘수면 동안의 꿈입니다.
꿈의 기능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는 아직 확실한 이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꿈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그 어떤 것도 명쾌하게 밝혀진 것이 없고 더 많은 연구 결과가 축적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꿈의 기능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접근해가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간밤의 나쁜 꿈도 의미가 있는 걸까
" 나쁜 꿈을 꾸었어."
부정적인 경험과 관련된 꿈을 꾸었다면 보통 나쁜 꿈을 꾸었다고 표현합니다.
군대를 재입대하는 꿈이라든지, 이별의 순간을 다시 겪는 꿈이라든지, 준비했던 시험에 떨어지는 꿈이라든지, 우리는 종종 이런 꿈을 꿉니다.
그런데 꿈이 부정적인 경험으로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떼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면 우리에겐 나쁜 꿈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을 다시 떠올리더라도 힘들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그 경험에 딸려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꿈은 우리에게 감정 치유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나쁜 꿈을 꾸었다고 찝찝해할 것이 아니라, 꿈을 통해 조금씩 치유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낮에 겪은 일로인한 부정적인 감정은밤에꾸는 꿈이끙끙거리며 떼어내 줍니다.
이제 나쁜 꿈을 꾸고 일어난 아침에는 찝찝함 대신 안도감과 함께 고마움을 느끼며 일어나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