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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un SHK Jul 31. 2023

누전차단기가 내려간 날

잠에서 깨어난 직후 개운하게 푹 잘 잤다는 느낌과 함께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있습다.

알람 없이 자연스럽게 눈을 뜬 아침이 그렇습니다.


"설마 지각은 아니겠지"

떡 일어나 급히 오늘 요일을 떠올려봅니다.


다행히 오늘은 연차휴가입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행복한 마음으로 집안을 둘러보는데, 꺼져있는 것 스마트폰만이 아니었습니다.

어제 저녁에 너무 피곤해서 TV, 전등, 에어컨도 끄지 않은 채 잠든 기억이 있는데 아침에 모깔끔하게 꺼져 있었습니다.

둘러보니 가전 제품의 전원이 모두 꺼져있었습니다.

 

집 누전차단기가 내려습니다.

 

차단기 스위치를 올려봤지만 곧바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보일러 전원도 꺼져 온수가 나오지 않고,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도 모두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건물 1층으로 내려가 경비 아저씨께 상황을 설명드렸습니다.

건물에 정전이 있었는지 물어봤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경비 아저씨께서는 곧바로 기전실연락을 남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집에 다시 올라온 후 기전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것저것 몇가지 물어보더니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얼마 뒤 기전실 사람들이 왔다 갔습니다.

방문해서 누전차단기 스위치들 중 마지막 쪽만 계속 내려오는 걸  인하더니

"에어컨쪽 문제있나 본데 에어컨 AS 부르세요"

하고 30초도 안 돼서 그냥 나갔습니다.

 

하지만 에어컨 전원코드를 완전히 분리해누전차단기가 내려오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세탁기, 보일러, 전자레인지 등 주요 전기제품들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하...이건 문과출신인 내가 봐도 에어컨 AS 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그냥  AS 받으라고 말하고 가다니...'


불만 섞인 한숨을 내쉬고 방 정리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챙겨 건물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올라가려는 때에 1층에아까 만났던 경비 아저씨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190X호 맞으시죠?


"네네"


", 맞으시구나! 쓰레기 버리러 가시는 모습이 맞는 거 같은데, 긴가민가해서 보고 있었어요.
어떻게, 해결이 좀 되고 계신가요?"


"아니요.. 기전실에서  올라오더니 에어컨 AS 부르라고 하고 그냥 가버리더라고요. 에어컨뿐만이 아니라 세탁기, 전자레인지, 보일러 등 집에 있는 가전제품 대부분이 작동하지 않는데,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그냥 돌아갔어요."


"어이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갔구만... 그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람들인가 보네.

차라리 전기관련 외부업체부르시는 게 요.
사실 우리는 전기에 대해 잘 몰라서 당황스럽게 생각하지만 기술자분들은 금방 원인을 찾아서 바로 해결하더라구요.

오면 바로 해결할거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얘기를 나누다보니 갑자기 답답하고 짜증섞인 기분이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경비 아저씨는 가 처한 문제황이 잘 해결되고 있는지 먼저 가와 물어보고, 내가 처한 불편함에 대해 같이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마지막 금방 잘 해결될 거라며 위로도 남겨주셨습니다.


이 건물은 약 600여 세대가 거주하는 대형 주거용 오피스텔 공간입니다. 경비 아저씨 여러 명이 교대근무를 하며 수시로 바뀌다 보니 입주자과 경비 아저씨 사이에 친밀함이 형성될 수 있는 환경아닙니다.

그분은 자리에 앉아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수도 있었겠지만, 내 얼굴을 알아차리고 나의 불편이 잘 해결되었는지 일부러 다가와 여쭤보셨습니다.


그 몇 마디 말에 나의 불만이 사라졌습니다.


문제 자체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문제를 둘러싼 나의 짜증 섞인 감정은 해소되었습니다. 이제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전자제품과 보일러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불편은 작고 사소한 일이 되었습니다.


'곧 고쳐지겠. 날씨도 더운데 냉수 샤워나 하'


집에 돌아와 관리사무실전화를 했습니다. 다시 상황을 설명하고 직접 해결이 어려우면 외부업체 연락처 전달해 달라고 했습니다.


몇 시간 뒤 기전실에서 다른 검자분들을 단한 장비와 함께 올려보냈습니다.

전자기기를 하나씩 체크를 하더니 에어컨이 아닌 전자레인지에 전류가 흘러 누전차단기가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전자레인지 전원코드를 분리하고 누전차단기 스위치를 올리자 나머지 전자기기들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불편함은 한나절만에 해결되었습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신기합니다.

경비 아저씨의 관심어린 몇 마디에 나의 불만과 짜증은 사라졌습니다.

누전차단기가 내려와 에어컨, 보일러, 세탁기, 전자레인지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지만, 감정에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너무나 커 보이던 불만이 감내할만한 작은 불편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말에 전해진 마음 덕분이었습니다.

누군가 내가 처한 상황에 공감하고 나의 문제가 빨리 해결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을 때 나의 감정은 상황을 모두 해결한 것만 같습니다.

군가의 정한 관심이 담긴 말 몇 마디에 문제상황에 대한 나의 감정은 바뀌었습니다.


타인에게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면서 문득 나는 누군가에게 공감 가득한 위로를 해주었던 적이 있나 싶습니다.

회사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업무로 고생하는 직원을 봤을 때 얼마나 위로를 해줬던가,

갑작스럽게 고민에 빠진 친에게 얼마나 따뜻한 공감을 해줬던가 돌아보게 됩니다.


스스로 공감력이 좋은 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 문제가 생기면 감정을 달래주기보다 얼른 해결책을 찾는 편인거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당황하고 있는 사람의 감정을 살피는 일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상황을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지만 감정을 다독이는 일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해낼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갑작스럽게 전차단기가 내려 덕분에 이웃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느끼,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는 사람인가를 스스로 살펴니다.

잠시의 불편함 덕분에 감사함을 느끼고 성찰하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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