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스페인 - 여행 중 작은 휴식, 시체스
바르셀로나 근교 도시
by Shaun SHK May 23. 2020
*늦게 쓰는 스페인 여행기 - 감염병이 잦아들길 바라며
바르셀로나는 재미난 볼거리 가득한 도시입니다. 대신 세계적인 관광 도시이다 보니 수많은 인파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기도 합니다.
잠시 바람을 쐬러 바르셀로나 근교 도시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선택지는 산악도시 몬세라트 또는 해안도시 시체스였습니다. 화창한 날씨와 푸른 지중해를 떠올리니 바닷가에 인접한 시체스가 좋아 보였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시체스까지는 기차로 약 한 시간 남짓 걸립니다. 역에서 내려 바닷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주택가 골목을 굽이굽이 지나가게 되는데 중간중간 여행객들을 군침 돌게 하는 빵집, 카페, 아이스크림 가게들이 보입니다.
무더운 날씨에 어울리도록 아이스크림을 사서 걷기 시작합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라도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함께하니 발걸음은 다시 가벼워집니다.
시체스 해변으로 가는 골목길은 조용했습니다. 바르셀로나와는 달리 시체스에서는 낮잠 시간인 시에스타에 맞춰 가게 문을 닫고 쉬는 곳이 많았습니다. 대신 붐비는 인파나 소매치기 걱정 없이 한가로이 걷는 발걸음이 좋았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해변에 도착했습니다. 높다란 야자수가 여기가 지중해 기후임을 보여줍니다.
파란 하늘 아래 한적한 시체스 해변이 펼쳐져 있습니다. 여유롭게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 차가운 물에 발만 살짝씩 담가보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바닷가 근처의 성당 건물과 골목 사이사이에도 한적함이 가득합니다.
여기에는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 여유로운 발걸음만이 있습니다. 붐비는 인파의 바르셀로나에 며칠 머물다가 와서 그런지 이런 한가로움이 좋았습니다.
건물 외벽의 색감이 푸른 지중해를 연상하게 만듭니다. 이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가는 여행객들이 꽤 있었습니다.
깔끔해 보이는 숙소들은 휴가 시즌에 수많은 여행객들로 가득 차게 될 것 같습니다.
해변가의 식당은 브레이크 타임이라 아직 식사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해변을 따라 깔끔하게 조성된 거리는 무척이나 한산합니다. 오후 시간이었지만 드문드문 카페에서 차를 한잔씩 하는 사람들 외에는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잠시 푸른 바다를 보며 머릿속을 비워 봅니다. 바닷가에 오면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는 시간을 한 번씩 가지게 됩니다.
해변가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가족이 보입니다. 근방에 무언가 만들어 놓은 것이 있길래 가까이 다가가서 봤습니다.
스핑크스를 만들어 놓았는데, 생각보다 잘 만들었습니다. 바닷가 모래로 이집트 건축물을 소환해 낸 손재주가 범상치 않게 느껴집니다. 여기 해변가엔 재주꾼들이 종종 다녀가나 봅니다.
근처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메뉴는 먹물 빠에야와 연어 스테이크입니다. 식당 분위기도 좋았고 상당히 만족스러운 식사였습니다. 스페인에서는 다행히 음식으로 불만족했던 때가 없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시체스에도 어둠이 짙어져 있습니다. 한적했던 낮이었는데 밤이 되니 더 고요해졌습니다.
해변가 밤공기가 신선합니다. 아직 4월 초순이라 아침저녁으론 쌀쌀하지만 맑고 쾌청한 밤공기가 좋습니다. 열차시간 때문에 다시 기차역으로 가야 하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한적하게 1박 2일을 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묻어났습니다.
큰 기대를 하고 간 곳은 아니었지만, 정신없고 분주했던 여행 일정에서 깊은 편안함을 주는 휴식의 시간이었습니다.
여행을 갔을 때 대도시 옆의 조그만 도시가 의외로 소소한 기쁨을 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대단한 볼거리가 있다든가 유명한 거리나 건축물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 도시에서 콕 집어 무엇을 보겠다는 것도 없습니다.
대신 별다른 기대나 사전 정보 없이 가게 되면 무언가를 부지런히 봐야 한다는 압박 없이 걸을 수 있습니다. 한가로운 발걸음 속에서 온전히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위해 여행을 오게 되지만, 낯선 여행지에서는 아무래도 많은 볼거리들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특히나 휴양지 여행이 아니라 유럽 도시 여행이라면 하루에 1만 보 이상씩 부지런하게 다니곤 합니다.
타이트한 여행 일정을 짰더라도 하루 정도는 가볍게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일정 강박 없이 시간을 보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볼거리 많은 도시를 며칠 동안 다니는 중이라면 하루쯤 근교 도시에서 여유를 느껴보는 것도 좋습니다.
휴가 중에 또 다른 휴가, 휴식 중에 더 깊은 휴식을 얻는 기분입니다.
그렇게 짧은 시체스 일정을 마치고 다시 바르셀로나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