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사람을 만납니다.
'사람'은 제품을 만들고, '사람'이 제품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얕은 상술과 말재간이 아닌,
사람이 갖고 있는 스토리를
먼저 보고 싶어요.
진심을 다해 하루를 사는 나와 같은,
또다른 '나'의 이야기.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크라우디 에디터 전지은입니다.
윈저노트 (Windsor Knot)
명사; 넥타이 묶음법 중에서 매듭 부위가 가장 크게 완성되는 것으로, 매듭 부분이 좌우 대칭으로 폭이 넓고 볼륨이 있으며, 한 번 묶으면 느슨해지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남자는 이름을 짓는 데에만 1달이 걸렸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사업자 등록을 하러 나가려 열어 본 옷장. 백화점 근무 시절 사 모은, 20개가 훌쩍 넘는 넥타이를 보고 생각이 바꼈다고. “그래, 신사의 상징은 넥타이지!” 장교 출신으로서, 귀에 박힌 ‘국제 신사’라는 미사여구. 얼굴을 내걸고 만드는 제품에 그 ‘신사의 멋’을 녹이고 싶었다. 5년 가까운 군생활과 3년 간의 백화점 근무 생활이 유물처럼 남겨준 친근한 타이법, 윈저노트. 감이 왔다. “그래, 이런 건 직감이지!”
‘신뢰로 만들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시대. 핸드폰을 사고 벽돌을 받는 시대.
신뢰를 논하다니, 진부할 수도.
판매자들의 다양한 사탕발린 말과 다른 조악한 품질을 경험하며 이미 잔혹하게 휘둘려왔기 때문이리라.
“‘믿음’을 사는 거죠. 더 높은 가격이라도 백화점에서 구매하는 건.” 백화점 플로어 매니저로 3년 간 일하며 몸소 느껴 온 건,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구매과정의 중요 요소라는 거. 이쯤 되면 디자이너가 창작을 멈춘 건 아닐지 의심스럽기까지 한 특정 유명 가방 회사, 한 두 번만 사용하라는 건지 싶은 약한 내구성의 또 다른 가방 회사. 언짢은 마음에 인터넷 쇼핑몰 제품으로 눈을 돌리면 사진 기술과 모델 컷에 속게 됐다. 출근 길을 함께 하면 품위를 손상시키기 딱 좋은, 그런. 턱없는 품질. 200만원, 300만원이 훌쩍 넘는 명품 가방의 품질은 갖추면서도 중간 가격대인 가방을 만들고 싶었단다.
인터뷰 촬영 중인 윈저노트 임기표 대표
가방의 원가와 마진을 먼저 고려하지 않았다.
사업가다, 절대 일반적이지 않은.
2018년 3월. 적성에도 잘 맞고 즐거웠던 백화점을 떠났다. 멋드러진 남자 가방, 너도 나도 필요한 그 남자 가방을 꼭 만들어보이겠다는 남자를 동기들은 걱정했다. 안 되는 사업엔 이유가 있다고. 국내 단 두 곳 있는 가방 디자인 학원, 하필이면 전 직장 바로 맞은 편. 무작정 다녔다. 가장 예쁘고 좋은 정장, 깔끔한 외관이 업무 능률을 높여주던 백화점 생활에서 벗어났다. 세상 편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자연인’의 모습으로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들고 다니는 남자를, 전 직장 동료들은 코 앞에서도 긴가민가했다고. 그렇게 기본적인 디자인 공부를 했다. 입시를 준비하는 한참 어린 학생들 속에서.
세로형 토트백.
첫 제품, 첫 성공.
300만원에 달하는 명품 P사의 세로형 가방에 꽂힌 후 비슷한 제품을 백방 찾았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P사와 비슷한 모델을 발견해 기대감 속에 주문을 했다. 20만원이 넘는 지출. 택배 상자에서 나온 건, 마감 처리도 안되어 있어 올은 있는대로 다 풀려있고 손잡이도 형편없이 달려있는 가방 형태의 무언가. P사의 가방, 결국 사야했단다. 남자도 숄더백 메고 토트백 들고 싶다고. TPO에 맞는, 색상이 다양한. 그러면서도 가격은 적당하고 품질은 좋은. 머리 속에만 있던 형태를 직접 그려냈다. 만들고자 한 디자인들은 명확했다. 백화점에서 매일 명품 브랜드 제품들을 봐 왔던 터라, 남자들의 니즈를 담아내고 싶은 맘이 컸던 터라.
아직도 없어요, 품질, 가격 모두 좋은 세로형 가방. 윈저노트 것 말고는.
짐이 많아 슬프지만
클러치는 포기 할 수 없는 남자에게.
남성용 클러치야 생로랑, 프라다, 고야드 등 명품 브랜드에서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가죽 두 장을 위태롭게 엮어 놓아 하나같이 얇았다. 남자는 짐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넣는 물건 모양대로 불룩불룩 해지며 심각하게 무너지는 외관. 안에서 뛰놀며 신나게 꼬이는 이어폰 줄과 립밤 등.
어그러진 모양의 가방을 든 신사. 잔뜩 뒤섞인 물건을 찾느라 진땀빼는 신사.
듣기만 해도 어울리지 않죠?”
‘옆판을 넣어 제작하면 문제가 해결될텐데’ 싶었다. 옆판이 있는 클러치, G사 한 군데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이마저도 가죽 제품은 아니었다고. 제작에 착수했다. 가죽만을 맞대 박은 클러치보다 제작비가 3배 이상 비싸졌다. 하지만, 확신했다. 명품같은 품질, 게다가 불편을 개선한 클러치라면, 12만원의 가격에도 반응이 올 수밖에 없으리라. 예상은 정확했다. 이 클러치로만 5천만원 이상의 금액을 펀딩 받았으니까. 남자는, 갖고 있던 고민을 다른 많은 이들도 공감한다는 생각에 기쁘면서도 설렜다.
마진율 0%
감사의 마음을 담은 카드 지갑
펀딩 성공과 함께 제작도 그렇게 순탄하게 이뤄질 줄 알았다. 유달리 기승부린 여름 폭염은 클러치 제작에도 문제를 일으켰다. 가죽은 뒤틀리고, 마감 약칠은 마르지도 않고. 클러치 300개 모두 불량이었다. 과감하게 전량 폐기를 결정. 가죽 발주부터 다시 시작했다. 손해는 어마어마했지만, 내걸고 있는 가치인 ‘신뢰’를 쉽게 버릴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제품을 폐기하다 보니 공장 측 손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높은 품질 기준은 남자에겐 고객을 대하는 마음이었지만, 공장엔 손해 자체였다. 결국 공장도 윈저노트의 가치를 생산하는 고객이기에, 공생 방안에 대해 숙고했다. 폐기 처리되는 가죽의 일부를 사용하면 카드 지갑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남자의 손길이 닿은 제품과 꿈을 응원하는 구매 고객에게도 보답하고 싶었다.
마진율은 무조건 0%로.
선한 마음과 의미로 시작했더니 그 이후의 것들은 착착 맞아 떨어졌어요.
저렴한 가격으로 진행한 카드 지갑 펀딩. 또 다시 품절되는 기록을 세웠다고.
남자가 진행한 펀딩처럼 제품이 인기있다면, 수량을 늘려 제작하는 게 일반적. 하지만, 남자는 한정생산의 원칙을 고수했다. 클러치와 카드지갑 모두 초기 수량이 품절됐지만 새로 수량을 늘리지 않았다. 펀딩 기간이 10일 이상 남아도 메인 사진을 품절로 바꾸고 더 이상 펀딩 받지 않았다. 남자가 일일이 검수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도 했지만, 고객들과의 믿음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역시 윈저노트, 믿고 산다’는 맛이 있어야죠.”
마감 퀄리티, 절대적으로 크리티컬하다.
제작 과정의 가장 마지막 작업부터 보고 지갑을 여는 게 소비자기에.
가방업계에서 ‘마감약칠(기리메)을 한국에서 한다’는 말은 돈 아낄 생각이 없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칠하고 말리고, 칠하고 말리는 작업의 반복. 두 번 칠한 결과물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라면 절대 안 살 것 같아서요.” 마감처리조차 안 된 가방을 ‘신사의 가방’인 것처럼 어떻게 속여 팔 수 있겠냐며, 말간 얼굴로 소신있게 말했다. 세 번, 네 번 마감칠을 더 했다. 한 번 더 바를 때마다 비용은 수직 상승. 명품 브랜드의 가방이 그 값을 해내는 데에는 마감 약칠만 10번을 하기 때문이다. 인건비가 비싼 한국이기에, 공장과 타협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강력히 내세웠던 품질기준에 대해 공장 측에서 공감하고 난 이후, 오히려 애매한 품질의 제품은 자체적으로 폐기 후 납품해주셨다. 일반적인 폐기율은 30% 정도. 심지어, 전량을 폐기한 적도 있다고.
비용문제로 인해 일반적으로 보세나 인터넷 쇼핑몰 제작 상품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YKK 지퍼도 포기하지 않았다. “3배 이상 비싸다고 알고 계시죠? 그럼, YKK지퍼가 3천원이라는 말은 어때요? 비싸게 느껴지나요?” 원가 절감을 위해 2천원조차도 아까워하는 제작자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냐며 되물었다. 내가 들고 싶고, 사고 싶은 가방을 만드는 마음. 그래서 제작비용과 품질을 trade-off 할 수 없었다고.
소통, ‘상식’이 ‘인식’을 높이는 선순환
백화점에서 일할 때 남자는 사과하러 다니기 바빴다. 컴플레인 해결에 앞서 고객의 감정을 살피는 게 먼저였기에. 고객 문의 사항에도 첫인사, 계절인사, 본론, 본론에 대한 두 가지 이상의 근거, 끝인사로 최소 5줄 이상의 답변을 달았다. 이런 일련의 고객 응대 과정과 태도를 당연한 상식으로 생각하고 있던 남자는, 크라우드 펀딩에 발을 들인 초반 경악했다.
꿈을 실현시켜주는 이렇게 소중한 분들께 어떻게 저렇게 대답할 수 있지?
심지어 제품이 한 달이나 늦어지는데도 응원하며 힘내라고 하는
천사 같은 고객에게? 저렇게 하는데도 살아남는다고?
남자는, 배우고 체화한 상식으로 응대했다. 상식적인, 고객과의 소통은 윈저노트의 인지도를 높였다. 신선하게 느낀 고객들은 이런 제작자 처음 본다며 도리어 고마워하기도 했다고. 고객의 따뜻한 댓글과 메시지 등을 캡쳐해, 전 직장 동기들에게 보내주면 다 같은 반응이었다. “같은 한국이 맞냐? 나도 퇴사하고싶다.”
윈저노트를 만드는 제3 의 눈
궁금해하고, 요청하고, 소통합니다. 끊임없이.
일반적인 구매자의 행동 패턴과는 다른 거죠.
그간의 펀딩을 통해, 목소리가 반영되기를 바라는 적극적인 후원자들을 만나왔다고. 그 소통의 결과로서, 디자인에 변화가 생기기도 하고 다음 제품이 정해지기도 했다. 외모만큼 다양한 선호도와 호오로 인해, 디자인 하나에도 아쉬운 구석이 발견되지 않을 수 없었다.
“피드백 반영이 불가능한 경우 이유를 꼭 말씀드리고, 더 나은 디자인의 가방으로 만족시켜 드릴 것을 늘 약속드립니다.” 현재는 여성용 가방에 대한 요청이 많아 이를 구상 중에 있다고.
“로고, 이젠 본격적으로 만들려구요.” 문의도 요청도 이미 많이 받았단다. ‘내가 들고 싶은 가방’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고민했다고, 사실. 처음 보는 브랜드의 거창한 로고가 박힌 가방. 구매자 입장에서 애초에 매력적이지 않은 건 차치하고,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으니 브랜드 자체에만 집중할 것 같았다. 가방 품질의 우수함을 먼저 판단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로고 제작을 미루고 있었다고.
이 자리를 빌어,
댓글과 메시지로 좋은 아이디어를 주시는 후원자님들께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 한 아마추어의 작품’
강력한 문구가 이어 준 인연
“저희 윈저노트는 유독 후기가 많아요.” 같은 남자로서, 인터넷에 후기를 남기는 게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 알아서 남성 후원자들의 넘치는 응원이 늘 감사하다고 한다. 그 많은 후기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하나를 꼽으라면, 수차례 재가공돼 새로운 글을 다수 생산해 낸 ‘최선을 다 한 아마추어의 작품’ 리뷰가 아닐까. 그 진심이 담긴 글 하나가 계기가 돼 즐거운 일이 많이 생겨났고, 감사한 마음에 연락을 드려 식사를 함께 했다. 알고보니 카피라이터 작가님이었던 그 분, 어느새 소중한 인연이 됐단다. 최초의 그 문구는, 최근 “윈저노트 임기표, 이제 어엿한 프로 아니겠냐”는 너스레로 진화했다. 더욱 책임감있는 제작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불어넣어준다고.
(참고: 김재성 님의 리뷰 ‘최선을 다 한 아마추어의 작품’ )
https://www.facebook.com/Plusclov/posts/1731903803555365
‘세계 최초를 쫓는 일의 공허함’
가장 중요한 가치, 잊지 않도록
“‘세계 최초’의 의미를 지니는 어떤 물건을 생산해내는 것보다도 후원자, 구매자와의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이 우선돼야 합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윈저노트를 꾸려오며 늘 잃지 않으려는 태도란다. 남자는 이 깨달음을,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 중 ‘세계 최초를 쫓는 일의 공허함’ 부분을 인상깊게 읽으며 얻었다.
세계 최초라는 말. ‘처음이니까 고객, 당신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하라’는 의미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는 통찰. 온갖 미사여구로 점철됐던 백화점 마케팅 업무의 순간들이 쓸데없는 무언가로 소멸되는 것 같았다고. 고객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조건.
멀리서 찾지 않아도, 크라우드 펀딩시 내걸었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많은 회사들도 한 예가 아닐까. '믿어주세요, 우리 꼭 이렇게 멋진 제품 만들어드릴게요' 같은 문구를 내던져버리고 누가 봐도 저품질로 제작한 제품들.
고객이 진심으로 원하고 만족할 방향이 무엇일지 깊이 고민했다. ‘신뢰’와 ‘믿음’을 주는 가방을 만들리라. 한번 더 마음에 새겼다고.
아,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한 모든 제작자들에게도 추천드리고 싶단다.
열정을 품은 채 잔뜩 기 모으고 있는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윈저노트를 시작할 때의 제가 떠올라서...크라우디와 펀딩 진행하기로 마음 먹었죠.
구성원들의 열정, 제작자와의 솔직한 소통. 펀딩 플랫폼 업계 후발주자라는 기존 인식을 상쇄할 수 있는 크라우디의 장점이라 생각했다. 성장 드라이브가 걸리는 건 시간 문제. 신뢰를 내세우는 윈저노트와 믿음직스러운 크라우디, 윈윈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파트너라고 판단하기까지 어렵지 않았다.
하나하나 그의 손길을 거친 결과물.
단단한 철학과 진지한 태도를 알면 알수록, 그가 앞으로 내놓을 제품이 더욱 궁금해지더라구요.
내 하루의 무게를 같이 버텨 줄, 서 있는 장소에서 나를 빛내 줄
그 무언가가 누군가의 진심이 녹아든 것이라면 더없이 믿음직스러울 것 같아요.
곧 진행할 펀딩이 기다려지는 건 저뿐만은 아닐 거예요.
크라우디에서만 만나볼 수 있어요.
머뭇거리지 말고 들어와보시겠어요?
찬 바람에 몸이 움츠러드네요. 하지만, 봄은 곧 올 거예요.
당신 하루에 따뜻함을 얹어드리고 싶어요.
에디터 전지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