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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Park Mar 02. 2021

코로나 시대, 대학은 등록금만큼의 가치를 가질까

[클럽하우스] <대학>이라는 단어에 갇히지 않으려면

클럽하우스라는 앱에서 참 멋있는 대학생 친구들의 다람쥐 토크에서 '<대학>이라는 단어에 갇히지 않으려면'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름 치열한 대학생활을 했던 나로서 나눌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대학이라는 단어에 갇힌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에 오랜만에 클럽하우스에 참여했다. 


코로나가 세상의 모든 플랫폼을 바꾸어 놓아 버린 이 시대에 가장 큰 틀이 바뀌어 버린 것이 '교육'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 변화의 시대를 겪고 있는 대학생들이 바라보는 <대학>이란 내가 겪었던 대학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바뀌어 버린 교육의 모습 속에서 과연 '대학'이라는 존재가 등록금만큼의 가치를 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면서 듣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 나의 기억에 남았던 말들 그리고 나의 생각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한번 기록해 보려고 한다. 




<대학>이란 단어에 갇힌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의 불안했던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생각해 보면서 대화 속에서 <대학>이라는 단어에 갇힐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자신 스스로를 그 단어에 갇히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나에게 있어서 대학은 한편으로 안전한 울타리 같은 것이었다. 나의 정체성이 온전하지 않을 때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지 세상에 밝히고 드러내기 위해서는 쉬운 이름표가 필요하다. 그게 대학생인 나에게 있어서는 내가 누구인지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나는 그냥 '대학생'으로 존재해도 괜찮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울타리를 벗어나고자 하니 이제 더 이상 나를 설명할 이름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게 불안의 상태에 놓이는 것이 두려웠고, 어쩌면 그 깊은 내면에서는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두려웠다. 


한편으로 <대학>에 갇힌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코로나 시대에 대학이 학문의 장으로써 또한 커뮤니티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다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온전하지 못한 대학을 사회적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금전적 부담을 안고도 그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수업을 온라인으로 실시하고, 처음 맞는 상황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아지고는 있지만 오프라인의 강의만큼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 문제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업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 정말로 학문의 깊이나 배움의 질이 떨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것일까. 나에게 이러한 의문을 갖게 한 것은 한국의 대학교 모습과 내가 다녔던 영국의 대학교 모습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교육을 마친 사람으로서 영국 대학교에서 자신이 오롯이 감당해 내야 하는 '책임'에 익숙하지 않았다. 짧게 차이점을 비교하자면 영국은 학생이 수업을 나오는 것에 대해 교수나 학교가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한국의 많은 대학교처럼 출석체크를 하지도 않고, 이미 코로나가 없던 시대에도 대부분의 모든 수업은 녹화가 되어 학교 그룹웨어에 업로드되므로 자신이 원할 때 그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수업을 제대로 들었는가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학생에게 있다. 수업에 대한 참여를 평가받지는 않지만 그 수업을 이해하고 또 나아가 스스로 수업과 관련된 주제에 대해 얼마나 찾아보고 탐구했는가에 대해서 평가를 받는다.

그렇기에 온라인 플랫폼이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시행착오들로 인해 수업이 지연되거나 시스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업시간이 단축되는 문제를 제외하고 출석을 체크하고, 그 수업에 왔는지 안 왔는지 확인하는 그 과정이 없어진 온라인 수업에서의 수업의 질에 대한 문제가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시기를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 이렇게 말하는 것도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또한, 커뮤니티의 장으로서의 대학의 역할도 크다. 10여 년 간의 학교 생활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는 과정 속에서 어쩌면 학문을 익히고 배우는 것보다 더 크고 넓게 세상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의 온라인 수업은 이 과정을 가장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생각을 전환하면 이렇게 '클럽하우스'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대학>이라는 이름 안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과의 비대면 만남이 더욱더 활성화되고, 대학 내에서의 커뮤니티의 장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울타리 안이 아닌 바깥의 세상에 더 눈을 돌리게 되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대학>의 역할과 형태가 많이 변화되었다. 그렇다면 기존의 <대학>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의 대학을 경제적인 부담을 안고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서 꼭 다녀야만 하는 것일까?



<대학>은 선택일까, 필수일까?

대학을 꼭 다녀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다르게 접근해 보자면 사람들은 왜 대학에 오는 것일까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많은 대화 속에서 느낀 것은 그것이 평범하고, 당연하고, 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한국의 학생들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지 않은 채 대학 교육을 위해 12년의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느꼈던 점은 내가 만난 사람들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영국 대학생들도 자신이 뚜렷하게 무엇을 하고 싶어서 학과를 선택하고 그 학과를 졸업하고 직업을 찾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생물학 학부생 중에서도 많은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 생물 성적이 잘 나와서, 자신이 지원한 학교 중에 이 곳이 제일 좋은 것 같아서 라는 이유로 그 대학, 학교를 선택해서 들어온다. 


우리나라의 과도한 경쟁구도와 입시제도는 분명 문제를 안고 있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19-20살 이 시기까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것 같다.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것이 힘들고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그것을 고민할 충분한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대학>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과정의 한 영역이 되는 것이다. 나를 찾아가는 고민을 하기 위해서 <대학>이라는 버퍼(buffer)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위한 버퍼일 수도 있고, 사회에서 평범하게 보통의 다수가 선택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안전지대를 위한 버퍼일 수도 있다.


새로운 플랫폼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평범한 것이 되고, 많은 것들이 변화해 나가는 이 시대에 <대학>도 더 이상 평범하게 보이는 것으로 남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왜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 <대학>이라는 버퍼가 없이도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탐구하고 생각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학은 '선택'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렇게 바뀌게 될 것 같다. 



<대학> 이후의 삶은 어떨까?

아직까지는 사회에 나오면 나를 한 장 짜리 이력서로 표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대학 4년의 생활은 단순히 학교 이름, 성적, 년도 한 줄짜리로 표현하기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누군가와 경쟁하고 한정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 한 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학>을 서열화해서는 안된다고 말하지만, 그 대학의 이름 안에 그 사람이 그 대학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고, 얼마나 성실했는지를 담고 있다고 본다. 한정된 자원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걸러내기 위해서 아직까지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말하는 사람도 많다. 코로나로 인해 취업의 문이 더 좁아질수록 필터링(Filtering) 작업은 더욱더 필요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대학이 판단의 재료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 놓인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지 않고도, 또 들어갔어도 <대학>에서 얻은 것들을 삶에서 나타내며 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삶의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이 판단의 재료가 되는 시대도 바뀌어 갈 것이다. 단순히 대학 이름이 학점이 나라는 사람의 판단의 기준으로 세상에 비춰지지 않기 위해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은 경험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다.  





이 주제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대학>이라는 것이 자신이 지나온 길일 수도, 지금 몸 담고 있는 세상일 수도 또 바라보는 목표일 수도 있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 시기가 나를 찾는 중요한 순간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 속에서 반복되는 삶 속에서 깊이 눌러왔던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기이자 나의 존재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아프지만 깊은 고민을 하는 시기이다. <대학>이 코로나 시대에 이전과 같은 가치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대학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사회가 아니라 내가 되어 대학이 '선택'이 되는 시대가 되기를 희망한다.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 또는 많은 사람들이 간 그 보통의 길을 지나기 위해 <대학>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 속에서 등록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일 아닐까. 내가 스스로 대학이 등록금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큼의 '투자'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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