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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May 28. 2021

시간이 서둘러 간다 해도 괜찮다

빗줄기에 꽂힌 애매한 감성

날씨 따라가는 애매한 감성이 종종 발동을 건다.

비가 내렸다 개었다가 간헐적이다.

오늘 감성은 오락가락한 비에 꽂힌다.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가 무표정한 하늘과 닮아있다.

바람을 타는 빗줄기는 방울방울 빗방울을 날리면서 나뭇잎에 매달린다.

한창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던 붉은 장미는 고개를 떨군 채 무리 지어 서 있다.

물방울을 잔뜩 머금은 애잔한 모습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지만, 막간의 흔들림이 밀당처럼 보인다.

공간과 공간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흐른다.

적당하게 희미한 빛이 실루엣처럼 깔린다.

대낮의 적막이다.

테이블에 놓인 커피잔이 걸리적거린다.

예기치 못한 침묵이 서먹하다. 

애써 무심퉁하게 허공에 대고 한마디 던진다.

음~ 비 오는 날엔 수제비가 땡기드라!

애매한 감성이 한순간에 방향을 튼다.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가는 모래처럼 가속도가 붙어 흘러간다.

시간은 늦출 수 없고, 나이는 누구나 비껴갈 수 없다. 

이젠 힘을 빼고 쉬엄쉬엄 살기로 했으니 시간이 서둘러간다 해도 괜찮다. 그래도 된다.

남보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오르는 것만 잘사는 것으로 착각하고 지칠 만큼 치열하게 사는 삶이 좋아 보이던 시절은 지나갔다.

일각이 여삼추라 여겼던 시절엔 시간의 소중함을 몰랐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그리운 시절로 돌아갈 수 없으니 이제 남은 시간에 충실해야 한다.

의 작은 변화에 소홀하고 알잘 없이 팽개쳤던 무딘 맘을 반성한다.

시간의 의미가 커질수록 감사함도 커진다.

'세상에서 제일 먼 길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우산>이란 글이 생각나는 비 오는 날이다.


우산


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이요.

죽음이란 !

우산이 더 이상 펼쳐지지 않는 일이다.

성공이란!

우산을 많이 소유하는 일이요.

행복이란 !

우산을 많이 빌려주는 일이고

불행이란 !

아무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일이다.

사랑이란 !

한쪽 어깨가 젖는데도 하나의 우산을 둘이 함께 쓰는 것이요.

이별이란!

하나의 우산 속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우산을 펼치는 일이다.

연인이란 !

비 오는 날 우산 속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요.

부부란 !

비 오는 날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갈 줄 알면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이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알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비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우산이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의 우산이 되어줄 때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의 마른 가슴에 단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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