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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Nov 02. 2022

기꺼이 서울을 벗어나다

시린 물기 머금은 가을빛이 투명하다.

하늘하늘 가녀린 옅은 향기가 가을빛에 잠긴다.

뒹구는 낙엽 바람 따라 모였다 흩어지고 

슬픔덧칠한 가을이 갈 길을 재촉하며 홀연히 저물어간다.


 계절이 오고 간 그사이 아들이 분가를 했고, 우리는 오랜 서울생활청산했. 순차적으로 이어진 변화가 이제야 제자리를 잡아간다. 

장성한 아들의 독립은 예정된 수순이었고, 분가는 아들이 미국에  있는 동안 이미 경험을 했던 터라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인생은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지만 모든  선택에 따라 결정된.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서 삶의 다른 방향성도 마찬가지다.

우리 부부는 남은 여생을 경기도 외곽인 이곳 파주 운정에서 보내기로 결정하고 서울생활을 정리했.

오랫동안 유지해온 생활권에서 벗어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지만, 노후를 위한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기대하며 묵은 마음을 내려놓는다.


이미 형성된 운정신도시에서 약간 벗어난 곳.  

버스 노선 겨우 한 개, 아직 모든 게 한적한 곳.  

곳의 공기는 맑고 청량하다. 

깊숙이 들이마시는 심호흡에서 건강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순전히 기분 탓이겠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너른 벌판과 비닐하우스.

눈앞에 펼쳐지는 심학산의 완만한 능선이 자연과 가까워져 있음을 실감 나게 해 준다.

여전히 낯선 풍경이지만, 차츰차츰 정을 붙여가면 익숙해지겠지.




펜데믹 상황을 차치한다 해도 줄어드는 활동 반경에다가 미안함을 덜어낼 정도의 안부만을 물으며 지내는 게 익숙해졌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도 공적 모임을 우선시했던 예전과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중심, 사적 영역으로 순위가 바뀌고 있음을 확연히 느낀다.


10월이 가기 전, 이곳으로 이사를 한 덕분에 제주도에  큰언니와 광주의 작은언니가 올라오고 동탄에 사는 막내까지 합세해서 입주 축하차 다녀갔다.

언니들에게는 사전에 올라온 김에 며칠 지내다가 내려가야 한다말해두었기 때문에, 언니들이 올라오기 전부터 남편과 나는 집에서 자동차로 30분 내외의 반경 안에 있는 볼거리, 즐길거리, 카페, 맛집들을 찾아보며 답사까지 마쳤다.

덤으로 주변 가까이에 의외로 갈만 곳이 많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시간이 될 때마다 골라 다닐 재미 몫까지 쏠쏠하게 생겼다.


일정상, 언니들이 이미 갔다 온 곳을 제외하고 평일에 사람 발길이 별로 닿지 않는 곳을 선택하다 보니 범위가 좁혀졌다. 마장 호수, 율곡수목원, 운서원, 가 볼만한 카페 몇 군데, 음식점 등등. 그렇게 우리는 3박 4일 동안 가볍게 가을바람을 쐬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세상에서 우리 누나들과, 동생이 제일 착한 것 같다"라고 했다던 남동생 말을 빌리지 않아도 서로  배려하는 사랑으로 똘똘 뭉쳐있는 우리 5 형제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런 마음들은 더욱더 애틋해지고 깊어지지 않을까?

서로 만나면 웃음이 끊이지 않아 주름살만 늘지만, 이젠 서로 나이 든 모습이 거울 보듯 닮아있는 것이 신기해서 보고 또 보. 

속엣말까지 툭 터놓고 소통수 있는 고마운 두 언니와 다정한 동생들이 있다는  내겐 커다란 축복이고, 자랑이다.


세월은 빠르고 빨라, 어리게만 여겼던 우리 집 막내가 올해 환갑을 보냈고, 큰언니도 어느새 칠순이 지났다.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으니 우리가 어쩌겠소.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고 위안하며, 남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무슨 일이든 꾸물거리지 말고 부지런하게 열심히 자는 의미로 중국 도연명의 雜詩 1<잡시 1> 중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

盛年不重來(성년불중래)

一日難再晨(일일난재신)

及時當勉勵(급시당면려)

歲月不待人(세월불대인)

......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은 한 번뿐이다

좋은 때에 부지런히 힘쓸지니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 도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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