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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Feb 21. 2023

어떤 하루

빈 들판과 논두렁을 제집처럼 차지하고 있던 철새들이 며칠 사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논바닥에 머리를 박고 낱알을 쪼아 먹는 작은 무리의 철새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았을 때 오리들인가 했는데 날아오르는 게 몸집이 제법 큰 새였다. 철새들을 근거리에서 본 적이 없어 처음엔 상당히 놀랬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파주 인근 마을 논밭에서 겨울 철새 무리가 관찰되고 있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생김새가 쇠기러기와 같지만 정확 지는 않다.

그 후로 산책길에 오다가다 지켜보곤 했더랬다.

언젠가 TV를 통해 보았던 철새들의 생태 습성과 무리를 지어 비상하며 이동하는 모습에 감탄사를 자아냈던 기억까지 보태져 눈길이 더 갔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수천 km 머나먼 여정을 비행하는 철새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생명력. 정확한 방향성, 위험에 대처하는 기민함까지 그들의 생존법이 놀랍고 경이로웠다.

먹이를 위해서든, 번식을 위해서든 겨울 철새들이 머물다 떠난 자리가 휑하다.

서식처로 적당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봄기운을 감지하고 일찍이 북상한 걸까?

봄이 오기까지는 찬 공기 속 차가운 바람과 마주해야 할 날이 아직 남았건만. 정녕 떠났단 말인가?




소음이 적고 비교적 한적한 이곳으로 이사 온 후, 더불어 좋은 점은 주변의 자연을 통해 새롭게 배우는 것이 많다. 무심히 지나쳤던 길가의 나무, 돌멩이, 풀 한 포기도 한 번 더 유심히 보게 되고 알아가는 즐거움이 늘어가고 있다.


남편은 취미가 등산이라 산을 좋아하고 자연에 대한 관심이 많다. 평소에도 내게 나무와 야생화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방출하는 걸 즐긴다. 심지어 자기가 가르쳐준 나무나 꽃, 풀을 발견하면 나를 테스트하는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나의 주특기인 듣고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한계를 뻔히 알면서도 남편의 가상한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우리가 나누는 대화 속에는 나무, 꽃, 야생초 등등이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알아갈수록 좀 더 깊이 파고들고픈 욕구가 생기는 건 당연지사.

며칠 전, 남편은 숲과 나무에 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겠다고 숲 해설 입문 과정과 국립수목원 교육프로그램에 등록하겠다고 했다.

은퇴를 하고도 늘 바쁘던 사람이 여기로 온 뒤부터 유유자적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며 외출도 자제하는 듯 보였는데 어쨌거나, 학구파인 남편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이쯤 해서 박수를 보낸다.

배움이 좋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함께 하자고 했으면 난 먼저 손사래부터 쳤을 테니까.


매일매일이 질리지 않으려면 일상 속 습관에서 자신만의 재미를 찾아야 한다.

가령, 정리된 공간에서 차를 마시며 느슨하게 시간을 보낸다든지, 아침공기를 가르며 산책한다든지, 하늘과 구름만 바라보며 하루해를 보낸다든지, 종일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그런 것.  

때때로 생각들을 붙잡고 몇 자 끄적이며 하루를 보내는 이런 것.

하루의 즐거움이 단순하고 단조로운 그  익숙함이다.

또 하루가 휙휙 지나간다. 누가 빨리 감기라도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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