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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숙 Dec 08. 2023

조용한 배웅

조용한 배웅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사람처럼 익숙하게 산책을 마치면 저녁이었다 온 동네가 물에 잠길 때쯤 창문들이 불을 켰다


  미처 챙겨가지 못한 것을 찾으러 돌아오는 중인 누군가의 푸른 숨소리 같아 잠시 서성이면 

  약국, 편의점, 과일가게...저 건너편의 세계는 그만 가닿을 수 없는 먼 이국이 되고  

   

  서툰 말들뿐이었다 풍경마다 묵음으로 끼워 넣는 뒤늦은 말들 역시 기억은 그런 방식으로 어두워지고 또 두꺼워졌다 

  밤은 모두에게 잊힌 사람인 듯 와서 유리창에 찬 입김을 남기고 가끔 꿈으로 들이치기도 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조금도 따뜻해지지 않는 꿈 여기도 거기도 아닌     

 

  그러나 이제 나와 함께 하는 것들이 저 새들 같기를 적어도 질병 같은 것이 아니길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끝없이 이어진 길과 건물 사이로 사라지거나 공중을 가로지르는 저 새들!     


  빈 가지 아래 놀이터에 넘어져 있는 자전거 옆에 물웅덩이에 어리는 구름에도 남긴 새들의 발자국을 주우며

  일용할 근심과 식은 빵 한 조각 제출해야 할 서류를 정리하기도 하며     


  내가 모르는 계절 속에서 핀 봄꽃을 보기도 했다 한 번도 불행하지 않은 적 없는 


  강 건너 먼 나무는 바람이 없는데도 나뭇잎들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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