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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우호우 Jan 27. 2022

2021년 회고, 드디어 대기업 취뽀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커리어

2021년을 돌아보면 심리적으로 힘든 일과 다사다난한 이슈가 많았고 그 때문에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성과도 어느 정도 뒤따라왔기 때문에 나름 의미 있는 해였다. 2021년을 톺아보며 2022년에는 좀 더 생산적으로 살기 위해 회고를 한다.



2021년 1월 ~ 5월 - 추락과 인내

첫 회사인 강남의 모 스타트업을 4개월 만에 뛰쳐나와 간 곳은 한 중견기업이었다. 그러나 입사 얼마 후, 서류엔 경영악화로 인한 권고사직이라는 문구가 붙었고 2021년 2월, 나는 백수가 되었다.

정말 다행히도 이전 회사에서 일한 시간을 더해 어찌어찌 실근무 180일을 채울 수 있었고 실업급여를 받을 조건을 만족시켰다.

비전공자로 UX 디자이너를 하게 된 것이 잘못인 걸까, 아니면 단순히 실력이 부족한데 너무 높은 곳을 탐한 것에 대한 대가인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엔 실패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가고 싶은 회사는 있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처럼 느껴져 감히 내가 쳐다보는 게 옳은 일인지, 나 자신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되었고 이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번져 수렁에 빠지고 결국 우울증 진단을 받게 된다.


부정적인 생각은 중독성이 강했다. 하면 할수록 나 자신을 폄하할 거리를 더 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존감은 바닥을 찍고 이를 배달 음식으로 해소하며 살은 계속 쪘다. 나중엔 생각 자체를 하기 싫어져 낮인지 밤인지도 모를 정도로 게임을 한 탓에 수면 패턴이 망가졌고 인생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만 갔다.


그렇게 허송세월 약 1달을 지내던 도중, 나 자신에 대해 현타가 왔다.


이렇게 사는 게 정답일까? 나중에 후회하진 않을까? 학창 시절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언제 이런 한심한 사람만 남았지?



한 달간 비생산적으로 지내니 햇빛을 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고 무엇보다 사람 냄새가 그리웠다. 내 현재 상황을 타개할 무언가를 찾기 위해, 혹은 오랜만에 사람 냄새를 맡기 위해 서울 사는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고 내가 가진 옷 중에서 가장 비싸고 멋진 옷을 꺼내 입고 미용실에 가 머리 세팅을 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는 남자끼리 국밥집에서 보는데 왜 소개팅 가는 것처럼 하고 왔냐고 핀잔을 줬지만 오랜만에 맡아본 바깥세상 공기 때문인지 그런 핀잔은 들리지 않았고 오랜만에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나의 좌심실은 미치도록 뛰고 있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렇게 재생하는 법을 다시금 떠올리고 죽어버린 나를 재생하기 시작했다. 활기 스텟이 올라가니 구직 준비에 집중할 수 있는 멘탈을 갖추게 되었고 포트폴리오 준비를 위해 그룹 스터디에 참여할 용기가 생길 정도로 호전되었다..


한동안 쉬어버린 탓에 떨어진 감각을 다시 끌어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UI UX 디자인 분야는 매 순간 트렌드가 나오고 그로 인해 주관적인 인사이트가 자주 바뀌는 분야이기 때문에 이 흐름에 다시 편승하는 과정에 애를 먹었다. 스터디 모임 시간에 각자가 작업한 결과물을 발표할 때 내가 작업한 결과물은 항상 초라하게 느껴졌고 이는 지금보다 더 불타올라야 한다는 결의에 명분이 되었다. 한 번은 스터디에 멘토님이 계셨었는데 초반보다 나아지는 결과물에 멘토님의 피드백 중에서 칭찬의 비율이 높아졌고 그렇게 포트폴리오 퀄리티는 내가 봐도 높아질 수 있었다.


그렇게 준비한 포트폴리오로 다시금 회사들의 문을 두드렸고 6월에 최종적으로 나름 이름 있는 프로덕트를 운영하는 회사에 UX UI 디자이너로 합류했다.




2021년 6월 ~ 9월 - 절망과 실망

대한민국의 2030 구성원 중 임의로 한 명에게 이 앱을 아세요?라고 물으면 10명 중 8명 정도는 안다고 대답할 정도의 프로덕트를 개발 & 운영하는 회사에 합류했다. 드디어 나도 인지도가 있는 프로덕트를 만져볼 수 있겠구나, 구성원들은 다들 능력 있고 젠틀할 거야!라고 부풀어올랐던 기대는 약 4개월이 지난 뒤 타노스에게 소멸당한 스파이더맨처럼 파스스 무너져버렸다.

스타크 씨 여기는 진짜 아니에요...


대부분의 프로세스는 주먹구구식이었고 전문 인력의 수는 항상 적었으며 몇몇 분들은 정치질 분위기 조성 및 책임 전가를 밥먹듯이 하는 분위기가 일상이 된 "좋좋소"였기 때문이다(이 과장님 사랑합니다 ㅎㅎ). 이 때문에 이 회사의 잡플래닛 평점은 2점 초반을 항상 유지하였고 입사자들은 1년도 못 채우고 퇴사하기 일쑤였다.

비록 주니어급 동료들의 성격은 매우 좋았고 실력도 우수해서 배울 점이 많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조그만 회사에서 정치와 뒷담을 일삼는 몇몇 시니어분들을 보며 인간이라는 존재에 환멸을 느낄 뻔도 하였다. 첫 입사 시 다짐했던 기대는 이내 기억도 나지 않게 희석되었고 이 회사에서의 목표는 어떻게든 1년만 채우고 퇴사하기로 변질되어 버렸다.

인생 드라마 중 하나인 "좋좋소", 시간 날 때 한 번쯤 보는 걸 강추한다


그렇게 버티다 결국 나는 또 구직 준비를 하게 된다. 군생활이 다시 시작된 것 같이 하루가 10년처럼 느껴지고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새로 입사하게 될 회사만큼은 반드시 남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명함을 내밀 만한 회사임을 바랐다. 이런저런 기준을 세우고 기준들과 니즈들의 교집합을 분석해 본 결과 나에겐 대기업 입사가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솔루션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때가 약 9월쯤이었고 퇴근하면 매일 새벽 1시까지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대면 면접 연습을 대기업에 맞춰서 준비했다.



2021년 10월 ~ 12월 - 진짜, 진짜 찐으로 마지막 취준.

본격적인 주경야독의 시작이다. 하반기 대기업 공채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고 가고 싶은 회사들은 전부 서류를 내밀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내가 중고 신입이라서 그런 건지 혹은 저번 시즌보다 자소설 내용이 발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서류는 한 곳 빼고 올킬할 수 있었다.

확실히 중고 신입이 구직에 있어서 패왕인 것 같다. 포트폴리오에 회사에서 일했던 작업물을 조금 곁들였더니 서류 합격률이 올라갔다. 직무 경험이 중요하지만 그중에서 특히 데이터 기반 사고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역량을 많이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실무 면접을 보면서 많이 받았다. 굳이 전문적인 데이터가 아니라도 파일럿 테스트를 돌려보고 얻은 정성 데이터를 이용해 가설을 검증하고 어떤 점이 부족했으며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를 서술한 프로세스만으로도 데이터 기반의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얼추 증명되는 느낌이었고 이로 인해 여러 면접에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면접이 끝나고 하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편하게 물어보라는 질문에 나는 항상 이 질문을 했다.


제 포트폴리오와 이력서의 어떤 점 때문에 면접을 신청하게 되었나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흑역사 같은 질문이다. 중소 중견이나 스타트업, 혹은 대기업 경력직에선 이 질문이 괜찮은 질문이지만 기본적으로 대기업 신입 공채는 인사팀이나 대행업체에서 미리 거르고 실무진에 넘기기 때문에 내가 지원한 신입 공채에서 할 적절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면접관분들은 솔직하고 담백하게 질문에 대한 답을 주셨다. 칭찬도 많이 받았지만 보완하면 좋을 점, 인상 깊었던 포인트를 낱낱이 짚어주신 분들이 계셨고 이를 양분 삼아 포트폴리오를 보완해서 다음 면접에 제출하곤 했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면서 대기업 신입 공채 문을 두드리다가 결국 가고 싶었던 곳에 합격하게 되어 나는 무사히 이 회사를 탈출할 수 있었다.



2022년 1월 -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커리어

합격소식을 들은 당일,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부모님은 드디어 네가 사람 구실 하게 되었고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다며 위로해 주셨다. 2021년의 나는 정말 볼품없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나름 네임밸류 있는 대기업 소속이 된 지금, 조금이라도 떳떳해질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 내 멘탈 관리를 도와준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이전보다 더 잘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던 순간이었다.


나처럼 중고 신입인 분들과 대기업 하반기 공채 스터디를 하며 "우리 나이대에 대학교 졸업하고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다니는 것은 솔직히 취업 준비의 연장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아요. 솔직히 대기업 가기 좀 더 쉽도록 직무 역량 쌓으려고 가는 거지..."라는 푸념을 한 스터디원으로부터 들었다. 이 말에 반은 공감하고 반은 공감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에 하반기 공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커리어나 이력을 관리함에 있어서 네임밸류와 회사의 규모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들에게 나 자신을 소개할 때 혹은 외부 미팅을 갈 때, 적어도 허리가 숙여지는, 을의 입장은 되기 싫다는 심리가 크게 작용해서일까. 대기업에는 대체로 잘하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다른 곳 보다 잘 마련되어 있다는 현실 때문일까. 이러한 이유로 나는 무조건 대기업을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였고 그 맥락에서 스터디원의 푸념이 어느 정도 공감이 되었다.

반면, 중요시하는 가치가 네임밸류가 아닌, 특정 산업군을 반드시 도전해보고 싶다거나, 무조건 주체적으로 이끌어가고 싶다는 니즈가 있으면 반드시 대기업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고 그만큼 중요시되는 가치의 풀은 다양하기 때문에, 이 측면에서 보면 그 푸념이 공감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반기 공채 준비를 하며 임재범 님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노래를 가장 많이 들었다. 블랙 기업에 갇혀 탈출도 못 하고 커리어를 망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가 매 순간 찾아왔었지만 이 노래를 들으며 멘탈 관리를 할 수 있었고 결국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던 것 같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부당함과 타협하지 말자. 결론적으로 초심과 타협하는 꼴이 되므로 목표를 세웠던 과거가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유혹을 뿌리치고 멘탈 관리에 신경 쓰면 목표를 이루는 것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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