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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Jul 03. 2024

타인을 통해 나를 본다, 청년 도배사 배윤슬 편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오랜 시간을 교실 안 '선생님'으로 지내왔던 내가 2023년 겨울이 올 무렵 사직을 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로 한 이후 내 인생에는 참 많은 변화가 생겼다.


모두 교육 관련 조직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세부 지향점이나 조직 구성원의 문화가 매우 상이하게 다른 두 곳의 기관을 3개월 단위로 거쳐, 현재는 7월 1일 자로 교육계 시민단체의 일원이 된 것이다.

내 곁의 지인들은 2024년 나에게 일어나는 참으로 다양한 삶의 변화들이 재미있다는 듯 큰 웃음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애써 고군분투하며 무언가를 쟁취하듯 일궈내려는 삶의 자세를 놓아버리고 삶이 나에게 자연스럽게 선물해 주는 것들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선물처럼 지내보고 싶던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있다는 듯 어느 누구 하나 거창한 질문을 하며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냥 담담하게 웃어주며 '네가 좋으면 그만이다.'라고 말해준다.


지인들의 그런 담백한 응원이 마냥 고맙기만 하다.


7월 1일부터 근무하게 된 기관에서 주관한 교육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출근 둘째 날 야근을 하게 된 나는 '청년 도배사 배윤슬 님'의 생생한 특강을 직접 듣게 되는 영광을 얻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로 2년간 근무하다 돌연 도배사가 된 배윤슬 님은 그날의 특강이 다른 강연과는 달리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라 더 많이 떨리고 긴장이 된다고 말해주었다. 너무 긴장되어서 청심환을 먹고 왔다며, 자신이 어린 시절 어떤 교육을 받아온 것 같은지 고민하여 그 어떤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려고 노력한 그녀의 진지한 고민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강의 프로그램 기획의 목적이 과열된 학벌주의 폐해를 해결함에 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우리나라 SKY 대학의 졸업생으로서 세상 사람들의 기준과 잣대에서 자유롭게 소신 있는 직로선택을 해나간 젊은 청년으로서 그녀의 삶은 마땅히 세상에 알리고 싶은 사례가 것 같다.


그런데 정작 그녀는 세상의 그런 시선이 조금은 부담스러운가 보다 싶기도 했다. 세상 사람 중 누군가는 그녀에게 '네가 명문대를 나온 도배사니 이렇게 세상의 주목을 받는 거 아니냐?'라며 명문대생에게 늘 주어지는 세상의 특혜에 무관하게 자신만의 기준과 소신대로 살아온 듯 싶어도, 너는 이미 충분히 명문대생으로서의 특혜를 받고 있다는 뾰족한 질타를 던졌던 모양이다.


미처 예상치 못했던 비난 아닌 비난과 같은 이야기를 처음 마주하고 얼마나 그녀의 마음이 아팠을지,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그저 학교 밖 세상에 나와 직업인으로서 살아가며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감에 많이 괴로웠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명확한 기준을 세웠으며 그저 묵묵히 앞을 향해 나아갔을 뿐이다. 어찌했건, 그녀의 선택이 '일반적인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시대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사고하는 방식이 매우 다양해서 세상 모든 이에게 늘 박수받을 수는 없다는 걸 알만한 나이의 이들도 막상 삶의 장면 속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타인의 질타와 비난을 받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마음 아픔을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런 아픔을 견뎌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도배가사 되고 싶었던 이유는 누군가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었던 그녀의 진심이 그녀의 의도와는 다르게 평가될 수밖에 없는 직업세계의 관행적 구조와 문화 때문이라고 했다.


사회복지 기관 운영 특성상 자신이 도움을 줄 사람들도 등급을 매겨 선별을 해야 하고, 자신이 도움을 주는 방식마저 선배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자신이 도움을 주는 행위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하게 되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차라리 주관적 타인의 평가에 좌우되지 않게 온전히 숙련된 기술력을 키울 수 있는 일을 택하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의 기술력으로 타인의 삶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면 보람 있는 일이니 말이다.


강연 중 그런 말을 늘어놓는 그녀를 바라보며, 순간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싶었다.


지난 세월의 나 역시, 늘 아이들과 학부형에게 좋은 교사가 되고 싶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가 되고 싶었으나 그녀와 비슷한 이유들로 하염없이 괴롭고 아팠기 때문이다. 나는 공공의 교육제도 운영 시스템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저 편안하고 자유롭게 사람들을 대할 수가 없었고 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자기 검열을 해야만 했다.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아이를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문제를 풀어보려 했으나, 나의 진심과 무관하게 뾰족한 반응을 감당해 내야 한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점점 더 '나의 진심'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늘 갑갑하고 괴로웠다. 사람을 대하는 일이 직업인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지 가슴 아프게 고뇌한 시절들이 있었다.


모든 직업에는 세상 만물의 이치가 그러하듯 밝음과 어둠이 있다. 그런데 이는 몸소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는 절대로 깨우치고 알아내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특히나 어둠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어 하니 그렇다. 엄청난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는 한 특정 직업의 어둠이 세세하게 세상에 드러니 가는 어려운 일이다.


어찌했건, 청년 도배사 배윤슬 님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본인이 직업세계를 통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한 기준을 세웠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도전했다.


타인과 세상의 기준에 너무 쉽게 흔들리며, 실패로 보일 수 있는 상황을 너무나 두려워 자기 내면이 보내는 속 깊은 메시지를 '삭제'해 버리는 많은 이들에게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새롭고 신선하다'. 그녀는 남들이 하는 말에 자기 인생이 좌우되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마흔 살을 마주하며 남들이 '좋은 직업'이라고 말해주는 '교사'라는 업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남들의 시선과 평가보다는 나에게 남겨진 생의 시간들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걸 중요하게 인지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과연 '좋은 직업'이라는 게 있을까?

많은 이들이 '좋은 직업'이라고 믿고 있는 직업이 있을 뿐이며, 많은 이들에게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지닌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세상의 기준과 나의 기준이 동일한가에 관한 질문은 내 영혼을 위해 꼭 한번쯤 던져보아야 하는 철학적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던져볼 만한 기회를 살면서 가져본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었다.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는 교육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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