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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Mar 05. 2024

그리운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양희은 작가의 '그럴 수 있어' 책 표지 모작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는 학교라는 공간의 교실의 수업 시간 중 딱 두 번, 노래를 듣고 갑작스레 왈칵 눈물을 쏟아본 경험이 있다.


그중 하나는 나의 과거 고2 시절, 음악 감상 수업 중 있었던 일이다. 나는 선생님이 들려주신 성악가 신영옥 씨가 부른 'Mother of mine'을 듣다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혔다.


수업 중 감상곡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경험이 흔한 건 아니니까 나 스스로의 갑작스러운 감정적 신체 반응에 스스로 적지 않게 당황했던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놀라운 장면은 나의 장기기억에 고이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그때 그 순간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생생하다.


영어 가사로 불려진 악곡이었음에도 그 목소리에 가슴 절절이 묻어나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노래를 듣는 내 심장에 사무칠 정도였다.



그리고 꾀나 오랜 시간이 흐른 내 삶의 어느 시점, 나는 또 한 번 교실에서 노래를 듣다가 울었다. 나를 울린 노래는 이번에도 '엄마'를 주제로 한 것이었다.

 

물론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 그때와는 다르게 나는 여고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아이들을 위한 수업을 이끌어가야 하는 선생님이었다. 침착하게 수업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내가 갑자기 민망한 울음을 터뜨리게 된 건 바로 가수 양희은 씨가 부른 '엄마가 딸에게'라는 제목의 노래 영상 때문이었다. 엄마가 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마치 감동적인 모노드라마 한 편을 감상하는 듯 내 가슴을 울리고 있었다.


워낙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라 아이들 앞에서 표정과 목소리 변화가 다양한 나인 걸 알지만, 웃는 표정이나 성낸 표정도 아닌 갑작스러운 눈물범벅의 표정을 숨길 수 없게 된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나 스스로에게 '아이들 앞이지 않은가?' 하며 다그쳐보았다. 하지만 한 번 터진 눈물이 빨리 정리가 안되었다. 나란 사람은 웃음도 그리고 눈물도 스스로 조절이 쉽사리 안 되는 사람이다.


조용한 수업 시간에 감상 곡으로 들려오는 노래를 듣고 나는 그렇게 두 번 눈물을 펑펑 쏟아보았다. 그리고 우연이지만 그 노래는 모두 '엄마'에 관한 노래였다.


나에게 '엄마'는 언제나 목마른 그리움의 노래처럼 참기 어려운 슬픔을 고이게 만드는 존재인 게 분명하다.


어린 시절을 지나 보내며 나는 늘 엄마의 사랑이 아쉬웠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구호가 유행하던 그 시절 '딸, 딸, 아들' 삼 남매 중 가운데 끼인 둘째 딸로 태어났다는 자격지심 때문이었을까? 이 세상에 나의 탄생을 알리는 첫 시작과 동시에 내 성별이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아이로 받아들여졌을 거라 짐작했었다. 언니와 남동생에 엄마의 사랑이 더 기울어지는 것 같아서 슬퍼했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시절 엄마는 나에게 분명 자신이 딸로서 받았던 사랑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려고 부단히도 애를 쓰셨다는 걸 말이다. 지금의 내가 엄마로서 딸에게 내가 어린 시절 받았던 사랑보다 더 많이 베풀어주고만 싶은 마음처럼 말이다.


흘러가는 세월 안에서 그러했던 엄마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을 만큼 나는 성숙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엄마'는 그저 사무치게 그립기만 한 존재일 뿐이다.


딸을 세상에 낳아 그 딸이 돌이 채 되기 전에 갑작스럽게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주어야 했으니 말이다. 나에게 '엄마'는 이제 밤하늘에 떠 있는 반짝이는 별이 되었다.


벌써 그렇게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엄마는 더 이상 나에게 어떤 이야기도 건네어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엄마와의 대화는 나에게 절대로 '현재형'이 될 수 없다. 그 대신 과거 엄마와의 추억을 가다듬어서 '엄마가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이렇게 말해주었겠지!'라고 상상을 해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통해 추억하는 '엄마의 목소리'로 엄마와 '대화'를 시도해 본다. 내 귀에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정겨운 엄마의 목소리니까 그 상상이 결코 어렵거나 낯설지가 않다.


오늘, 집 근처 도서관에 들러 배회하듯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이 책 저 책 구경을 하다가 우연히 양희은 작가의 '그럴 수 있어'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삶을 살아낸 작가의 담담하고 진솔한 감정들이 묻어났다. 책 읽는 내내 온통 사람냄새가 진동을 한다. 세월 속의 그 어떤 그리움도 짙게 묻어있었다. 그리고 작가는 나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을 지내온 분인데도 여전히 엄마를 그리워했다.


이 시대에 양희은 작가의 글에서 묻어나는 '사람 냄새 진동하는 진짜 어른 같은 그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어른은 몇이나 될까?


엄마도 없는 나는 그런 어른이 진심으로 그립다.

엄마에게 위로가 받고 싶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이제 엄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딸이 고만 싶은가 보다.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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