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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Jul 23. 2024

여름의 행복은 이런 맛이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쏟아지는 폭우가 익숙해져 가는 여름이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언제든 틈만 나면 심술궂게 쏟아지는 굵은 빗방울 때문에 어느덧 우산을 챙기지 않는 외출이 불가능해진 2024년의 7월이다.


먹구름 낀 회색빛깔 하늘이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계속되는 이 시간 속에서 내 마음은 유난히 새파랗던 청량감 넘치는 지난봄의 화창한 나날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우리의 몸은 3차원의 물리적 시공간 아래 가두어진 탓에 끊임없는 제약과 한계를 스스로 인식할 수밖에 없지만 육체와는 달리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오가는 우리의 마음은 그새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새로운 시공을 심상 속에 펼쳐놓아 보인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의 작용이 우습다.


 우두둑 쏟아지는 여름비를 지켜보다가, 그새 푸르른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하얀 구름을 그리워하고 있는 내 마음의 진짜 주인은 과연 누구인 걸까? 내 마음의 주인이 정말 나인 것일까?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여름날이면 실내에서 꼬수운 커피향기를 맡으며 창밖의 빗소리를 감상하는 게 최고지'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잠시 비가 잦아드는 타이밍이 되면 '이럴 때 얼른 집 밖으로 나가 산책이라도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여 외출 준비를 해보았다. 특별히 장 볼거리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우산과 가방을 챙겨 집 밖으로 나섰다.


발 길 닿는 대로 걷다가 정겨운 동네 카페에 잠시 들러 시간을 보내다 오는 여유로움을 누려보리라 생각했다. 오랜만에 비 내리는 날 창밖을 바라보며 간단한 펜드로잉이나 해야겠다며 종이와 펜을 챙겨가지고 나오니 마음 한편이 새로웠다.


집 밖으로 나서자, 물먹은 초록의 짙푸른 흙냄새가 온 세상에 펼쳐져 있다! 연초록이 아닌 찐 초록 세상이다.

진정한 초록의 맛을 보여주겠다는 듯 물기를 잔뜩 머금은 풀들이 사방에서 흔들거린다.


집 안에서 빗소리를 들을 때에는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기억이 샘솟는다.


작년 이 계절 이 무렵에도 분명 나는 짙푸른 초록빛깔 물먹은 자연의 향기에 홀딱 빠져있었다. 그제야 비 내리는 여름날의 정취가 내뿜는 초록의 매력을 마음껏 느껴주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렇지, 행복은 바로 이런 거야.' 라며 소리 없는 혼잣말을 가슴으로 해보았다.


풀도 나무도 무성하게 많은 동네에 살고 있는 나는

한여름의 짙푸른 초록 빛깔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음에 행복했다.


우산과 가방을 들고 총총거리며 걷는 내 옆을 지나가던 대여섯 살 나이의 꼬마 아이가 짜증 섞인 말투로 엄마에게 투정을 부린다. "엄마! 나는 이렇게 바닥에 나뭇가지가 많은 게 정말 더러워." "나는 이런 게 너무 싫어!"


아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록달록 인공적인 완성체의 장난감들에 너무나 익숙하게 자라나서, 자연 속의 동식물을 친숙한 놀잇감으로 대해보지 못한탓에 정돈 되지 않아 보이는 자연의 대상을 '더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되어버린 아이들이 많아진 세상이라는 걸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아이의 말에 아이 엄마는 특별한 대꾸를 해주지 않았다. 그런 아이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자니 괜스레 아쉬운 마음이 솟아올랐다. 내가 만약에 아이의 엄마였다면, "왜 나뭇가지가 더럽게 느껴졌어?" "그냥 비바람이 불어와서 땅에 떨어진 것일 뿐인데?"하고 물어보며 대화를 이어가 보고 싶었을 거라는 아쉬움 말이다.


산책길에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아이의 이야기 듣고서 혼자 별 생각을 다 떠올리게 된다 싶다가도 '아가야! 너에게는 더러워 보이는 나뭇가지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흙투성이 범벅이 되어버린 나뭇가지가 소중하게 느껴져. 어느덧 나는 그런 나이게 되었네'라며 혼잣말을 가슴으로 해보았다. 그리고는 엉뚱하게 흙투성이 범벅의 나뭇가지를 사진으로 '찰칵' 찍어두었다.



그리고는 내가 사랑하는 동네 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한여름의 물먹은 초록이들이 내뿜는 향기에 취해보았다. '너무 좋다!���'




조금 걷다가 카페부부(bubu)에 들렀다. 사장님이 손수 내려주신 드립 커피에 얼음을 동동 띄운 시원한 유리잔을 앞에 두고 앉아서 무얼 그려볼까 주변을 살폈다. 우드 테이블 위에 귀엽게 자리 잡고 있는 하트 모양의 다육이가 눈에 띄었다.


내 그림의 주인공이 되어줄 하트 모양의 식물이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는, 잠시동안 펜과 종이와 하나가 되어 오롯이 그림 그리는 순간에 머물러 보았다. 그렇게 시간은 내 곁에 머물러 느리게 흘러갔다.  내가 사라져 버리고 풍경과 하나가 되는 시간, 평온함은 잔잔하게 내 곁으로 잦아든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늘 인간이라는 존재를 탐구 대상으로 삼아왔던 거 같다. 여전히 나는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서적을 읽으며 흥미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컬하게 나는 어느새 사람보다 자연을 훨씬 더 많이 사랑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거 같다.


동식물에 관해서는 아는 지식이 전무한 수준으로 얕건마는, 인생은 늘 그렇게 모순으로 가득 차있다. 그러니 흥미로울 수밖에!


한창 시원한 카페 안에서 나 홀로 펜드로잉 삼매경에 빠져있다가 다시 집으로 유유히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걷다가 아무 이유 없이 멈춰 서서 내 곁의 무성한 초록 잎사귀들을 바라본다. 이런 여유로움이 나는 너무 좋다.

모든 게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며 변화하는 이 시대에 내가 누릴 수 있는 값진 호사로움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기만 하다.


무심코 멍하니 초록의 잎사귀를 바라보던 중 아기 '흰나비'가 갑자기 날아들어와 풀잎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비 오는 날 물먹은 초록 빛깔을 누려보려는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자기도 나의 나들이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다는 냥 날아와 나의 시야를 즐겁게 만들어준 '흰나비'가 신비로웠다.


어느새 모든 자연이 정겨운 친구처럼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가끔씩 거울을 보며 하나씩 솟아오르는 흰머리가 반갑지만은 않게 느껴지지만, 언젠가는 나의 흰머리조차 자연스럽고 정겹게 느껴지는 날들이 찾아오리라!


그저 세월 속에 모든 것들을 정겹고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봐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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