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간해서 낮에 자리에 눕지 않는데 오전내 방바닥을 뒹굴뒹굴. 비오는 날의 낮잠을 달고 폭신한 카스테라에 비유한 분이 계신데 딱 그 맛이다. 어제 마신 술 탓이다. 시작은 칵테일 파티. 협찬 비엠스 와인을 맛만 보려고 했는데 워낙 종류가 많아 저녁 뷔페까지 와인을 곁들이니 취기가 돌아 본 행사가 시작될 무렵엔 정신이 어질어질ᆢ!
나 좋아서 시작한 그림이지만 나 좋은 거 빼고 도대체 세상에 무슨 쓰임이 될까 회의에 빠질 때가 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같은 상아탑 속에 갇힌 예술적 가치 말고 의식주에 해당하는 실생활의 가치 말이다. 어제 진행된 <2025 파리패션위크>는 내 시답잖은 고민에 작은 해답의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이런 것두 있어! 어때, 쫌 근사하지 않아? 이런 내면의 속삭임에 지나치게 경도될 필요는 없겠으나 하루 한나절쯤은 취해도 무방할 듯 싶다. 그만큼 보람되고 흡족했다는 얘기다.
몹시 궁금했다. 어쭙잖은 그림 2점으로 어떤 패션 의상이 나올까? 촌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을까? 그림의 색감이 천에 그대로 전이될까? 결과는 모두 기우였다. 드레스는 우아했고 색감은 산뜻했다. 내 손끝에서 나온 작품 이미지가 의상으로 새 새명을 얻는 건 신비롭다고 해도 좋을 만큼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늘씬한 모델들이 그 옷을 입고 런웨이를 할 때는 나의 아바타가 무대 위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질 뻔했다. 의상은 생활이지만 패션은 예술에 가깝다. 생활과 예술이 접목되는 흥미로운 작업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쭈욱 이어질 것이다.
(* ps 이번 패션쇼는 디자이너 양해일 선생의 내년 봄, 여름 패션 트랜드를 국내외에 발표하는 자리이며, 발표장 로비에는 그림을 제공한 7명 작가들의 작품 전시도 함께 이루어졌다.
패션쇼의 전 과정은 20분 정도의 영상으로 편집되어 10월 1일 오전 11시 -프랑스시간/한국시간 오후 6시- 파리패션위크 공식 웹사이트에서 방송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