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화2 (연재)
로마는 천년 왕국이라 할 만큼 아주 역사가 오랜 나라입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과 아프리카, 이슬람 지역에 이르기까지 넓은 땅에 걸쳐 있던 거대한 제국이었지요.
그러나 처음 로마가 건국될 당시만 해도 이탈리아 반도의 작은 도시 국가에 지나지 않았어요. 신화에 따르면, 건국 시조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는 전쟁의 신 마르스의 아들로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났습니다. 형제간의 권력투쟁에서 최후 승자가 된 로물루스는 이 후 로마의 최고 지배자가 되었지요.
그런데 당시 로물루스에게는 한 가지 큰 걱정거리가 있었어요. 로마는 대부분 남자들로 이루어진 전투 집단이라 여자가 매우 부족했답니다. 신부감이 없으니 나라를 이어갈 자손을 얻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한 가지 꾀를 냈어요. 이웃 부족인 사비니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던 것이죠.
“신전 앞에서 축제를 열 것이니 함께 먹고 마시고 즐깁시다!”
그러나 이것은 사비니 여인들을 납치하기 위한 속임수였어요. 잔치가 한창 무르익었을 무렵, 로물루스가 신호를 보내자 로마인들이 사비니 여인들에게 덤벼들어 납치해버렸지요. 사비니 남자들은 엉겁결에 당한 일이라 속수무책이었답니다.
자기 나라로 도망친 사비니인들은 이를 갈았어요. 그들은 빼앗긴 딸과 누이를 되찾기 위해 차근차근 힘을 길렀지요. 그리하여 몇 년 후,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쳐들어왔습니다. 로마와 사비니 남자들 사이에 곧 피 튀기는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지요.
이 때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어요. 이미 로마인의 아내가 되어 아이를 낳고 살던 사비니 여인들이 그들 사이에 끼여들었지요.
“제발 싸움을 그만 두세요. 여기서 헛된 피를 흘리게 된다면 서로가 더 불행해질 뿐이라구요.”
그녀들 입장에서는 사비니의 친정 오빠들과 로마인 남편이 서로 칼끝을 겨누는 꼴이었지요. 결국 여인들의 용기있는 행동으로 전쟁은 중단되었어요. 다비드의 <사비니 여인들>은 바로 그 장면을 묘사한 겁니다.
그림 복판에 양팔을 벌리고 선 여인은 헤르실리아입니다. 그녀는 원래 사비니 왕 타티우스의 딸이었지만 이 때는 이미 로마의 왕 로물루스의 아내가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그림 왼쪽에 수염이 텁수룩한 사람이 아버지 타티우스이고, 오른쪽에 창을 번쩍 든 사람이 남편인 로물루스예요. 로물루스의 방패 문양을 보면 로마(RoMA)라는 글씨와 함께 늑대의 젖을 빠는 어린 아이가 새겨져 있답니다.
양쪽 군사들 가운데는 헤르실리아를 비롯한 사비니 여인들이 간난아기와 함께 뒤엉켜 있어요. 한 여인은 타티우스의 다리를 잡고 제발 싸움을 멈추라는 듯한 몸짓이고, 또 한 여인은 아이를 번쩍 치켜든 채 사비니 군사들을 향해 ‘이 아이가 당신들의 조카예요!’ 하고 울부짖는 듯한 모습이에요. 이렇듯 위험을 무릎쓴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로 양측은 화해를 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로마는 번영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다비드는 그 많은 역사적 사건 중에 왜 하필 이런 내용을 그렸을까요? 18세기 말, 다비드가 살던 당시 프랑스는 혁명의 시대였어요. 시민들이 왕과 귀족들을 상대로 자유와 평등을 얻기 위해 격렬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거든요. 그 와중에 전제 군주였던 루이 16세와 왕비가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으며, 혁명에 앞장선 지도자들 또한 여럿이 목숨을 잃었지요. 다비드 자신도 혁명 세력에 적극 가담했다가 감옥살이를 경험하기도 했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왔어요.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면서 피 흘리는 싸움이 그칠 줄을 모르고 이어졌기 때문이지요. 다비드는 어쩌면 사비니와 로마가 그랬던 것처럼, 조국 프랑스가 서로 관용을 베풀어 화해의 악수를 나누길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사비니 여인들>이란 작품 속에는 화가의 그런 소망이 담겨 있다고 보면 됩니다.
# 참고도판2 - 푸생 <사비니 여인들의 약탈>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 변화된 그림의 주제
다비드는 로마 시대의 역사를 소재로 여러 점의 명작을 남겼어요.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도 그 중 하나지요. 로마가 이웃나라 알바 군대와 전쟁을 치르게 되었어요. 전쟁에 따른 희생이 너무 커지자, 양측은 대표로 전사를 뽑아 승부를 가르기로 했지요. 그리하여 로마의 호라티우스 3형제와 알바의 쿠라티우스 3형제가 맞붙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두 집안은 혼인관계였어요. 호라티우스 형제 중 하나가 상대 집안의 누이를 아내로 맞이했고, ‘카밀라’라는 여동생도 쿠라티우스 형제 한 사람과 약혼한 상태였거든요.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지면 누가 이기든 불행에 빠질 게 분명했지요. 결국 싸움은 호라티우스 형제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약혼자의 죽음을 슬퍼하던 카밀라 역시 오빠의 분노를 사 죽음을 맞았답니다.
지금 이 장면은 삼형제가 싸움에 나서기 전 아버지에게 승리를 맹세하는 모습이에요. 다비드는 프랑스 혁명을 앞두고 이 작품을 그렸는데, 나라를 위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지요. 그러나 15년 후 그려진 <사비니 여인들>에서는 화해와 관용을 얘기하고 있으니 의미있는 변화라 하겠습니다.
@ 화가 소개 -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
프랑스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신고전파는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처럼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예술품이 지닌 아름다움을 본받고자 노력했지요. 다비드의 그림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마치 조각상처럼 매끈하고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것은 이 때문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에 직접 참여하여, 당시 국왕이었던 루이 16세의 단두대 처형에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지요. 혁명의식을 드높이는 역사화를 많이 그렸으며, 당대에는 최고의 화가로 추앙을 받았답니다.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