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애 Oct 04. 2020

배려에서 느낀 작은 위선

혼자 주유할 줄 아는데...

 명절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휴게소에 있는 샐프 주유소에 들렀다. 아이 둘을 태우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운전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내 앞에는 네 대의 차가 이미 주유를 하고 있었다. 후진으로 주유구를 주유기 앞에 가까이 둘 수도 있었지만, 행여나 하는 마음에 기다렸다. 샐프 주유소였지만 여러 명의 직원들이 나와 차들이 질서 있게 주유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내 차례가 왔다. 시동을 끄고 주유구를 열고 카드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친절하게 생긴 직원 한 분이 다가와 먼저 주유구를 열면서 말을 건넨다. 아니 도움을 건넨다.


"얼마 넣으실 거예요?"를 시작으로 "어디까지 가세요?", "차가 하나도 안 막히니 안전 운전하세요.", "일시불이시죠?" 친절히 나의 운전을 걱정해준다. 그러더니 주유가 끝나갈 즈음 엔진 때를 제거해준다는 그것을 권한다. 차 소리도 좋고 차도 잘 나간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얼버무린다.


"남편이 알아서 했을 거예요."


이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나는 진심으로 부끄러웠다. 영수증을 뽑아 들고 차에 오르는데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내가 샐프 주유를 기다리는 동안 먼저 주유를 하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혼자 주유를 했다. 직원이 많았지만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한테만 와서 주유를 도와주는 것인지. 직원이 다가와 친절한 말투로 인사와 걱정을 건네는 동안 내내 그렇게 생각했다.


 '나도 혼자 샐프 주유할 줄 안다고요. 날 무시하는 건가? 여자라고?'


 내가 얼굴이 붉어진 이유는 이 생각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불만스럽게 도움을 받고 있을 때 나는 스스로 남편을 방패 삼아 엔진에 좋다는 그것의 권유를 받아쳤다. 그냥 내 의견 그대로 '다음에 생각해볼게요.'라던지 '안 넣어도 될 거 같아요.'라고 하면 되었을 것을...


 고속도로로 다시 들어서면서 뒤에 탄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 주유소는 샐프 주유소고, 엄마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도움 없이 주유를 했는데 왜 엄마만 직원이 와서 도와줬을까? "그러게"하고 심드렁하게 말을 시작한 큰 아이는 "엄마가 잘 못하게 생겨서? 아니면 옛날 사람 같아서?"


 다행히 아이의 입에서 '여자라서?'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랬다면 더 우울하고 부끄러웠을 거다. 아직 우리 아이들의 눈에는 생각에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작은 배려를 받고 그것을 남자의 위선으로 생각한 나.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아마 명절 며느리 후유증 이겠거니...


 '아들은 하숙생처럼 키우고, 딸은 자취생처럼 키운다.'


갑자기 생뚱맞은 마무리이지만, 이 말이 절실하게 와 닿은 명절이었다. 즐거웠지만 혼자 모범생 껍질을 벗지 못한 사춘기 며느리는 작은 속앓이를 했다. 다 못 적은 나의 속앓이 이야기는 일기장에 묻어두고 오늘 저녁은 나를 위해 배달 치킨과 맥주로 마무리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