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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Nov 27. 2020

마흔, 인생이라는 사막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면...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읽고

2004년 대학원 시절 공부와 과외만 하기에도 벅찼던 그때, 더 남은 에너지가 있었는지 나는 지역 산악회에 가입했다. ** 2030 산악회. 산악회는 아저씨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2030이라는 숫자가 나를 이끌었다. 말 그대로 젊은 피가 똘똘 뭉친 산악회였다. 처음 산을 따라가던 날 트레이닝 바지에 모자티, 운동화 차림에 물과 도시락만 넣은 가방을 짊어졌다. 등산화 하나 갖춰 신지 않았다. 처음이라 올라가는 길은 힘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과잉 친절했다. 아마도 내가 가장 어린 여학생이고 신입이었기 때문일 거다. 오카리나를 불며 올라가는 사람, 항상 큰 사진기를 목에 메고 제일 앞장서서 가다가 경치 좋은 곳에서 사진을 찍어주던 사람, 갈림길마다 마지막 사람까지 안내하던 사람. 모두들 자기들만의 역할이 정해져 있는 듯했다.      


첫 등산을 마치고 나는 물어물어 등산장비를 하나, 둘 구입했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 야간산행, 매주 주말에는 단체 버스를 타고 지방의 유명한 산들을 찾아다녔다. “얼마나 남았어요?” 내가 산을 오르며 제일 많이 하는 말이었다. 그럴 때면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더 가면 돼. 힘을 내.”라는 말이 돌아왔다. 항상 똑같은 말이었다. 그렇게 열 번쯤 그 말을 반복하며 올라가면 어느새 정상에 와 있었다. 그 좁은 정상에 우리는 위태롭게 서서 사진을 찍었다. 산의 크기에 비해 정상은 항상 비좁았고 사람은 많았다.      


2030이라는 이름이 실감 나는 순간은 그다음부터였다. 항상 앞장서서 가며 사람들을 챙기던 몇몇은 옆 봉우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외친다. “우리 저기도 갈까? 우리가 언제 이 산에 또 와보겠어.” 앞사람 엉덩이만 보며, 헉헉거리며 정상을 찾아 올라온 내가 위태롭게 서서 숨을 고르기도 전에 다시 사람들은 다음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 중 두, 세 명만 찬성해도 다음 정상으로 출발한다. 나는 산길도 몰라 혼자 하산도 못하고,  ‘안돼요’라고 외칠 용기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또 그들을 따라 산의 중턱까지 내려갔다 다시 오른다. 그래도 처음에 산의 밑자락부터 시작할 때보다 수월하다.     




이렇게 산을 열심히 타며 보내던 대학원 시절, 실험실 선배 하나가 생일날 선물로 이 책을 선물했다. 15년간 내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이 책을 발견하기 전까지 잊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도. 첫 장을 넘겨 선배가 남겨놓은 메모를 확인하고, 몇 장을 더 넘겨 목차와 프롤로그를 보고는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을 건너는 중인가? 아니면 산을 타고 있는가?’    

 

이 책의 작가 스티브 도나휴는 스무 살 때 사하라 사막을 건넌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 이 책을 쓴다. 인생을 사막에 비유해서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어쩌면 인생은 정상이라는 목표가 보이는 산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사막을 건너는 것과 닮았을지 모른다고.     

 

지도를 펴보자. 산봉우리에는 이름이 있지만, 모래 언덕에는 이름이 없다. 모래 언덕에 이름을 지어 붙인다 해도, 그 이름을 인쇄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그 지도는 이미 구식이 되어 못 쓰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지도와 여행 안내서를 들고 우리 인생의 사막을 건너기 시작한다. 결혼을 할 때나 직장을 구했을 때도 지도를 가지고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래땅의 모양이 바뀌면 지도는 아무 소용없어지고, 우리는 길을 잃는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지도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에게는 여행의 출발이 된다.
-p.37     


이 책은 자신이 사하라 사막을 건넜던 스무 살과 인생 중반을 가고 있는 자신의 현재 삶을 오가며 사막에서 만났던 문제와 그 해결방법을 비유하며 소개한다.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나침반을 따라가라’


저자와 탤리스(저자와 함께 사막을 건넌 친구)는 따뜻한 남쪽으로 가기로 한다. 하지만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침반을 보며 남쪽으로 내려간다.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아무런 목표도, 목적지도, 지도도, 길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렇게 목적지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침반이다. 그들은 나침반이 가리키는 남쪽을 향한다.     


 

때로 우리는 방황하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신기루를 좇기도 한다. 지구 자기장의 편차에 따라 수정을 해주어야 하는 나침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내부의 나침반이 항상 진실된 방향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p52     


 결혼 6년 차이던 2014년 11월 우리 부부는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로 한다. 신혼여행 이후 처음으로 단 둘이 보냈던 이박삼일이다. 주말 부부로 아이 둘을 낳고 기르며 각자의 직장에서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던 그때, 우리 부부에게는 조금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다. 서로에게 고마웠지만 서로에게 서운했다. 여름휴가를 이용해서 혼자 지리산에 다녀왔던 남편이 지리산에 가자고 했다. 우리는 뚜렷한 목적지가 없이 남편이 처음 갔던 그곳에 차를 주차하고 배낭 하나씩을 매고 숙소도 정하지 않은 채 지리산 주변을 돌았다.      

 지리산 둘레에 있는 마을을 지날 때면 감나무 가지에 몇 개 안 남은 감을 발견한다. 집집마다 감을 깎아 매달아 말리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지리산은 붉게 물들어 있고, 저녁이면 어딘지 모를 곳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왔다. 그 길을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과 직장생활, 집안 대소사를 나 혼자 챙기기에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둘만 있는 산길에서는 연애시절 대둔산 구름사다리를 오르며 불러줬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토이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남편이 좋아하는 신해철 님이 사망한 지 얼마 안 되는 때였다. 넥스트, 공일오비, 토이, 신해철... 그렇게 남편은 신해철이라는 사람의 역사를 꿰는 듯 이야기했고, 나는 쓸데없는 그 이야기를 듣는데 그렇게 재미있었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목적지도 목표도 없는 그냥 단지 서로를 듣고 들어주는 그런 길을 걸었다. 그게 너무 좋아 다음 해 결혼기념일이 있던 12월 우리는 다시 지리산 둘레길에 올랐다. 매년 결혼기념일 즈음 지리산 둘레길을 걷자고 했지만 그 뒤 한 번도 다시는 없었다. 지금 우리는 어쩌면 사막에는 없는 어떤 산을 찾아 헤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모양이 변하는 모래사막에서는 지도가 아니라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가라를 시작으로 이 책에는 다음의 다섯 가지 사막을 건너는 방법을 소개한다.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라. 더 많이 쉴수록 더 멀리 갈 수 있다. 아마도 5년 전 우리 부부가 지리산 둘레길을 다녀온 힘으로 그리고 매년 쉴 새 없이 바쁨 속에서도 꼭 챙겼던 가족 여행으로 여기까지 큰 탈 없이 올 수 있지 않았을까.     


사막 모래에 바퀴가 빠지면 바퀴 바닥이 지면에 더 많이 닿을 수 있도록 타이어 공기를 빼야 한다. 사막 모래에 빠져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정체상태에 빠지면 자신만만한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내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다. 2년 전 나는 자존감이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회사를 나왔다. 하지만 지금 나는 모래사막에 바퀴 한쪽이 빠진 줄도 모르고 계속 가속페달을 밟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공기를 조금 빼내야 할 때가 온 거다.    

 

사막을 건너는 것은 고독과 외로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 사이에서 춤을 주는 것이다.     

안전하고 따뜻한 캠프파이어에서 나와 깜깜한 사막의 어둠 속으로 나아가라.     

열정을 가로막는 두려움과 불안감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라.     


모든 이야기를 사막과 인생에 비유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적절히 섞어가며 부모로서 배우자로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를 엮어 놨다. 그래서인지 어렵지 않게 읽으면서도 전하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내가 여태껏 읽어오던 책들은 멈추지 말고 앞을 향해 달리라고 닦달하는 책들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런 책을 찾아 읽으며 나에게 한껏 부풀어 있던 공기를 조금씩 빼고 있다. 마흔, 인생의 절반쯤 왔다 싶은 이 시점에서 나는 내가 있는 이곳이 사막임을 알았다. 남의 엉덩이만 보며 올라가던 좁은 정상이 아닌 넓은 사막 한가운데 있다. 아직도 남쪽을 향하는 나침반에 의지한 채 모래바람과 뜨거운 태양, 밤이면 찾아오는 추위를 피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언젠가는 다다를 남쪽의 어딘가의 해변에서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사막과 해변을 비교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 끝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죽는 날 까니 나는 오아시스를 만나면 쉴 줄 아는 그런 여유를 가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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