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몇 달이나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할 때면 내 삶이 하루살이 같다. 그 달 벌어 다음 달을 사니 말이다. 굉장한 고소득자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않을까. 임금이 체불되거나 정직 등의 징계가 사람들에게 타격을 주는 점도 그 점 때문이리라. 월급이 꽂히면 몇일내 '텅장'이 되어버린다는 직장인들의 푸념도 같은 현실을 얘기해주고 있다.
상담실에서 일할 때 잦은 상담 중 하나가 실업급여에 대한 상담이었다.
월급도 계속 제자리고, 근무조건도 나빠요... 그런데 관리자가 은근히 갑질도 심하게 해서 그만두고 싶은데 이렇게 그만두면 실업급여를 못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정말인가요?
몸이 좋지 않아 그만뒀으니 당연히 실업급여를 받을 줄 알았는데... 센터에서 안된다고 해요... 왜 그런가요?
이 놈의 회사, 당장 때려치우고 싶지만, 바로 일자리를 못 구하면 담달 어떻게 살아가지...?
해고되거나 권고사직으로 실업하게 되었을 땐 실업급여를 받는데 문제가 없지만, 스스로 사직하는 경우엔 고용보험법의 예외사유에 해당해야 하고, 고용센터의 업무지침에 적합한 절차를 거쳐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몸이 아파 일을 그만두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유에 해당하지만, 사직 전에 병가나 휴직을 써야 하는지, 배치전환을 요구했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잘 없다. 그래서 당연히 받을 줄 알았던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면 억울한 마음만 잔뜩 쌓인다.
실업을 하게 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자발적일 수도 있고 타의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만 자발적일 뿐 실제론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 나온 경우도 있다. 자발적으로 나왔지만 실업의 기간이 어쩔 수 없이 길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먹고는 살아야 하고 꾸역꾸역 어디든 들어가서 일을 하든지, 이미 내 일자리가 괜찮은 자리라면 모멸을 당하든, 장시간 일을 하든 버텨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노동조합은 언감생심, 회사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든 '을'의 위치에 계속 서게 된다.
노동조합이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고 작업장의 민주화를 위해 많은 역할과 기여를 했지만, 이제 다른 제도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 앤디 스턴의 생각이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권리를 향상시켜 온 건 크게 2가지라고 생각한다. 노동조건의 최저 수준을 법률로 정하도록 한 것, 그리고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를 보장하도록 한 것.
하지만 한국의 사용자들은 법률이 정하고 있는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파견, 용역, 도급, 특수고용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왔고, 노동자들은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싸움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플랫폼 노동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까지 생겨나면서 법률의 사각지대는 더욱커지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노동자들에게, (최근의 표현으로 보다 넓은 의미의) 노무제공자들에게, 위 2가지 보호장치 외에 기본소득이라는 무기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당장의 벌이가 급급해서 나쁜 일자리를 덜컥 선택하지 않도록,
해고될까 걱정되어 갑질과 부당한 지시를 참아내는 일이 없도록,
경제와 사회구조적으로 누군가는 실업할 수밖에 없다면 그 생계를 보조할 수 있도록,
할 힘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이 그 역할의 다는 아니더라도 보탬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기본소득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솔깃한 제안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