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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knock Jan 14. 2024

<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 2021

3.5

너는 나를 내 마음 속으로 데려다줄 수 있어.

가만히 듣다가, 조용히 바라보다가, 기다리고 대답해줘. 우린 그렇게 계속 살아가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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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말을 하는데 3시간이나 필요했을까? 작위적이고 직설적인 대사, 도식적인 장면들을 몇 번씩이나 반복해야 했을까?


질질 끌지 않았다면 미사키의 고향으로 향하는 긴 시퀀스가 더 마법 같고 감동적이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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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홋카이도로 향하는 시퀀스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마음 속으로 들어간 그 순간은 시네마가 줄 수 있는 감동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내면을 직시할 자신이 없어서, 자신이 바냐가 되어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 다카츠키에게 바냐 배역을 맡겼다. 하지만 다카츠키는 바냐가 아니다. 폭력적이고 솔직하며 욕망에 충실하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다카츠키는 떠나간다. 가후쿠가 되고자 한 욕심을 부리고 오토와 사랑을 나누었던 과거에 대한 죄책감에, 그를 감시하는 행인의 사진세례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간다. 차 안에서 가후쿠에게 여중생 소녀의 뒷이야기를 전달(또는 지어내어 말)해주며, 자신이 감히 가후쿠의 세상에 침입해 가후쿠의 행세를 했던 것을 고백하며, 정말 죄송하다고 담담하게 소리지르며 떠나간다. 바냐의 배역을 맡아보고는 그 배역의 무게감과 가후쿠가 느끼는 상처의 깊이를 이해하고는 퇴장하게 된다.


이제 가후쿠는 다시 바냐라는 빈 자리에 앉아야 한다. 2년간 애써 피하고 도망쳐왔다. 하지만 미사키의 말대로 다카츠키의 고백은 거짓이 아니며, 미사키는 어머니가 죽도록 놔두었으면서도 여전히 어머니가 강요한 대로 운전석에 앉아 그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이제 가후쿠의 차례다. 마침내 가후쿠는 미사키가 살던 무너진 집터를 찾아가 자신의 아픔을 똑바로 쳐다보게 되었다. 이제 그는 다시 그가 있어야 할 곳, 그가 되어야 할 사람, 바냐를 맡아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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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겪으면서도 의연하고 무심한 척 견디는 가후쿠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주인공 소년과도 닮았다. 일본의 특성이 담긴 캐릭터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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