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글쓰기
사진 찍는 날
준공사진을 찍는 날이 되었다.
이제 나의 손을 떠나 건축주에게 손을 넘겨주는 날이니, 비유하자면 ‘시집보내는’ 느낌이다.
나를 통해 만들어지고, 내 손으로 키웠으나, 건축주와 함께 살려고 만들어진 운명이었으니 나는 이 운명에 손을 놓아준다
준공사진을 찍는 촬영장의 분위기는 웨딩 촬영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친한 친구가 와서 도와주고, 하루 온전히 함께 시간을 보내며 행복한 표정의 곳곳을 담는다. 시공 중에는 항상 복작복작하고 먼지가 가득하고 소란이 끊이지 않았으나 이 날 만큼은 다르다. 말갛게 씻은 즉- 준공청소한 내가 설계했지만 실체로 공간은 처음 보는 깨끗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 안은 마침내 빛으로 채워지며 표정이 드러난다.
외부에는 햇볕으로 만들어지는 생기가 만들어진다면, 내부에는 조명으로 공간의 온기가 돈다.
그전까지 공간은 공사현장이었다면 오늘부터 이곳은 사람이 살 보금자리가 되는 것이다.
사진은 빛으로 만든 순간의 예술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각마다 다른 빛의 느낌을 담는다. 그래서 하루 종일 이 공간 안에 머물다 보면, 나태주 시인의 시가 그렇게 마음에 와닿을 수가 없다.
‘오래 봐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보면 볼수록 공간의 여기저기 예쁜 곳들이 구석구석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사진가에게 이런저런 곳을 찍어달라는 주문을 계속하게 된다.
‘작가님 여기 이 부분을 이런 앵글로 좀 담아주세요. 이런 빛이 내리니 진짜 좋네요.'
마치, 신부의 친구가 웨딩 촬영장에서 이렇게 말하듯이. ‘작가님, 이 친구는 왼쪽이 더 예뻐요, 미디엄숏으로 왼쪽 콧날이 살짝 위에서 보는 각도로 담아주세요. 빛은 부드러움이 충만해서 신부가 돋보이게요!’
물론 위에 말은 과장이 아주 많이 섞인 설정한 주문이다.
실제로 촬영장에서는 사진작가가 리드를 하고, 건축가인 나는 촬영현장에서는 그저 보조일 뿐이다. 내가 도와드리는 것은 건축가의 설계 의도를 공간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설계 당시에 만든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나, 모형으로 잡은 각도 같은 것을 간간이 보여주면서 우주의 설계 이야기를 전하면 사진가에게 모든 지휘권이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