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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장 Jun 09. 2024

4. 발가 벗고 다녀도 안전한 집 -1

#04 발가 벗고 다녀도 안전한 집  - part 1 

 

설계를 하면서 건축주와 대화를 많이 한다. 

기자가 취재하듯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때론 탐정처럼 탐문한다. 이것저것을 물어보면서 건축주의 성향과 라이프 스타일을 파악하고, 설계를 풀어나갈 실마리를 찾는 것이 다.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물어보며 진단하는 문진과 비슷하다.


그렇게 탐문과 취재를 통해 파악한 건축주는 ‘보헤미안’이었다.

보헤미안은 전통적인 생활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자유분방한 예술가와 같은 성격. 건축주 부부는 유행을 따르는 것을 싫어했다. 남에게 보여주고자 소유하는 것들이 거의 없었다. 자기 감각과 판단에 따라 결정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  여행을 갈 때도 명성이나 후기가 좋은 곳은 피하고 자신들의 취향에 잘 맞는 곳으로 가고, 옷이나 음식도 알려지지 않은 곳을 발굴해서 즐기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런 보헤미안적인 성격이기에 주변의 사람들이 서울에 아파트를 사려고 할 때, 양평으로 내려와 집을 짓고 살고자 했으리라. 집을 지어 살기로 결심했을 때도 수많은 방법 중에 결정한 것도 보헤미안 적이다. 집을 짓는 수고로움을 덜어주지만 표준화된 집을 만들어주는 -속칭 ‘하우징 컴퍼니’를 찾거나, 주변에서 추천받은 건축사에 의지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들의 눈에 맞는 건축사를 직접 찾아냈다. 인터넷 정보를 모아서 100명의 건축사의 홈페이지와 포트폴리오를 본 다음에 건축사를 정했다고 했다. 

물론 그렇게 찾아낸 건축가가 바로 ‘나’였다. 

(으쓱해도 될까요?)


내가 가는 것이 길이다     

우주의 건축주가 과감하게 양평에서 자리를 잡고 나니, 친구와 친지들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서울을 왜 떠나?’에서 주말마다 ‘이번주에 우리 식구 놀러 가도 되니?’로 말이다. 그래서 우주 부부의 집은 일명 ‘양평 펜션’으로 주말 금토일 예약인원들이 항시 대기 중이라고 했다. 심지어 우주를 짓기 전에 살던 집은 여느 도시에나 있는 다세대 주택의 일부 (흔히 말하는 5층 빌라)였는데도 주변에서 보기엔 그들의 선택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보다.      


설계 초기에 인터뷰 내용이다.      

“당신에게 집이란 어떤 곳인가요? 어떤 곳이 되었으면 좋겠나요?”

“집에서는 빨가벗고 다녀도 돼야 해요. 

안정적인 바운더리 안에서 자유를 느끼게 하는 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지: 설계 노트 중 ‘안정적인 바운더리 안에서 자유를 느끼는 곳”이라는 메모)     

이 대답은 ’이 두 보헤미안 커플을 위한 집이란 어떤 곳이어야 하는 할까?‘ 하는 나의 질문에 해답 같았다.   

  


자유를 느끼도록 하는 집의 모습     


자유를 느끼도록 하는 설계.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가장 쉬운 방법은 별채를 만드는 것. 공간 자체를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방법이다. 또 하나는 울타리나 높은 담벼락을 쌓는 것.  부부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숙박 친구를 비롯한 외부인의 관계를 생각해서 건축사로서 공간 계획에 중심을 둔 것은 ‘집 안에서 자유로운 공간 분리’이다.           


순환하는 집 - 물처럼 공기처럼     

집宇집宙 에는 여러 가지의 순환동선이 있다. 

일반적인 집은 현관에서 시작되어 복도를 중심으로 공간이 나뉘는 일 방향 동선 (골목길 스타일)의 집이다. 아파트를 예로 들어, 현관에서 안방을 가려면 거실과 주방사이의 복도를 지나 안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안방에서 나올 때는 갔던 길을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는 단순한 동선이다. 이런 경우는 동선이 최소화되어 방이라는 공간을 알차게 쓸 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우주에는 술래잡기를 하면 빙글빙글 돌아서 안 잡히고 무한히 도망칠 수가 있는 동선들이 있다. 그런 순환 동선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마다 여러 가지가 있다. 한 방향의 동선에 비해 동선이 많아서 낭비라고 볼 수도 있다.      

(이미지: 아파트 일방향적 동선)     


이렇게 만든 이유는 설계 초기 인터뷰 할 때 건축주가 사용한 언어의 느낌 때문이다. 

‘발가벗고 다녀도 좋겠다’니.. 집에 있을 때 누가 볼까  신경 쓰는 건 누구나 싫을 것이다. 하지만 다 벗고 다니는 건 차원이 좀 다르게 느껴졌다. 그것이 커튼이나 창문의 방향으로도 조절하는 소극적인 장치로만은 부족하다 싶었고, 손님이나 외부인이 방문했을 벗고 돌아다녀도 마주치지 않을 수 있는 적극적인 ‘건축적인 방법’을 고민하다 ‘순환동선’이라는 것이 생긴 것이다. 의뢰인을 생각하는 공간주치의로서 건축사인 나의 처방으로 말이다.  


이런 상황은 구체적으로는 남편이 재택근무를 할 때를 상상했다. 남편은 공학을 전공한 연구원인데, 코로나 이전부터 재택근무를 활발히 하고 있었다. 연구원의 특성상 집중할 수 있는 업무환경이 필요했다. 화상회의를 할 때도 누군가 갑작스레 들이치지 불상사도 막아야 했다.       

(이미지  : bbc 방송에서 갑자기 자녀들이 튀어나오는 사진)

(캡션 :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아니 되었다. )   

 

이렇게 집에서 업무를 할 때, 아내도 아내만의 일상이 있었다. 아내는 피아노를 전공하고 레슨을 했기에 수시로 동네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이 드나들었다. 남편도 아내도 각자의 일상을 보내면서, 서로의 손님과 일상에 방해를 받지 않아야 했다.      


방이 아닌 영역으로서의 구분된 집     


건축에서는 ‘조닝 계획’이라는 개념이 있다. 조닝 Zoning 은 영역이라는 말인데, 목적과 공간이 딱 구획되어 있는 것보다 좀 더 추상적인 개념이다. 조닝 계획은 용도나 성격이 비슷한 것 공간끼리 묶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연장에 가면 매표소, 로비, 포토 존,  객석, 로비에 딸린 화장실이나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방문객을 위한 영역인 ‘고객 zone’에 있는 것이다. 그 외에 무대, 백 스테이지, 출연자 대기실, 분장실, 무대 장치실, 오케스트라 연습실 등 일반 관람객과 분리된 내부관계자인 스테프를 위한 zone이 구분이 되어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부르는 공간들이다.  


이런 개념은 건축설계의 기본 중에 기본이라 병원, 호텔, 컨벤션센터 등의 대공간을 설계할 때는 조닝계획이 명쾌하게 보여야 한다. 그런 내가 단독주택을 계획하면서도 이런 세세한 조닝 계획을 설명하게 될 줄은...   

  

(이미지: 조닝계획의 예)     


우주에는 크게 부부가 주로 활동하는 안방, 드레스룸, 서재를 묶은 (private zone)과 손님과 공유할 수 있는 키친과 다이닝 룸은 공적인 영역 public zone으로 구분된다.  부부의 조닝의 방들은 다양한 이름을 가졌지만 공간이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의 큰 안방 영역으로 쓰기도 하고 각방의 문을 닫아서 구분해서도 쓸 수도 있다. 키친과 다이닝은 큰 홀로 구성이 되어있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첫 번째 만나는 공간이다. 가장 공적인 성격의 공간인 것이다. 여기에 연결된 피아노 방과 노천탕 및 욕실은 사용하기에 따라 세미 퍼블릭이 되는데, 공간을 막고 여는 데는 벽체 안에 숨겨진 슬라이딩 도어가 큰 역할을 한다.

(이미지 : 우주의 다양한 공간구성)     


슬라이딩 도어는 미닫이라고 부르는 문이다. 말 그대로 옆으로 밀어서 여닫는 문이라는 뜻인데 문을 열어 벽속에 완전히 숨길 수 있어 개방감이 좋다.  나는 벽속에 숨기는 문은 벽과 같은 재질로 하고 문의 주변에 테두리라는 문선이 없는 디테일을 주로 쓴다. 문을 열면 오프닝만 보이고 닫으면  벽으로 막혀 문이 사라져서 동선을 차단한 것처럼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미닫이 문 중에 벽속에 숨기지 않고 노출하는 문은 장지문을 쓰면 인테리어 효과도 좋다. 장지문은 나무로 살을 대고 종이를 붙이는 한옥에 주로 쓰이는 문인데, 간살의 간격이나 무늬, 종이를 간살의 앞 뒤면 중에 어디에 붙이는지에 따라 문의 의미가 달라진다.  간살을 수직선과 수평선으로만 간결하게 구성되면 모던한 느낌이 나고, 전통적인 문양을 쓰면 한옥느낌이 난다.  한옥에서는 간살이 외부를 향하고 내부에 종이가 붙게 되어있다. 반면 일본은 실내에서 간살의 선이 보이게 되어있다.       


(이미지 : 우주의 막힌 슬라이딩 도어 vs  장지문)       


거기에 더하여 부부의 영역에서 손님의 영역을 연결하는 뒷부분으로 눈에 안 보이는 동선이 하나 더 있는데. 갤러리라고 불리는 이곳은 안방 존에서 거실을 통하지 않고 노천탕처럼 보이는 욕실로 갈 수 있는 길이다. 이 갤러리를 통한 동선을 이용하면 손님이 응접실에 있어도 안방에서 발가벗고 노천탕 같은 욕실을 이용할 수 있다. 가는 길목에 냉장고가 있어서 그 안에 캔맥주를 하나 꺼내서 가면 금상첨화겠다. 갤러리는 마치 무대의 백 스테이지 같은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 : 우주의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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