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주씨의 백일금주
오늘의 맥주 : 한맥 생맥주
새로나왔다는데 아직 못마셔 봄. 그래봤자 맥주 맛이겠지만 거품이 뭐가 다를지 쌉쌀할지 라이트할지 궁금하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시간은 기어가듯 더디다. 하지만 뭐라도 하나 시작하면 순식간에 달려간다. 윤금주가 된 뒤로는 매일 날짜를 세고, 글감을 찾고, 글을 쓰고, 이미지를 고르는 일이 자연스레 들어왔다. 덕분에 하루는 술 한잔 없이도 꽉 찬다.
반대로 평소 하던 일 중 하나가 빠지면 시간은 갑자기 늘어진다. 취소된 약속이나 놓쳐버린 기차처럼, 애매하게 남는 시간은 지루하고 무겁다. 그럴 때는 뭘 하나라도 채우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다.
요리도 그렇다. 핏물 빼고, 잡내 없애고, 기름 닦고, 불순물 걷어내는 과정은 번거롭다. 하지만 그렇게 다듬은 음식은 훨씬 정갈하다. 여러 요리 레시피를 참고하다 보면, 결국 기본은 같다. 곁가지 공정 한두 개 빼도 큰 문제는 없다. 재료가 충실하고 간이 맞으면 담백하고 본질적인 맛이 난다.
술을 빼고 사는 것도 그렇다. 인생이라는 요리에서 술이라는 양념 하나를 덜어냈더니, 의외로 맛은 더 깊고 깔끔하다. 바쁨도 덜하고 번잡함도 줄었다. 어찌 보면 술을 끊는 건 공정을 줄이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절차를 걷어내고 본질을 드러내는 일이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비움의 미학’이란 게 이런 걸까.
오늘도 나는 술 대신 시간을 요리하며 산다.
가끔은 ‘한 잔’이라는 MSG가 아쉽긴 하지만, 없어도 삶의 맛은 충분하다. 아니, 오히려 더 오래 음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