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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줍음 Aug 12. 2023

교육받으러 다니다가 과로사(過勞死)하는 직업

세상을 향한 3번째 도전_ 두 번째 이야기

<14> 교육받으러 다니다가 과로사(過勞死)하는 직업


직업상담사는 자격증을 취득하고서부터 진짜 공부할 게 많은 직업이었다. 자격증 취득반에서 직업상담학과 직업심리학 과목을 담당하셨던 L교수님께서는 수업 중간중간에 본인의 현장경험과 노하우들을 많이 알려주셨다. 우리가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해서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교육과 민간 자격증에 대해서 알려주셨다.     


현장에서는 어떤 일들을 해야 하고, 그런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어디에서 무슨 교육을 듣고, 어떤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지. 직업상담사와 관련한 대학원에는 어떤 곳이 있고, 각 대학원의 장점과 교수님이 추천하는 대학원은 어느 곳인지. 또한 직업상담사로서 강의 능력까지 갖춘다면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나는 그때 교수님의 이야기를 통해 직업상담사가 정말 나에게 잘 맞는 직업임을 확신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대학원 진학이나 강사로서의 비전도 갖게 되었다.     

 

자격증반을 수료한 후, 직업상담사 실무를 배우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고용센터에서 진행하는 집단상담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었다. 당시 고용센터에서는 일반구직자들 대상으로 5일간 성공취업이라는 의미의 ‘성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구직자들 사이에서 꽤 만족도가 높은 프로그램이기도 했고, L교수님께서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신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나는 구직자로서 취업을 위한 도움도 필요했고, 장차 직업상담사로서도 집단상담프로그램을 진행할 줄도 알아야 했기에, 나에게는 1석 2조의 의도가 있었던 셈이었다.   

   

두 번째로 참여한 프로그램은 S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4일간 진행한 경력단절여성을 위한 취업지원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에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오는 과제가 있었는데, 학창시절 나름대로 글 좀 썼던 나는 새벽 3시까지 공을 들여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가져갔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강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내가 작성한 자기소개서가 너무너무 부끄러워서 차마 보여줄 수가 없었다. 내가 써온 자기소개서와 입사지원을 위한 자기소개서 글쓰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밤새도록 썼던 자기소개서는 순전히 내 위주의 글이었고, 자기소개서는 인사담당자에게 나를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글이었기에, 철저하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읽혀지기 위한 목적으로 써야하는 글쓰기였던 것이다.


직업가치관을 찾는 시간도 있었다. 우리가 직업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키워드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중에서 나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키워드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여러 개를 고를 수 있도록 하다가, 최종적으로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 가지, 포기할 수 없는 단 한 가지만 남기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때 최종적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지혜’를 골랐던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도,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 우연히 만난 그 질문을 통해 나는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 뒤로 그 언어는 ‘나에게 중요한 삶의 이정표'가 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 어쩌면 그때 내가 그 단어를 고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 시절 내가 고용센터나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받은 교육과정들은 모두 무료였다. 나는 유료로 진행하는 교육과정도 참 많이 다녔는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고 교육하기 위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여러 가지 직업심리검사도구를 활용하기 위한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특히 요즘 엄청 유행하는 MBTI성격유형검사는 100% 내돈내산으로 약 2년에 걸쳐 MBTI일반강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이 MBTI교육은 엄청 재밌고, 또 엄청 비쌌는데... 다행인 건,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로 10년간 정말 많이 활용했기 때문에 그만큼 투자한 가치와 보람은 있었다. 또 워크넷에서 무료로 직업선호도검사를 하는 것보다 더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는 STRONG진로탐색과 STRONG직업흥미검사 자격도 취득했고 강의를 하는데 정말 많은 활용했다.


하지만 계좌제 카드를 활용해 교육받을 수 있는 교육은 최대한 계좌제카드를 이용했다. 당시 계좌제 카드 한도가 500만 원이었기에 나는 직업상담사 입직초기 몇 년까지는 늘 주말마다 계좌제 카드를 활용하여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계좌제 카드를 사용하면 물론 20~60% 정도 내 부담금이 들기는 하였지만,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으로 직업능력을 개발할 수 있었다. 한국에니어그램 일반강사 자격증, 한국직업상담협회에서 진행한 집단상담프로그램이나 각종 교육, 그 외 노동부 산하 직업훈련기관에서 주관했던 강사역량과정 등 직업상담사로서, 강사로서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참 교육을 많이 받으러 다녔다. 나이는 많은 데 비해 경력은 없고,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은데, 그걸 극복할 방법은 오직 교육과 자격증 밖에 없었다. 하는 일 자체가 상담과 강의를 하고, 정보와 트렌드를 알아야 하니 계속해서 공부를 하지 않고는 남 앞에 설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직업상담사들은 정규직 비율이 매우 낮다. 다른 사람들의 취업과 직업선택에 도움을 주지만 정작 우리들은 거의 계약직이거나 파견직이거나 임시직, 대체근무직으로 근무한다. 구직자들에게 줄 취업정보를 검색하며 내 일자리도 함께 검색한다. 내게 도움받은 구직자가 정규직에 취업하고, 연봉이 상승하면 기뻐해주지만, 정작 나는 만성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승진도 성과급도 없다. 이것이 바로 직업상담사들의 딜레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더더욱 역량강화나 경력개발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곳저곳 교육을 받으러 다니다보면 교육장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얼굴들이 있다. 그때 우리들의 웃픈 현실을 반영하며, 

‘우리는 정말, 교육받으러 다니다가 과로사(過勞死)하는 직업’이라는 자조 섞인 말로 서로를 위안하며 웃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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