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드디어 셋 중에 한 놈은 졸업시켰네요!"
삼 남매 엄마_ 현실 버전 이야기
입추는 지났지만 8월의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다. 우리 집 장녀 큰아이의 대학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1999년, 대학졸업하자마자 혼전임신을 하여 엄마아빠가 되고, 결혼을 하고, 하나씩 식구와 살림을 늘려가며, 3남매를 키워왔던 우리 부부에게는 꽤나 의미심장한 날이었다. 남편과 나는 외출준비를 하며 아침부터 들떠있었다. 큰딸과 작은딸 준비시간이 길어지는 동안 꽃가게에 예약해 놓은 꽃을 찾으러 갔다. 주먹만 한 핑크색 장미가 세 송이나 꽂힌 꽃다발이 푸짐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가게 주인이 미리 사진을 찍어놓으셨다고 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사진을 찍었다. 요리 찍고 조리 찍고, 남편과 둘이서 꽃다발을 안고 셀카도 찍어서 가족 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고등학생인 막내는 이미 이틀 전에 개학을 한터라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나는 우리 가족 전원이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이런 사유로 수업을 빠진다고 말하는 것이 왠지 명분이 약한 것 같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는데.. 글쎄 막내 이 녀석이 선생님께 큰누나 졸업식에 가도 되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나는 어쩜 막내가 이렇게 기특한가 싶어 놀랍고 대견한 마음으로 물어봤더니, 아들 녀석의 대답은 심플했다. "학교 가기 싫어서요!" 라며 씨익 웃는다. "그럼 그렇지, 으이구 이 녀석아~ㅎㅎ" 어쨌든 담임 선생님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아침에만 말을 해도 허락해 주었을 텐데... 방과 후에 너무 늦게 말을 해서 안된다고 하셨다고 한다. '오, 아쉽다! 진작 말할걸!‘
우리 네 식구는 대학교가 있는 인천 송도에 갔다.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길에도 남편과 나, 큰딸은 회상에 젖었다. 언니네 학교에 처음 가는 둘째 딸만 조용했다.
"이제 이 길도 마지막이네. 연둥이 기숙사 들어가고, 방 뺄 때마다 참 많이 갔었는데..."
"우리 Y 면접 보러 갈 때 생각나네. 그리고 Y, 1학년때가 금요일 아침 1교시 수업이어서 내가 아침마다 데려다주고 출근했었는데“
"맞죠, 어머니 아부지,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당~~."
19학번인 딸아이가 면접 보러 처음 왔던 때는 2018년 10월이었다. 그때 논술전형과 교과전형만 썼던 딸아이는 I대학교에 교과전형을 지원한 상태였다. 면접에 대비하기 위해 딸아이가 관심 있어하는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CRISPR)'에 관한 책도 읽고, 고등학생 때 정리한 생명과학 스크랩북도 다시 들춰보고 갔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안경을 쓰고 교복을 입었던 열아홉 살의 우리 Y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도 먼지 하나 없이 눈부시게 맑은 가을날이었는데...
Y는 약간 긴장은 했지만, 당차고 씩씩하게 웃으며 면접 보러 들어갔다. 나는 딸아이를 기다리며, 학과 건물 주변을 배회했었다. 학과건물 옆 작은 도로를 건너면 바닷가 공원이 있었다. 한가로운 바닷가 공원을 걷다가 흔들흔들 그네에 앉아 물도 바라보고 갈매기도 바라보며 멍 때리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런 시간들을 어느새 4,5년이나 훌쩍 지나 대학교를 졸업한다니!!!! 그 시절, 우리 연둥이 참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었는데... 그게 어느새 추억이 되고, 옛날이야기가 되었다니!!!!
큰 딸아이는 수능 끝나고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술에 대한 호기(豪氣)가 대단했었다. 갓 스무 살이 되는 아이들이 00시가 지나자마자 바로 주민등록증을 이마에 붙이고 편의점에 들어가 술을 사는 것이 유행하던 때였다. 딸아이도 해가 바뀌자마자 친구들과 어울리며 이리저리 술을 몇 번 마셔봤던 터라, 자신감이 한껏 올라있었다.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와 로망이 부풀던 즈음, '내가 우리 과에서 내가 술로 1등 할 거예요'라는 선언까지 할 정도였다. '으이구, 공부도 아니고, 술 1등이라니 이 녀석아!!!'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아빠와 함께 대작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서울 서초동에 있는 '한국직업상담협회'에서 직업카드심리검사가 3,4급 자격증 과정을 배우고 내려오던 길이었기에, 대략 1시간 후면 도착할 테니 같이 먹자고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 보니, 이미 두 사람은 취해있었다. 낙지탕탕이에 소주를 각 2병씩 마셨다고 했다. 1시간 만에 소주를 2병 먹은 Y는 이미 몸을 가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무릎으로 기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실컷 토한 뒤 아예 화장실 바닥에 앉아서 머리는 거실로 내놓고 드러누워버렸다.
그 일은 두고두고 두 부녀의 단골 화제가 되었다. 딸은 '아빠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다시는 아빠랑 소주 안 마신다. 초록색 병만 봐도 토 나온다. 낙지탕탕이는 절대 쳐다도 안 본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아빠도 질세라, '아빠가 너가 하도 겁 없이 덤비니까, 술 무서운 걸 가르쳐 주려고 그런 거야. 소주잔을 계속 만지작 거리며 잔이 비기만 하면 홀짝홀짝 마시면서, 아빠가 니 템포에 맞춰서 같이 술 마셔주니까 너무 좋다고 했잖아.' 라며 응수했다. 그러면 나는 '그러니까, 1시간만 기다리라니까. 왜 안 기다리고 둘이 마셔서 그 지경이 됐어?' 라며 끼어들고는 했다.
실제로 그 후유증은 오래갔다. 큰 딸은 그 뒤로 한참 동안 소주는 물론 초록색만 봐도 질색을 했다. 낙지 소리만 들어도 토 나올 거 같다며, 입을 막았다. 그리고 딸은 입학하여 친구들과 본격적으로 술을 마셨다. 하지만 술로 1등을 하겠다던 출사표는 첫 OT 가서 바로 철회했다. 딸이 다닌 학과의 학생들은 정말 술꾼들이었다. 안주 없이 마시기는 기본, 과방에서 밤새워 마시기, 소주 대병으로 마시기, 갖은 술게임으로 놀이하듯 마시기 등 전통인지, 선배들부터 동기들까지 모두 술을 잘 마셨다. 술 마시기 분야에서는 넘사벽인 존재들이었다. 큰 딸은 그렇게 스스로 술찌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엄마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던 Y였다. 대학교에 가서도 친구들이랑 있었던 일들, 전화로 이야기하고, 만나서 하던 Y덕분에 나도 꽤나 다이내믹한 19학번 대학생활을 간접체험 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너무 재밌고, 유쾌하고, 눈물 나는 이야기들을 다 기록하지 못해 늘 아쉬웠었다. 남은 이야기들은 다음에 다시 하기로 하고, 어쨌든 오늘은 우리 큰딸의 졸업식에 더 깊은 의미를 두기로 하자.
딸아이를 따라 학과 건물에 가고, 학사모와 학위모를 빌리고, 이곳저곳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딸의 졸업을 축하해 주러 나온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딸의 사진도 찍어주고, 딸의 친구들이 우리 가족의 사진도 찍어주었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캠퍼스는 계절만 바뀌었고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내 눈에도 익숙한 풍경이 정겹고 아름다운데... 우리 딸아이의 눈에는 오죽할까? 곳곳을 둘러보는 딸아이의 눈에 추억과 아쉬움들이 그득했다! 딸아이의 시선으로 캠퍼스를 살펴보니 더더욱 애정이 갔다.
날은 더웠지만 어느 때보다 눈부시게 빛나고 아름다운 딸아이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오늘도 지나고 보면 또 눈부시게 빛나고, 타는 듯이 뜨거웠지만, 아름다웠던 8월의 졸업식 날로 기억되리라!!!
"우리 Y, 4년간 학교 다니느라 수고 많았네!!! 정말 장하다 우리 딸~~"
"여보, 축하해요! 그동안 정말 등록금 내느라 수고 많았어요!!!"
"당신도 수고 많았어요!"
"우리 이제 셋 중에 한 놈은 끝냈다!!! 정말 홀가분하니 기쁘네요!!! 둘째도 이미 등록금의 8분의 5는 냈으니, 한결 마음이 가볍고. 오늘은 정말 서로 축하합시다!!!"
"어머니, 아버지~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