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목요일 아침, 운동에 가지 않은 이유
목요일 아침, 여느 때와 비슷한 시간에 잠이 깼다.
남편의 출근준비 소리를 들으며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끌어당겼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가늘게 밀어 올려 뜨고 쳐다보니, 곧 8시다.
곧 일어나라는 알람이 울릴 것이다.
이번주 나의 알람은 거의 8시에 울리도록 설정해 놓았다.
11월에는 줌 강의든, 대면 강의든 10시에 시작했으므로 8시에 일어나 준비하면 충분했다.
첫 타임 운동가는 날도 9시 30분에 시작이니 8시에 일어나 준비하면 되었다.
그런데 의식은 깨었지만, 몸이 여전히 묵직하게 잠겨 있었다.
방안의 밝기도 평소보다 어둡고, 공기 역시 낮고 서늘하다.
희뿌연 창밖을 통해 뭔가 스슥스슥 대지를 적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비님이 오는구나!!!'
'아!!! 오늘은 운동을 가고 싶지 않구나, 내 몸이!'
내 몸이 오늘은 좀 더 누워있겠노라고, 좀 더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의식은 명료하게 깨었지만, 몸은 완강하게 거부하며 이불속을 고수했다.
어떻게 아냐고? 하실지 모른다.
그냥 비도 오고, 날도 흐리고 추우니, 운동 가기 싫은 거 아니냐고.
충분히 이해하니 솔직하게 말하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말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날씨 때문이 아니라, 몸이 내게 보내는 신호라고 말하고 싶다.
이 신호를 무시해서, 크게 후회를 했던 적이 2번 있었다.
작년 이른 봄이었던가? 사고현장에 이른 벚꽃이 피어있었으니, 이른 봄이었을 거다.
저녁에 발레수업을 갈 시간이 되었는데, 발레 수업을 미치도록 가기가 싫은 것이었다.
잠깐 나에게 발레수업의 의미에 대해 소개하자면, 발레수업은 내게 운명이자 구원과도 같은 운동이었다. 2015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 일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평일과 주말, 밤낮으로 쉴 새가 없었고 나는 목과 허리디스크 등의 근골격계 질환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게 되었다. 그 해결책으로 발레라는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뒤로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자세히 전달하겠음)
그런 이유로 발레는 정말 나의 생활의 중심이었다. 회사 야근이나 회식도 내가 발레를 가야 하는 날은 웬만해서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런 나의 발레에 대한 철칙으로 인하여 아예 회사일정을 나에게 맞춰주기도 했었을 정도였다. 대학원 논문을 쓰면서도, 잠을 못 자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졸면서도 발레 수업은 기필코 참석하는 편이었다. 모든 일정과 약속도 발레가 없는 날에만 잡았다. 그만큼 발레는 내게 취미 이상의 생존을 위한 운동이었고, 평생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할 운동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음)
그런 내게도 피곤한 하루일상을 마치고 저녁이 되면 모든 게 귀찮아지는 때가 있었다.
더군다나 외부 일정을 마치고 집에 와 저녁을 먹고 옷 갈아입고 나면 그 귀찮음은 몇 배로 강력해진다.
그날도 역시 옷까지 갈아입었지만, 몸이 정말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정말 머리로는 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몸은 너무나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이런 날은 제발 좀 쉬라고, 나도 좀 쉬자고...'
그런데 이게 마치 게을러지는 것 같고, 핑계 대는 것처럼 느껴져 용납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결정하는 대신 가족 톡방에 질문을 했다.
남편이 나를 잘 아는지라, '그래도 운동을 다녀오는 게 낫지 않겠냐' 하면서 격려를 해주었다.
그런 날은 차라리 '집에서 좀 쉬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피곤해서 안 가고 싶던 날도 막상 운동을 하고 나면 '그래도 오길 잘했다'로 바뀐 적이 훨씬 많았기에, 그날도 운동을 갔다.
가는 길에 무슨 정신으로 갔는지 모르겠다.
계속 미적거리며 지체했던 터라 수업시간에 지각할 상황이었고, 최대한 빨리 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다행히 퇴근길 러시아워가 살짝 지나간 상황이라, 도로도 잘 뚫려주었고, 나는 날아가듯 속력을 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과는 너무나 어이없게, 나의 100% 과실로 추돌사고를 내고 말았다.
결국 나는 그날 운동도 하지 못하고, 이제 막 피어난 벚꽃나무 아래 오들오들 떨면서 자동차사고처리 과정을 지켜봤다. 나 때문에 사고를 당하신 중년여성과 놀란 엄마가 불러서 달려 나온 그분의 아들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오늘은 역시 운동을 오고 싶지 않더라'만 되뇌었다.
두 번째 경험은 최근의 일이다.
약 3주 전 소논문 진행사항을 제출하던 즈음이었다.
나는 그날 오전에 2시간 줌강의를 진행하고 오후에 다시 2시간 줌강의를 진행했다. 그 사이 점심시간을 포함해서 두 시간 정도 쉬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점심을 먹자막자 바로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한 시간 만에 그날의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 정신없이 빠른 걸음으로 공원을 3바퀴 돌았고, 집에 오니 거의 만보를 채웠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줌 강의를 끝내고 뒷정리를 하니 오후 5시쯤 되었다. 몸이 너무 피곤하고 노곤했다. 집에서 좀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도서관 직원들 퇴근하기 전에 책을 반납해야 될 것 같아서 다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학교에 가서 빌린 책을 반납하고, 저녁을 먹고, 정말 몸이 강하게 거부하는데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억지로 억지로 열람실로 올라가 새벽 2시까지 버텼다. 그날 마음먹은 만큼의 진도를 나가기 위해서였다. 중간에 몇 번이나 몸이 정말 '눕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 쉬고 싶다. 제발 나 좀 쉬자.'라는 말을 계속 보내왔지만 나는 계속 무시하며 못 들은 척했다. 그야말로 나는 그날 내 몸을 학대했다. 철저하게 외면하고 무시했다.
결과는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됐다.
나는 갑자기 목과 허리 통증이 시작됐고, 체한 증세가 나타났다. 오른쪽 승모근 부위 통증으로 인하여 목도 돌리지 못했고, 책상 앞에 앉아 마우스만 잡으면 오른쪽 승모근 연결부위가 찌릿찌릿하게 아파왔다. 허리도 아파서 양말도 혼자 신기 어려울 지경까지 갔다. 체한 증세로 인하여 제대로 못 먹으니 갑자기 몸무게가 빠지기도 했다. 계속 강의를 하니 아예 굶을 수도 없고, 굶지 않으니 약을 먹어도 완전히 낫지를 않고. ㅠㅠ 그러한 상태를 원래대로 회복하기 위하여 무려 열흘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두 가지 선례로 인하여 나는 깨달았다. 몸은 언제나 정직하게 표현하고 있었구나. '지금은 쉬고 싶다고.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나에겐 휴식이 필요하다고. ' 그런데 그걸 뻔히 알면서도 수용하지 않는 나에게 몸은 파업을 감행했다. 나는 항상 내 의지대로 내 열정만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오만이고 착각이고 욕심이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나에게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나의 몸과 이성(또는 정신)은 완벽한 원팀(one team)이다. 서로가 서로를 강력하게 필요로 하고 서로가 서로를 강력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관계이다!
목요일 아침, 이전보다 더욱 현명해지고 더욱 건강해지고, 더욱 지혜로워진 나는 내 몸이 원하는 몸의 소리를 정확하게 들었다.
그리고 욕심을 내려놓고 쉬었다.
이제 내게 몸의 소리를 듣게 된 지혜가 생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