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어느 정도 취해 있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취기를 풍기며 느리게 말했다.
"다들 상아씨가 화난 사람이래.. 그런 거 아닌데, 내가 본 건. 상아씨는 그냥 슬픈 사람인 건데"
그 사람과의 연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의 말에 감동을 받은 건 아니고, 그 시선에 끌렸다.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마치 아이 같은 눈빛으로.
자기 잇속 차릴 줄을 몰라 사회에서 살아나기 힘든 그런 사람. 순수한 사람. 아름다운 것들을 소중히 품어두고 그걸 노래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슬픔이 많은 사람.
내가 슬픈 상태였나? 잘 모르겠다.
나는 지쳐있었다.
나는 내 앞에 닫혀있던 어떤 문을 열고 그 너머로 힘겹게 첫 발을 내딛던 중이었다. 그 앞이 너무 아득하고 무서워 붙잡을 무언가를 필요로 했다.
그때, 그가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만나는 내내 어느 정도 취해있었다.
몽롱한 상태로 자주 함께 걸었다.
땅에 발을 붙이지 않은 채로, 허공을 살짝살짝.
마주 보고 느리게 어떤 말들을 했다.
그의 입으로 나온 말들은 한 자 한 자 그의 주변에 비눗방울처럼 잠시 머물다 이내 터져버리곤 했다.
남겨진 말들은 없다.
만남은 짧았고 더듬을 추억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나는 가끔씩 그를 떠올린다.
마치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서 사실은 그 사람이 많이 지쳐있음을,
어쩌면 슬픈 상태임을 이해하는 나를 발견할 때에.
그리고 소망한다.
세상 물정이라곤 전혀 모르는 지나치게 순수한 당신 같은 사람이,
덜 슬퍼질 수 있는 그런 곳이 어딘가에 있었으면 한다고.
당신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