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드리운 방안에 가만히 누워있으니 선선한 가을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렇게 멍청히 누워 시간을 흘려보내게 될 줄 알았으면 진작 운동 좀 할걸.’ 지금껏,
“시간이 없어서......”
라고 답하며 미루기만 했던 운동에 대해 곰곰이 곱씹으며 지난날의 판단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고 보면 작년에는 유난히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주 운동을 권유받았다. 그중에서도 SNS로 우리 집 근처 필라테스 수업을 검색하여 공유해 줄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S언니는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틈에 레깅스를 선물로 건네기도 했다.
“이거 입고 운동해.”
라는 언니의 말에 신나서 그러겠다고 대답했지만 얼마 전 어린이와 함께 하는 번지요가 체험 수업 때 말고는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다.
언젠가 언니가 알려준 진짜 케겔 운동 영상(입구에만 힘을 주는 게 아니라 내장 전체를 위로 끌어올리는 운동) 덕분에 트램펄린 이후 겪은 밑이 빠지는 고통에서 벗어난 경험이 있지만 그 효험에도 불구하고 요가든, 필라테스든 수업은 등록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나가는 한국무용 수업이나 산책하는 동안의 걷기 정도면 운동은 충분할 줄 알았는데 올해는 그 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만큼 몸 상태가 나빠져서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누워서 보내고 있다.
건강할 때는 굳이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는 것이 아깝게만 생각됐다. 건강체질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자만했던 탓일까, 올해에는 많은 시간을 골골 대는데 쏟고 있다. 지금껏 큰 병 없이 매일 비실거리기만 했던 A.K.A 비실이가 이제는 걸핏하면 누워서 회복 시간을 가져야 할 만큼 쇠약해져 버렸다.
딱히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거나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해 내지 않는 날도 눕거나 앉아있는 채로 어지러움을 느끼거나, 별다른 이유 없이 체중이 줄거나, 식사가 어렵다거나 하는 일이 있어서 요즘은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늘었고, 커피도 가끔씩만 마시고 있지만 삼십 분 정도 낮에 누웠다 일어나야 남은 오후를 버틸 만큼 체력이 약해졌다.
매일 야근 중인 남편 눈에는 이런 내가 신기하고 어이가 없는지 종일 집에만 있었으면서도 걸핏하면 뻗어있는 나를 보고 말없이 고개를 내젓는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나도 남편 앞에서는 면목이 없다. 저녁에 사과를 먹으면 다음날 목이 따갑기 때문에 먹지 않겠다던 아빠를 보며 ‘엄살은’이라고 생각했던 딸내미는 그 체질을 똑같이 물려받아 차가운 음료 한 잔에 목이 붓고 잠기는 어른이 되었다. 막상 이 몸으로 살아보니 지금껏 아빠의 모든 하소연은 엄살이 아닌 호소였다는 걸 알겠다. 그래도 남편은 부디 영원히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무병장수하기를 바랄 뿐이다.
얼마 전에는 맨날 아프다,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것도 지겨워서 이번에는 장을 자극하지 않는 우유 분말도 주문하고 철분제도 먹기 시작했다. 건강검진도 받을 거지만 운동도 시작해야 할 거 같아 몇 달 전부터 꾸준히 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M작가님에게 실내 사이클도 추천받았다. 실내 사이클은 몇 년 전부터 고민하던 건데 공간 차지의 부담감을 이겨내고 주문해서 어제는 설치도 끝냈다.
한 번에 이십 분씩, 하루 두 번을 탈 계획이었는데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서 타보니 이십 분이 지난 후부터 땀이 나기 시작하는 바람에 결국 삼십 분을 탄 후에야 내려왔다. 땀이 주룩주룩 흐를 정도는 아니지만 온몸에서 땀이 나기는 했다. 공복에 물 한 잔 마시고 탔더니 어지럽고 속이 좋지 않아 밥을 바로 챙겨 먹는데 확실히 밥맛이 평소보다 좋았다. 물론 허기가 채워지자마자 급격히 피로가 몰려오면서 밥도 더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지난주 무용수업을 하고 왔을 때에 비하면 견딜만했다.
후회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새삼 이 지경이 되고 나니 후회를 안 할 수가 없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몇 번이나 자리를 이탈하고 무언가를 챙겨 먹었다. 체력이 떨어지면 집중력도 떨어지고 의욕도 떨어진다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 조금 전에는 하다 못해 안방에 가서 핸드폰도 보지 않고 가만히 누워 쉬었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더라도 몸이라도 쉬게 할 작정이었다. 누워있는 내내 ‘빌어먹을, 아침에 사이클 삼십 분 탔다고 이렇게 어지러울 수 있는 건가.’하며 원망의 욕지기를 속으로 내뱉었다.
조금 있으면 아이가 집에 돌아올 시간. 남은 오후시간 동안 아이도 챙기고 할 일도 다 해야 하는데 그 자잘한 일상이 막막하여 헛웃음이 나온다. 말 많은 주부이자 *미세스 비실이의 현재 가장 큰 목표는 생존이다. 아무쪼록 열심히 챙겨 먹고 운동하여 내년에는 지금보다 체력이 상승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미시즈'가 올바른 표기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