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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Jun 18. 2024

손은 두 개, 핸드크림은 일곱 개


잠들기 전 양치를 하고 욕실에서 나오면 화장대 앞에 서서 립밤과 함께 수분감 있는 핸드크림을 바른다. 그리고 잠자리에 누우면 독서등을 켠 채 책을 읽는데 그때 다시 머리맡에 놓인 꾸덕한 재형의 핸드크림을 손과 발에 바른다. 책을 읽다 잠이 들어서 아침까지 쭉 잘 때도 있지만 가끔은 자다 깨어 화장실에 갈 때도 있다. 그럴 땐 비몽사몽 눈도 못 뜬 채 손을 씻고 자리에 누워 손을 더듬거리며 핸드크림을 찾아 또 바르고 잔다. 이십 대 때만 해도 핸드크림은 외출해서만 바르는 건 줄 알았는데 몇 년 전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에서 주인공 페니가 침대 옆에 크림을 두고 자기 전 바르는 걸 보고 난 후로는 덩달아 머리맡에 두고 바르고 있다. 이렇게 바르면 손이 아주 촉촉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최근에는 고무장갑을 쓰기 시작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맨손으로 손빨래를 했다. 흰옷을 하얗게 만들기 위해 과탄산소다를 자주 쓰는데 그럴 때마다 장갑을 끼지 않았기 때문에 손이 자꾸 거칠어졌다. 빨래뿐 아니라 하루에도 몇 번씩 설거지를 하다 보니 피부가 거칠어지고 거스러미도 잘 생겨서 가끔은 투박해진 손에 속이 상했다. 그렇다고 손을 볼 때마다 연민에 빠져있을 수는 없으니 되도록이면 집안 곳곳에 두고 기회가 될 때마다 크림을 바르려고 한다.

글을 쓰는 도중에도 내려다보니 손등이 건조해 보인다. 조금 전에 커피와 간식을 준비하며 손을 씻은 탓이다. 책상에는 세 종류의 핸드크림이 있다. 하나는 친구가 선물해 준 아로마 향이 나는 크림이고 또 하나는 꽃 향기가 풍부하게 나는 것이다. 책상 앞에서는 흡수가 빠르고 집중에도 도움을 되는 아로마 향이 나는 걸 바르고 외출하기 전에는 꽃향기가 나는 걸 바른다. 향수만큼은 아니지만 향이 지속되는 시간이 꽤 길고 보습 효과도 커서 집보다는 밖에 나갈 때 향수와 함께 사용한다. 마지막 하나는 바디 크림용으로 나온 것인데 파우더 향에 친구가 선물해 준 것보다 보습 효과가 좋아서 팔꿈치에 바를 때 손등에도 같이 바르는 용도로 쓰고 있다.

집에서 쓰는 것만 해도 다섯 개인데 외출용 파우치에는 추가로 두 개의 크림이 들어있다. 시트러스 향이라 바른 순간 기분이 좋아지는데 향의 지속력이 낮아 카페나 식당처럼 실내에서 발라도 부담이 적고 수분감에 비해 끈적임이 적어 밖에서도 먼지가 묻을까 걱정이 적다. 크기도 작아 한 번 살 때 여러 개를 사서 다 쓸 때마다 바꿔가며 들고 다니는데 요즘에는 책상 위에 있는 바디 크림과 똑같은 것도 넣어 다니며 팔꿈치나 무릎에 발라주고 있다. 아무래도 더위가 강해지면서 다른 계절보다 신체 부위를 노출할 일이 잦아서 각질이 신경 쓰일 때가 있는데 가지고 다니는 핸드크림은 보습이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 없고 막 바르기에는 가격도 부담이라 조금 더 저렴하고 또 작은 사이즈인 바디크림을 들고 다니는 중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만들려고 해도 핸드크림을 이렇게나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손은 두 개인데 사용하는 핸드크림만 일곱 개다. 두르가나 비슈누처럼 힌두교 여신 중에는 팔이 여러 개인 경우가 있던데 그들이 만약 핸드크림을 바른다면 하나를 사서 모든 손에 다 바르지 한 손당 하나씩 사서 모두 다르게 바르진 않을 것이다. 하나만 사서 집에서도 쓰고 밖에서도 써도 될 텐데 실은 쓰던 것이 있어도 궁금한 향이 있으면 고민 끝에 사버린다. 지금은 포장도 뜯지 않은 새것이 하나뿐이지만 불과 겨울까지만 해도 여러 개를 챙겨두고 있었다. 다른 화장품에 비해 가격 부담이 적고 사두면 갑작스럽게 선물할 일이 생겼을 때도 유용하고 그러고도 남은 것은 내가 사용할 수 있으니 새로운 브랜드를 찾거나 못 보던 핸드크림을 보면 일단 사고 보는 게 습관이라면 습관이다.

크림보다는 향기 제품에 관심이 많아서 아로마 오일도 여러 개 사두고 홈 프래그런스나 향수, 보디오일, 핸드워시나 바디워시도 기분에 따라 다르게 쓰는 걸 좋아했는데 절약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있는 것을 다 쓰기 전까지는 새로 사지 않고 다 쓰더라도 하나씩만 사서 끝까지 쓰는 것을 실천 중이다. 임신과 수유 기간 동안 향이 있는 제품을 쓰지 못한 데다 팬데믹으로 외출이 어려워지다 보니 한동안 쓰지 못했던 다양한 향을 사보거나 집안 향기를 바꾸는 것으로 기분을 전환시키려고 했다. 처음에는 그런 것들이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는데 요즘에는 그것에도 질렸는지  홈프래그런스나 디퓨저 제품의 사용은 줄였다. 몇 년 전만 해도 인센스를 태우는 것을 좋아해 여러 가지를 모으곤 했는데 천식이 심해지면서 모두 남편 일터에 가져다 두고 집에서는 아주 가끔씩 기분 전환이나 집안에서 나는 안 좋은 냄새를 없애기 위해 오일 버너를 사용하고 있다.

한창 집안일을 하다가 뭐라도 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으면 앉는 순간 공부가 시작되거나 글이 써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핸드크림이나 오일에서 풍기는 향으로 마음 가짐을 달리 하려고 했는데 요즘은 크림만 바르고 다시 노는 날이 더 많다. 이제는 새로운 향기가 기분 전환에도, 집중에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손 보습은 중요하니까 앞으로는 책상에서 쓸 것 하나, 침실에서 쓰는 것 하나, 그리고 외출용 하나로만 줄이겠다. 침실에서 쓰는 것은 옆에서 같이 자는 아이가 선호하는 향기일 것과 보습이 충분이 잘 되는 것이어야 하니까, 외출용은 작고 가벼워야 하니까 이렇게 세 가지 정도는 구별해서 써도 괜찮을 거라고 우기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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