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두 번째 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건 비단 자연 풍경만이 아니다. 나의 바이오리듬도 밤이 짧아지고 기온이 오를수록 미세하게 달라진다. 새해를 맞이하여 계획을 세우다가도 깊어진 추위에 몸을 숨기고 움츠린 채 두 달을 흘러 보냈다. 달력에서 입춘과 경칩이라는 글자를 볼 때마다 고개를 내밀어 봄의 방문을 엿보지만 풍경은 나의 애타는 마음과 달리 느리게 변화했다. 봄이면 '땡'하고 일제히 꽃 피우는 것이 아니라, 봄기운이 은은하게 공기에 묻어날 쯤부터 그들도 겨우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겨울에는 어린이 방학으로 요가 수업에 통 나가지 못했다. 가끔 나가더라도 몸을 느슨하게 풀어내는 수업 위주로 골라,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만 수련했다. 아이가 개학만 하면 매주 성실하게 나갈 줄 알았는데 정작 3월이 되어서도 시간을 내기는커녕 더 바빠졌다. 일출 시간이 앞당겨질수록 기상 시간은 빨라졌지만 갑자기 생겨난 짧은 개인 시간을 두고 뭐부터 해야 할지 허둥대느라 일주일을 보내고, 해낼 줄 알았던 일을 해내지 못해 자책하느라 일주일을 보냈으며, 하지 못할 일을 포기하느라 또 일주일을 보냈다. 그나마 좀 살겠다 싶었을 때는 이미 한 달의 끝무렵이었다. 그래도 또 달이 바뀔 쯤에는 새로운 일상에도 어느 정도 적응하기 시작하여, 오랜만에 요가 수업도 예약했다. 그것도 원래 하던 하타요가 대신 힘들어서 좀처럼 하지 않던 아쉬탕가 수련으로. 어째서인지 4월이 되자 본격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잠들어있던 신경을 힘차게 깨우고 싶어진 것이다.
3월 말부터는 봄꽃도 일제히 피어나 동네를 분홍, 노랑으로 물들이기 시작하더니 하루, 이틀 사이에 금방 풍경이 달라진다. 1월 말부터 지켜본 동백꽃 봉오리는 주말이라 못 본 사이에 활짝 피어나 버리기까지 했다. 오래 관찰한 만큼 피어나기 직전 모습도 꼭 목도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금요일에는 봉긋 솟은 봉오리, 월요일에는 활짝 핀 모습으로 나무에 매달렸던 동백꽃은 수요일에 본 걸 마지막으로 종적마저 감추었다.
지난주 만개했던 벚꽃은 이번 주 내내 꽃잎을 떨구더니 오늘은 거의 다 떨어진 모습. 붉은 꽃자루 사이로 꽃잎은 없고 잎순만 몸집을 키워내고 있다. 동백꽃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꽃들이 그렇다. 봉오리인 상태로 겨울을 지내다 봄이 오면 속력을 올려 꽃을 피우고, 짧은 나날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다 이내 저물어버린다. 그러나 막상 꽃이 진 자리를 보고도 덤덤하게 구는 건 꽃이 머무는 시간이 식물의 한해에 중요한 행사일지는 몰라도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아서다.
봄꽃의 첫 타자가 뒷걸음질 치며 안녕을 고하는 동안 다음 순서인 꽃들이 하나둘 피어나기 시작한다. 1월과 2월 사이에는 그렇게도 지루하게 같은 모습만 보여주던 동네가 지금은 하루, 이틀만 한눈을 팔면 금세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언제 오나' 하고 기다릴 때는 오지 않던 봄이 예열을 끝내기가 무섭게 박차를 가해온다. 꽃을 떨군 식물들은 잎을 키우며 본격적으로 성장할 준비를 한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은 한해 일정 중 하나일 뿐 아직 본격적인 활동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꽃은 그야말로 번식을 위한 수단이라 식물이 자기 몸을 키우기 위해서는 잎을 많이 만들고 광합성을 열심히 해야만 한다. 길거리는 온통 꽃 아니면 연둣빛 이파리로 가득. 1월이 인간 세상에서 새해라 불리든 말든 식물들의 새해는 바로 지금부터라는 분위기다.
곤충, 벌레들은 식물들에 비하면 아직 출발선에도 도착하지 않은 시기. 식물들이 풍성해지면 먹을거리가 늘어난 만큼 동물들도 하루가 다르게 자연 풍경에 합류하기 시작할 것이다. 나의 시작은 식물과 동물의 경계쯤. 머리가 조급해한 것과는 다르게 몸은 이제야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몸과 잘 맞는 시기여야 성장도, 성과도 효과적이다. 다년을 살아가는 여러 생물처럼 나의 성장도 곧장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이오리듬에 따라 한해씩 사이클을 돌며 앞으로 나아간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피어난 꽃들이 짧은 시간 사람들 마음을 흔들어놓고 금세 저물어버리는 것이 아쉬운가, 식물은 이제야 시작이라 말하는데. 벌써 4월이지만, 꽃잎은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흩날리지만 이제야 시작이다. 식물도, 나도, 동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