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 4월 초 자연관찰
매년 이맘 때면 꽃 사진과 함께 기후위기 이야기가 나온다. 벚꽃 개화 시기가 앞당겨졌다거나 시차를 두고 펴야 할 꽃이 한 번에 폈다는 등의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연관찰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이나 그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었다. 기후위기가 주변 자연에 끼치는 영향을 직접 목격하는 것.
자연은 설정값을 넣으면 늘 같은 결과값이 나오는 물건이 아니다. 인간 개체 각각의 생각과 행동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듯, 식물 역시 수많은 개체 중 단 한 그루, 가지 하나의 꽃 하나 정도는 타이밍을 착각해 불시개화(개화하는 시기가 아닌데 개화하는 현상) 할 수도 있다.
기후 위기가 식물 생태계에 혼란을 주고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로 증명된 사실이다. 이와 별개로 자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려는 노력 없이 이슈에 몰두해, 모든 자연현상의 원인을 두고 "답은 기후 변화로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지 않나 싶다. 산을 깎아 도로와 아파트를 짓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식물을 찾는답시고 생태계 교란의 위험이 있는 외래 생물을 적극적으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우리 고유의 자생 생물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조차 사람들은 '기후 위기'하는 단어로 뭉뚱그려 지구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식물에 관한 오해] 이소영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금세 기후 위기 탓을 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진정으로 자연을 걱정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척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진심이었다면 대충 아는 척하며 글을 쓰기 전에 직접 살펴볼 노력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 중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한 것은 매년 벚꽃이 피는 시기나 장마가 시작되는 시기, 장마가 지속되는 기간을 파악하기. 그런데 잊고 지내다 만개한 것을 목격할 때만 기록하는 걸로는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게다가 벚꽃을 보는 장소가 매번 달랐다. 알고자 하는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올해에는 조금 더 장소를 좁히고 더 집요하게 관찰해 보기로 했다.
작년에만 해도 목련과 벚꽃, 개나리가 동시에 피어나는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보니 대체로 매화, 산수유꽃, 목련, 개나리, 개복숭아꽃, 벚꽃 순서로 피어나고 있다. 다만 해가 별로 없는 곳에서는 늦게 피는 개체도 있다 보니 장소에 따라서 목련과 벚꽃, 철쭉까지 공존하여 이질감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인간 세계가 아닌 사후세계나 이세계를 표현할 때 계절이 다른 꽃을 동시에 그려 넣기도 하는 걸 보면 온갖 꽃이 동시에 피어나는 걸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고 그 역사 또한 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 동네 식물들의 대부분은 올해에도 순서대로 꽃을 피워내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 나무라도 건물에 의해 목련은 그늘지고 벚꽃은 해를 받고 있는다면 그 둘이 동시에 꽃을 피운다고 해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단번에 기후위기 탓이라고 말하기 전에 주변 환경을 조금 더 유심히 살펴보았더라면 쉽게 지구 탓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매년 벚꽃 개화 시기를 두고 '날씨가 미쳤다' 같은 말이 나오는 것은 매화와 벚꽃을 헷갈린 사람들의 의견이 일조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자연에 관심을 가진 기간에 비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매화과 벚꽃을 구별하지 못했으며 여전히 수많은 봄꽃 구별을 어려워한다. 자두꽃, 살구꽃, 복숭아꽃, 개복숭아꽃 등 비슷한 것이 너무도 많다. 꽃 모양과 나무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데 제대로 된 관찰이 가능할까. 이름이 모르는 것은 일단 사진을 찍어 검색해 보기도 하지만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더 많은 정보를 얻을 때까지 여러 날 지켜보며 기록하거나 SNS에 올려 답을 찾기도 한다. 이제는 매화, 벚꽃, 자두꽃, 복숭아꽃까지는 알아볼 수 있지만 아직 살구꽃은 잘 모른다. 우리 동네에 최근에 봉오리를 맺기 시작한 핑크색 꽃의 정체도 아직 모른다. 피어난 뒤나 열매가 맺힌 뒤라면 알 수 있으려나.
아는 것이 없으면 같은 풍경을 봐도 보이는 것이 적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에는 우리 동네에서 알아볼 수 있는 식물이 꽤 늘긴 했다. 그렇지만 원래 걷던 길에서 벗어나거나 우리 동네를 벗어나기만 하면 모르는 것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당장 눈에 띄는 것만 봐도 바빠서 구석구석 살펴볼 시간이 없다. 지난 주말에는 우포늪에 다녀왔는데 망원경으로 보이는 새들만 살펴봐도 시간이 빠듯하여 식물을 살필 엄두조차 하지 못했다. 우포늪에 사는 다양한 생물을 자세히 살피지 못한 것이 얼마나 아쉬운지.
요즘은 꽃만 피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 양치식물이나 이끼도 열심히 올라오는 중이다. 짙은 초록으로 메말라 있던 이끼들은 봄비를 맞고 부피가 커졌고 쇠뜨기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며 면적도 넓혀가는 중이다. 얼마 전에는 이슬을 잔뜩 메단 석송을 봤고 그 장면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요즘 자연 관찰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후위기 증거를 찾는 동시에 자연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서인데 특별히 시선을 의식하며 연출하지 않고 그냥 저대로 있을 뿐인데도 누군가에게는 기쁨을 주는 꽃과 석송을 보면서 인간도, 나도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도, 인간도, 나도 아름다워질 필요가 없음에도 그저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기쁨을 주고 감동을 준다면 그것을 꼭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 누구든, 무엇이든 알기 위해서는 자세히 바라봐야 하고, 그렇게 자꾸 시선을 주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애정이 생긴다. 자연 관찰을 이어가며 앞으로는 더 많은 것을 사랑하고 싶은 동시에 나 또한 존재 만으로 많은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