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마지막 주
본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요일 저녁. 길게 이어진 도로를 따라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어있다. 금요일에만 해도 봉오리였던 것들이 주말 사이에 볕을 쐬고 만개한 것이다. 저녁이라 해가 저물어가는 중임에도 도로를 따라 선명한 노란빛을 뽐내는 탓에 집으로 가는 내내 시선을 빼앗긴다. 조수석에 앉은 덕에 이 광경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것이 그저 감사한 순간. 운전석이었다면 이 꽃들을 뒤로한 채 전방주시하는 것이 아쉬울 것 같다.
봄비가 몇 번 내리더니 여기저기서 꽃송이가 터지기 시작한다. 안타까운 것은 봄소식과 함께 미세먼지도 덩달아 밀려온 탓에 산책에 주저하게 된다는 것. 환기도 참을 만큼 온 세상이 뿌연데 나가도 될까. 아이 등굣길을 따라나서는 김에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챙긴 채 동네를 한 바퀴 걷는다. 막상 나와보니 며칠 사이에 달라진 풍경에 발걸음에 욕심이 실린다. 그 후로도 몇 번씩 길을 오가며 목련이 아침, 저녁이 다르게 커져가고, 산수유가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있는 힘껏 꽃을 피워낸 모습을 지켜보았다. 풀명자는 아직 다 피워내진 않았지만 지난주보다 많은 꽃을 피웠다. 매화는 지고 벚꽃은 아직은 시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꽃들도 만개해 있다. 이름이 궁금해 사진을 찍어 검색해 보지만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길을 걷다 동행인에게 꽃 이름을 알려주거나 혼자서 찍은 꽃이나 새, 곤충 사진을 SNS에 올리면 지인들이 "어떻게 그런 걸 다 알아?" 하며 놀란다. 그럴 때면 우쭐해지기보다는 민망할 때가 많다. 아직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지만 주변 풍경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름을 외우는 자연 생명체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뿐이라 그렇다.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나무줄기 형태나 잎, 꽃만 가지고는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 그럴 때는 참을성을 갖고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줄기나 형태 만으로는 모르겠다 싶을 땐 꽃이 피는 계절을, 그걸로도 모를 땐 잎이 생기거나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렸다 다시 검색해 본다. 행여나 시기를 놓쳐 관찰을 못 했을 땐 다음 해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십 년이 넘도록 한 동네에 머물고 있지만 이곳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대부분 새로운 길보다는 늘 가던 길로만 다닌다. 그래서 집 앞이라고 해도 지나지 않는 길에 있는 가게는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 식물은 매일 다니는 길에 있어도 못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집 앞 화단에 핀 꽃도 못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 동네를 몇 년째 지켜보고 있지만 매년 못 보던 식물을 발견한다. 이번 봄에만 해도 대부분이 그렇다. 어떻게 아는 식물보다 낯선 식물이 더 많을 수 있을까. 심지어 다른 동물은 아예 구분조차 할 수 없다. 같은 종의 새나 곤충을 또 봤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같은 새나 곤충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자주 걷는 길은 높은 지대에 있어 옆에 있는 담벼락 아래로 나 있는 낮은 지대의 나무 우듬지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늘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나무들이지만 이 길에서 만큼은 나도 나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어느 날, 아래를 내려다봤더니 못 보던 꽃이 피어있다. 작은 하얀 꽃들이 자잘하게 피었길래 이팝나무인가 싶어 처음으로 아래쪽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인적이 등문 땅이라 땅은 발을 딛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로 들풀과 이끼로 가득하고 쑥도 여기저기 자라 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더 걸으니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이가 쑥을 뜯고 있다. 그 곁을 조심스레 피해 나무 가까이 가보니 이팝나무 꽃보다는 크고 매화와 닮은 모습의 꽃이 피어있다. 꽃향이 얼마나 달달한지 마치 꿀통에 코를 박고 있는 듯하다. 곰돌이 푸가 무척이나 좋아할 것 같은 냄새다.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향기를 몸속 가득 빨아들인다. 혼자서만 즐기기에는 이 향이 너무 값지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럴까. 곤충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하다못해 새나 등에라도 나타났으면 좋겠다. 꽃은 벚꽃잎과는 모양이 다르고 크기가 작다. 검색하니 자두나무라고 나오는데 열매 맺힐 때쯤 다시 찾아와 보면 더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