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셋째 주
벚꽃 잎이 흩날리는 걸 보고 "꽃비가 내리네." 하고 말하면 어린이는 늘 "꽃비가 아니라, 꽃눈이야." 하고 말을 덧붙인다. 눈을 보기 힘든 부산이라 하얗게 내리는 꽃잎이라도 눈이라 말하고 싶은 어린이의 마음을 어찌 모를까. 월요일 아침, 등교를 위해 집을 나오니 도로와 인도마다 주말 사이에 떨어진 벚꽃 잎이 하얗게 쌓였다. 얼핏 보면 정말 하얀 눈이라도 쌓인 것 같다.
지난 몇 주 동안 꽃이 피는 걸 관찰했던 벚꽃 나무 가지에는 이제 새순이 올라온다. 꽃잎은 떨어지고 꽃이 있던 자리에는 드물게 열매가 맺혔다. 연둣빛에서 서서히 붉은빛으로 변해가는 열매는 언뜻 보면 성냥처럼 보여서 저대로 성냥갑 바깥의 적린에 긁으면 뜨겁게 불꽃이라도 피어오를 것 같다. 꽃잎이 다 떨어지고 며칠 뒤 땅을 뒤덮은 건 꽃자루. 열매가 맺힌 건 가지에 매달려 있고 그러지 못한 것은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떨구는 것인지 바닥에 있는 꽃자루에는 열매 때문에 볼록해진 걸 찾기 힘들다. 드물게 살짝 볼록한 걸 골라 안을 살펴보니 아주 작게 맺힌 열매가 있다. '꽃이 지면 열매가 맺히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하다가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니 꽃의 제 역할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지나가며 살펴보니 일찌감치 꽃잎을 떨군 매실나무는 이미 제법 큰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매실나무가 열매 맺는 과정도 지켜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다른 열매들은 놓칠 수 없다 싶어 얼른 자두나무와 개복숭아나무를 찾아가 본다. 역시나 두 나무 모두 꽃잎을 떨군 뒤 열매를 맺기 시작. 이렇게 큰 꽃들은 열매가 맺히는 과정을 살펴보기가 쉬운데 회양목처럼 작은 꽃은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남은 회양목 꽃이라도 관찰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연둣빛으로 물든 길에 드물게 하얀 꽃이 만개해 있다. 바로 꽃사과나무 꽃이다. 가까이에서 보니 잎에 드물게 구멍이 뚫려있다. 잎이 올라오니 잎에 의지해 사는 벌레들도 등장했나 보다. 열심히 기웃거리다 하얀색 벌레를 발견. 어느 벌레의 유충인지 몰라도 잎 뒷면과 가지에서 몇 마리가 보인다. 이제 며칠이 더 지나면 더 많은 벌레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추측과 달리 시일이 지나도 벌레가 늘거나 벌레 먹은 잎이 많이 보이진 않는다. 꽃사과나무는 자신의 잎을 갉아먹는 벌레를 막기 위해 벌써 조치를 취했나 보다. 과연 어떤 방식이었을까. 맛이 없어지는 방식? 아니면 위고비처럼 식욕이 줄어드는 물질을 추가하는 방식? 그것도 아니면 서로를 공격하도록? 관찰자는 결코 진실을 알 수 없다.
나무에도 벌레가 등장한 것처럼 땅에는 개미와 공벌레가 출몰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공벌레를 볼 때마다 반가운 친구를 본 것처럼 소리치며 손을 뻗고, 그걸 본 어른들은 하나같이 "안돼!"를 외친다. 다들 어릴 때 실컷 만지고 놀았을 거면서. 물론 공벌레를 만지는 건 벌레에게도 못 할 짓이다. 그도 생명이니 장난감 대하듯 만지면 안 되는 게 맞다. 그렇지만 신기하다. 어째서 어린이에게 공벌레는 이리도 귀여운 생명체인 것일까. 성별 구분 없이 공벌레를 좋아하는 애들은 좋아하고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그냥 지나쳐 지나간다. 등굣길에 혹여나 발에 밟혀 죽는 공벌레가 있을까 조심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개미나 공벌레 한 마리도 소중하게 여기는 그 마음이 참 예쁘다. 그럼에도 꼭 납작하게 밟혀 죽는 공벌레는 생기기 마련이고, 그러면 개미는 마치 귀한 식량을 찾았다는 듯 급히 챙겨가느라 바쁘다. 아이들이 귀여워하는 공벌레가 죽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수없이 밟히다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것보다는 개미들의 먹이가 되어 또 한 번 생명의 일부가 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먼지가 되어 사라진 공벌레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 나름의 의미를 갖겠지만.
비가 내리는 오늘, 길바닥에는 작은 지렁이 사체가 잔뜩이다. 며칠 전 비가 왔을 때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요사이 지렁이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했나 보다. 같이 걷던 어린이는 지렁이라면 치를 떨어서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을 떨지만 지렁이가 이렇게 많다는 건 주변에 있는 흙이 건강하다는 증거고 이렇게 죽은 지렁이가 많은 만큼 주변에 사는 벌레들에게 좋은 먹이가 생긴다는 말이니 어린이가 좋아하는 공벌레에게도 과연 반가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