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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이 Aug 08. 2020

삶은 비로소 언제야 편해질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 를 보고

(사진 출처: tvn 나의 아저씨 공식홈페이지)

  누군가 지금까지 본 드라마 중 '인생' 드라마를 딱 두세 편만 꼽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괜찮아, 사랑이야>, <디어 마이 프렌즈>, 그리고 <나의 아저씨>. 마지막까지 좋은, 아니 특히 마지막회가 좋은 드라마를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그 때도 <나의 아저씨>라고 대답할 것이다. 마음을 오래 공부한 지금도 여전히 좋은 드라마가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너무 순진한 이야기로 들릴지 몰라도,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아저씨>는 지안과 동훈의 삶을 통해 끝이 어딘지도 모를 어둠 속에서 빛으로 가는 여정을 보여주는 치유의 힘을 가진 드라마 같다.


  지안의 눈엔 초점이 없다. 고작 여섯 살에 병든 할머니, 사채 빚과 함께 남겨졌다. 어른이 채 되기도 전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또 하나밖에 없는 존재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 하루하루 되는대로 먹고, 자고, 일하고, 산다. 그렇기에 삶의 방향은커녕 목적도 없다. 태어났고, 내던져 졌기에 사는 존재.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궁금함도 없던 지안에게 궁금한 존재가 생긴다. 파견직으로 취직한 직장의 평범한 아저씨 동훈이다.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 정도였던 그가 자꾸 알고 싶어진다. 몇 마디 없는 그의 말에서 따뜻함을 배우고, 함께 슬픔을 느끼고, 위로를 얻는다. 어둠으로 가득했던 지안의 방에 달빛 한 줄기가 비친다.


  우리는 끊임없이 뭔가를 원하고, 욕구를 충족하며 살아간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매슬로우가 말한 욕구의 위계는 지안의 성장과 놀랍도록 맞아 떨어진다. 가장 기본적인 삶의 욕구는 배가 고플 때 밥을 먹을 수 있고, 졸릴 때 잠을 자야 충족되는 생리적 욕구다. 이런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 사람은 통제된 상황 속에서 안전함을 추구하게 된다. 위협 없이 안정적인 삶을 얻고 나면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누군가와 어울리고 싶은 바람이 생긴다. 그러면 나를 돌아보고, 나를 돌볼 수 있게 되며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하지만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지안의 삶은 결핍 그 자체다. 소리 없이 불어나는 사채 빚을 갚기 위해 잠잘 시간도 없이 일을 하며, 끼니를 때울 여유도 없어 식당 설거지를 하다 남은 음식을 몰래 먹고 믹스 커피 몇 개를 한꺼번에 타서 밀어 넣는다. 그렇게 매일 살아가는데도 빚은 늘어만 가고, 사채업자 광일은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분노와 왜곡된 감정을 지안에게 퍼붓기 위해 시시때때로 찾아와 그녀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자신을 돌볼 힘도 없어 보이는 얼굴로 병든 할머니를 돌본다. 출구가 없는 삶이다.


  처음 지안이 동훈에게 자주 하던 말은 "밥 좀 사주죠." 였다. 그 때마다 동훈은 밥을 사준다. 어느 날은 할머니를 위해 따로 음식을 포장해 지안의 손에 들려보낸다. 그 음식을 먹으며 얼굴 가득 웃음 짓던 할머니의 얼굴을 보는 지안의 얼굴에 아주 잠깐 편안한 미소가 번진다. 동훈을 시작으로 지안은 여러 어른들을 만난다.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들은 지안이 얼마나 외로운지를 꿰뚫어보는 듯 무심해보이지만 따뜻하게 이 '아이'를 토닥여준다. 손녀에게는 부양의무가 없다는 사실도 모르던,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실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르던 아이는 처음으로 어른들에게 돌봄을 받는다. 안전함을 느낀다. 다른 사람에게 '파이팅'이라는 인사를 건넬 줄도 알게 되고,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깨우쳐 '잘못했다'는 말을 하며 엉엉 울게도 된다. 그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용기를 낼 수 있게 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할 수 있게 된다.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혼자가 된 지안이 장례식장에서 어른들에 둘러싸여 혼자가 아니게 된 그 장면은 그래서 눈물겹도록 감동적이었다. 새로운 직장과 터전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지안과 동훈이 함께 술을 마실 때 둘의 대화가 이 모든 과정을 다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너, 나 살리려고 이 동네 왔었나보다.
다 죽어가는 나, 살려놓은 게 너야.

난 아저씨 만나서, 처음으로 살아봤는데….


  꾸역꾸역 눌린 듯 살아가다 지안을 만나 다시 살게 된 동훈, 그리고 사는 의미도 모른 채 매일을 억지로 살아내다 처음 제대로 살게 된 지안. 동훈은 남은 사람들과 함께 다시 삶을 꾸려나가고, 지안은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수어를 가르쳐 줄 만큼 커져있는 모습으로. 마지막, 우연히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안부 인사를 나누며 서로를 보고 활짝 웃을 수 있게 된다. 비로소 두 사람의 삶이 빛을 만나 편해졌기 때문에.


  대가 없이 누군가를 돌봐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사람의 외로움과 슬픔이 나와 너무 닮아 있을 때, 그래서 휘청이는 나라도 함께 버텨주고 싶을 때. 혹은 누군가가 나를 돌봐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 그 순간들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결핍을 채우고, 다시 살 수 있는 힘이 되는 엄청난 사건이 되지 않을까. 아마 나를 다시 살게 할 순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작은 온기를 허투루 버리지 않는 내일을 살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가 삶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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