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뭐 나름 열심히 했다
작년 요맘때 즈음이었습니다. 방구석에서 혼자 뚝딱뚝딱 음악을 만들다 덜컥 인디밴드를 시작했습니다. 동료들을 모으고 노래를 만들습니다. 공연이 너무 하고 싶어서 다짜고짜 홍대나 이태원 클럽에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일련의 과정이 퍽 쉽진 않았습니다. 밴드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맞는 동료를 구하지 못해 서너달은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고요. 운 좋게 반짝이는 동료들을 만났지만, 그들과 소통하는 것부터가 난항이었습니다. 악보를 그려서 전달해줘야 합주를 할 수 있는데 저는 한 번도 음악을 공부해 본 적 없던터라 악보를 그릴 줄 몰랐으니까요.
어설프게 오선지를 사서 이리 저리 그려보기도 하고, 악보 프로그램 같은 걸 다운 받아서 써보기도 했습니다. 알 수 없는 악보 기호들을 나무위키로 찾아보기도 했어요. 처음 한글을 배우는 아이처럼 떠듬떠듬 악보를 그리며 버둥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렇게 그려간 악보는 많은 경우 엉망이었고 멤버들의 혼란만 가중 시켰다.. 하하하..)
딴은 이런 저런 느낌으로 곡을 쓴 거라며 작곡 의도를 멤버들에게 손짓발짓 해가며 열심히 설명했는데 도무지 전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음악하는 사람들끼리 쓰는 표현이나 용어 같은 것들이 있는데 그걸 모르니 늘 이상한(?) 비유 같은 걸 쓰게 되고 그런 식의 말은 대개 듣는 사람 입장에서 너무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한 드럼 뮤지션이 "'마치 파도가 치는 느낌으로 드럼을 쳐줘'라는 식으로 말하는 동료가 있으면 진짜 답답하다"고 한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제가 딱 그 꼴이었습니다.
"마치 커다란 벽이 다가오는 것처럼 연주해줘!"
"한 사람이 추운 겨울에 절뚝거리면서 걸어가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연주해줘"
리더의 요구가 매번 이런 식이었으니 멤버들도 답답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미안해 얘들아ㅠ)
사실 이것 말고도 넘어야 할 산은 한 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밴드를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나고 클럽 공연을 하고 싶어서 클럽 쪽에 연락을 했을 때도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자작곡이 적어도 대여섯 곡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 그 때 제가 완성 시킨 자작곡은 두 곡뿐이었거든요. 그걸로는 도무지 공연을 할 수가 없었죠. (저희 밴드 곡은 전부 다 제가 씁니다ㅎㅎ)
꼭 공연이 아니더라도 합주시간 내내 멤버들 눈치도 좀 보였습니다. 보통 공연이나 새로운 곡을 맞추기 위해 합주를 하면 여러 곡을 연습하기 마련인데.. 자작곡이 두 곡 밖에 없으니 쳤던 곡 또 치고 쳤던 곡 또 치는 합주가 반복됐습니다. 다행히 무척이나 착한 우리 멤버들은 '계속 이 곡만 주구장창 합주할거야?'라고 핀잔을 주거나 하진 않았지만 마치 핀잔을 줄 것만 같았습니다.
(사실 이전까지는 '느낌이 오지 않으면 곡을 쓰지 않겠다'는 X소리를 자주 하곤 했는데 당장 곡 수를 채워야 한다는 부채감에 짖눌려 언젠가부터는 이런 X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공연 날짜와 시간을 조율하는 일, 돈 관리 하는 일, 프로필 사진을 찍는 일,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녹음, 믹스, 마스터링, 앨범자켓 제작 따위를 하는 일 등. 하여튼 엄청나게 많은 부대 업무가 발생했고 이걸 다 쳐내다 보니 나는 뮤지션인가 이 밴드의 행정 담당자인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그것 말고도 멤버들이 이 팀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는게 맞는지 혹시 불만은 없는지 같은 것들이 늘 신경쓰였고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늘 갈피를 잡기 어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쓰다 보니 자기 힘들었던 것만 너무 토로하게 된 감이 있긴한데요. 사실 좋았던 점이 더 많습니다ㅋㅋ 적어도 제가 알기론 우리 멤버들도 같은 마음일 텐데요. 다음 번엔 밴드를 하면서 좋았던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그럼 모두 즐거운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