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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Oct 06. 2019

#45 배려 없는 말 "넌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

이 말은 듣는 사람을 위한 말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을 위한 말이다.


“넌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     


청첩장을 주는, 결혼식을 앞둔, 친구에게 혹은 결혼한 친구에게,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에도, 자주 듣는 말이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이 말을 들을 때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아니다. 익명의 공간에 기대어 더 솔직한 심경을 말하고 싶다. 나는 이 말이 몹시 불편하고 매우 불쾌하다.       




Jean Béraud, Rond-Point des Champs-Élysées, 1880, Christie’s in New York


이 말이 불편하고 불쾌한 이유는 상대를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마치 장 베로 Jean Béraud의 그림과 같다. 이 말은 담배가 허락된 공간일지라도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피운다거나, 사람을 사이에 두고 말한다거나, 하는 그런 행위 같다. 뒤에 올 다른 마차들의 통행을 고려 하지 않고, 길 한복판에서 대화를 나누는 배려 없는 행위 같기도 하다. 적어도, 내게 이 말은, 듣는 사람인 나에 대한 배려 없이, 오롯이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위한 말이다.    

 

이 말은 듣고 있는 상대인 “너”를 위한 말이 아니다.

이 말은 ‘네가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았으면 해’라는 뜻이 아니다.

물론 아주 간혹 ‘너는 “제발”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라는 의미일 때도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 말에 담긴 진짜 뜻은 이렇다.     

“나 지금 결혼 문제 때문에 힘드니까 위로 좀 해줘”

혹은 “결혼 문제 때문에 힘드니까 내 이야기 좀 들어줘”      

    

조금 과격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나에게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라는 말을 한 그 누구도 혼자가 되지는 않았다. 그 누구도 파혼을 하거나 이혼을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게 이 말을 했던 친구들은, 순간의 진심이었다고는 할지 모르겠지만, 진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이 말은 그저 본인들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덕분에 이 말을 들을 때 나는, 늘, 철저하게, 듣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내게 허락된 건 듣기 외에 어떤 것도 없었다.           




“넌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라는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꽤 많이, 내가 힘든 일이 있었을 때라도, 혹은 숨을 쉴 틈 없이 바쁠 때라도, 나는 친구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는 했다. 지금도 아니라고는 못 하겠다. 대체로 그들이 굳이 내게 하소연한 이유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게 이야기를 하면 편해진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제 전공이 심리학은 아닙니다.)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었을 것 같다.     


나는 조언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나 역시 조언 혹은 조언 비슷한 것들을 하고는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았다. 대개의 연애 상담이 그렇듯 결혼과 관련된 상담에 대해서도 그 조언 같은 것들은 무의미했다. 내가 어떤 조언을 하든 결국 결정은 그들이 마음 가는 대로 할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철저하게 듣는 사람이 되었다. 듣기만 했다.      


나는 험담에 동조하지 않는다.

내가 간혹 남편 될 사람이나 남편에 대한 험담에 동조라도 할 때가 있었다. 동조라고 해봐야 “그래 진짜 나쁘네” 정도였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썩 좋아하지 않았다. 불쾌해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들은 방금까지도 내게 그렇게 남편에 대한 험담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막상 남인 내가, 친구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 험담에 수긍하는 것조차도 불쾌해했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동조조차 하지 않았다.   



            


Jean Béraud, Student Brasserie, 1889, Sotheby's


“넌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라는 말이 내겐 너무 불쾌하고 불편했다.     


내 친구들이, 내가 이 말을 들을 때의 상황을 고려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힘들었음을 이해는 한다만 나로서는 꽤나 서운했고 꽤나 불쾌했다.

이 말을 한 번만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곤 했다. 나는 여러 번 이 말을 들은 셈이다. 불쾌한 이 말은 여러 번 들을수록 점점 더 불쾌해질 뿐이었다.


나는 혹시 내가 예민한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미혼인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고는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 역시 한결같이 불편하고 불쾌하다고 했다.     


나는 종종, 내 불쾌함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래서 이 말을 들을 당시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꼭 결혼하겠노라고 말하고는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내 말은, 반쯤은 진심이며 반쯤은 거짓이었다.     


어렸을 때는, 아마도 서른을 전후해서는, 결혼을 통과의례로 여겼다. 그저 남들이 다하니까 나도 결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결혼을 결심한다고 해서 갑자기, 어느 날, 배우자가 생기지 않았다. 점점 초조한 마음만 커졌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일 때, “넌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라는 말을 청첩장을 받으며 듣고는 했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의 힘겨움을 토로한 말임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내 입장에서는 친구들의 그 말이 좋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에게 “이제라도 너도 결혼하지 마”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 달라졌다. 결혼 생각이 생길 때는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가 아니었다. 일이 힘들어서 쉬고 싶거나 전환이 필요했을 때, 결혼 생각이 생겼다.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 솔직한가 싶지만 사실이다.

고백하자면 지난 상반기를 포함한 내 모든 연애는 그랬다. 일이 생각처럼 안 풀리자 결혼이나 할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게 진실하지 않던 지난 사람들에게 굳이 미안한 마음은 없다.


반대로 일이 쏟아져서 매일 야근을 하고 밤을 새우는 한이 있더라도, 적어도, 내 피, 땀, 눈물에 헛되지 않은 결과가 나올 때면, 나는 결혼 생각이 없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워커홀릭인가 싶다. 그리고 지금이 딱 그렇다.

(이렇게 지난 한 달 반 동안 글을 업데이트하지 못함에 대한 비겁한 변명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숨을 쉴 틈이 없이 바빴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결혼에 회의감도 점점 커졌다. 이유는 매우 많았다. 내 이런 생각에,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라고 했던 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행복해야 할 순간에, 내 친구들은 내게 결혼하지 말라고 말하고는 했다. 친구들이 이 말을 하기까지, 복잡하고 쉽지 않은 상황이 있었음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해서 힘들어질 바에는, 혼자 사는 게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나는 지금도 혼자이지만 이미 충분히 힘들다. 그런데 전혀 다른 상황에서 사십 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같이 사는 게 쉬울 리는 없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한다. 적어도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불행할 확률은 더 낮아질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넌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라는 말이, 불쾌하고 불편하다.


이 말은 내 결혼에 대하여 너무나 쉽게, 이야기하고 마는 것처럼 들린다.

내게 이 말을 했던 사람이 그러하였듯이, 내 결혼은 내가 결정할 문제이다.

내 결혼이 나를 배려하지 않는 누군가의 말에 좌우될 부분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너는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라는 이 말이, 그렇게 싫다.


무엇보다 내게 이 말은, 나에 대한, 나의 감정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말이다. 나는 늘 듣는 사람이 되어, 동조조차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정확히는 동조조차 할 수 없다고 보는 게 맞는 것도 같다. 그렇다고 배려 없이, 무책임하게, “이제라도 혼자 살면 되잖아”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내게 말을 했던 배려 없는 친구들에게 보란 듯이, 일부러 남편 칭찬만 하면서,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생각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난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해서 행복해질 거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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