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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Oct 27. 2019

#46 네겐 너무 사소한, 약속에 대한 예의

네가 깨뜨린 것은, 약속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였다.




약속은 지키는 게 기본 전제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렇다. 어린 조카도 안다. 그래서 그렇게 드라마든 영화에서든 손가락 걸고 약속하질 않나.


나는 약속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있다. 일종의 결벽증이다.

나는 나와의 약속은 못 지키더라도 다른 사람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고 한다. 피해 주고 싶지 않은 성향 탓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로 인한 상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와의 약속을 쉽게 저버린 그 사람들은 내게 "사람"에 대한 실망을 남겼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그들 같이 남을 실망하게 하는, 남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는, 그런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는 내 가족이나 연인 친구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약속을 했다. 

나는 늘 약속을 지키려고 무던히 노력했으며 거의 지켰다. 피치 못할 몇 번의 상황일 때는 지킬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도 그때의 그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다.



누군가는 습관적으로 나와의 약속을 어그러트렸다. 

그 누군가는 한때는 내게, 소중한, 친구, 동료, 연인이던 그런 사람들이었다.


약속이 깨어지는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화가 났고 실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허탈함이 커졌다. 무엇보다도, "역시나 했는데 이번에도 또 약속을 지키지 못하구나" 싶은 그런 씁쓸함이, 가장 컸다. 그들 중 누군가는 뻔뻔하게도, 약속은 깨지는 게 기본 전제라고 하기도 했다. 그때는 화가 나기보다 "그래, 넌 역시 그 정도구나" 싶은 생각만이 남았다.


한편으로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인내하며 그들과의 관계를 지속한 내가 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그 무의미하며 쓸모없는 관계를 놓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나와의 약속을 너무나 쉽게 깨버린 그런 사람들과의 그 헛된 관계를 말이다.




Edward Hopper, Automat, 1927, Des Moines Art Center



그 시간들을 지나면서, 나는 약속에 대한 내 입장을 정했다.

1. 다른 사람과 헛된 약속을 해서 상대를 기대하게 하지 말자.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면 하지를 말자.

2. 내가 작성한 보고서나 내가 해야 할 일이 100%의 완성도를 보이지 못할 지라도 적어도 마감 기한은 잘 지키자

3. 혹시, 나 스스로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할 지라도, 적어도 다른 사람과의 약속은 어기지 말자


나는 극단적인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약속들을 거의 지켰다. 특히 시간 약속은 더욱더.

내가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지키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시간 약속은 적어도 나와 약속한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다. 주말이라서 차가 막힐 상황이 예상된다면 적어도 그만큼 더 빨리 출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게 귀한 시간을 내어준 상대에게 그 정도의 예의는 지켜주는 게 맞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겠다.

아마, 나는, "기다려봐서, 그래서 그 마음이 어떤지 아니까"라고 답할 것 같다.


기다림의 시간이 아무리 짧을 지라도 그 시간이 즐겁고 설레기만 하지는 않다. 기다려 본 사람은 아마 다 알 것 같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이 보이는 호퍼의 그림 속 여인이 어떤 마음일지 말이다. 그녀도 식당에 막 들어왔을 때는 설렘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지쳤을 것 같다. 약속 시간에 늦었던 그들을 기다리던 그때의 나처럼.


나와의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피치 못할 사정은 없었다. 정확히 말해서 그들의 지각은 습관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미안해하지 조차 않았다. 호퍼의 그림 속 남자처럼, 길거리에서 기다리는 일은 늘 내 몫이었다. 한 번은 너무 화가 나서 근처에 있다가 일부러 30분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나와 약속한 상대자는 그로부터 30분이나 더 늦게 나왔다. 그러니까 정해진 시간보다 1시간이 늦은 셈이다. 그 이후에 그 친구랑은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Edward Hopper, Sunday, 1926, The Phillips Collection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약속은 어그러졌고 관계는 조각나 버렸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은 일종의 스터디 모임을 하기로 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기혼이었다. 그중 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친구는 신혼을 보내고 있는 친구였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횟수는 한 달이나 두 달에 한번, 다만 일주일에 한 번씩 서로의 진행상황을 확인하기로 했다.

스터디 모임은 이제 막 결혼한, 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그 친구가, 결혼을 생각하기도 훨씬 전부터, 계속 여러 차례 진행된 상황이었다. 변함이 없던 사실은, 그 친구가 미혼일 때나 기혼일 때나 늘 모임의 주최자였으며 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주일마다 진행 상황을 확인했을 때 그녀는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제대로 약속을 지킨 적이 없었다. 도대체 이 모임을 왜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오랜 시간 그녀의 그 무책임함을 감당했던 나는 결국 완전히 지치게 되었다. 결혼을 앞두고 다시 스터디 모임을 하자는 그녀에게 나는 몇 번이나 말했다. 무리가 되는 상황이면 약속을 하지 말라고 말이다. 누가 보아도 그녀가 스터디 모임을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될 만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스터디 모임을 하기로 했다.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결혼 핑계, 남편 핑계, 시댁 핑계 등등의 핑계까지 늘었다. 그녀는 이번 모임은 어려우니 다음에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때 생각했다. 모임의 주최자가 이렇게 책임감이 없을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앞으로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마 앞으로 그녀와 나 사이의 다음 따위는 없을 것 같다.


다행이었다. 그녀가 약속을 깨어주면서 그녀와 나의 사이가 산산조각 났다. 덕분에, 나는 그녀와의 약속을 기다리고 기대하면서 헛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어졌다. 




모든 관계에 있어서, 가족이든, 친구이든, 동료이든, 연인이든, 적어도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리라서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되면 차라리 처음부터 약속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그럼에도 그 약속을 했고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면 적어도 사과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약속이 주는 그 기대보다도, 지키지 못한 약속이 주는 실망감과 씁쓸함은 훨씬 크다.

그리고 그 감정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혹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으로 이어진다.

그 감정은 약속을 한 두 사람 혹은 몇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긋나게 하고 만다.

적어도 상대가 소중하다면, 상대와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면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갖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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