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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테오 Nov 30. 2021

#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그런 발걸음으로



2021년의 마지막 한달을 앞둔, 11월의 마지막날,
출근을 앞둔,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
문득 생각난 옛 연인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올해의 첫 브런치를 써봅니다. 어쩌면 뒤늦게 사랑을 깨닫고 지난 연인에게 달려가는 그런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어쩌면, 호퍼의 그림, 호텔방 속 주인공이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일상에 지친 주인공은 도망치듯 이것저것을 캐리어에 담고 발걸음이 닿는 아무곳으로나 정처없이 향했을 겁니다. 그리고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도시 한켠에 다소 외진 호텔에 짐을 풀었을 겁니다. 그런데 짐을 정리하던 주인공은 갑자기 짐 속을 이리저리 찾으며 일기장을 꺼내듭니다.

문득 생각했을 겁니다. 내가 왜 이곳에 있을까,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하고 말이죠. 아마도 주인공은 일기장을 한줄도 더 채우지 못 했을 겁니다.


Hotel Room
1931
Oil on canvas. 
152.4 x 165.7 cm
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 Madrid



아름답고 감성가득한 문체로 포장하기는 했지만,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도저히 모르는, 너무 지쳐버려 쉬고 싶은 마음 한켠을 달래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한줄한줄 써내려가봅니다.

이제와 지난 인연에게 편지를 쓰고 그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너무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마음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차라리 짐을 싸서 도망치듯 떠나 모두와 연락을 끊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것조차 무책임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딘듯 공허하고 어딘듯 허무한 이상한 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서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해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돌아오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구독자수는 늘어갔고 누군가는 좋아요를 눌러주셨습니다. 그만큼 제 마음의 빚도 커져갔습니다. 너무 무책임하고 너무 나태한 제 자신을 반성하면서도 왜인지 쉽게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 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바빴다는 비겁한 변명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 때의 나를 마주하기가 어려웠다는 그말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힘들게 꾹꾹 한자한자 젂어내려가던 그 밤, 그 새벽들, 지금봐도 울컥하게 하는 그때의 나를, 마주하기가 새삼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것은 또다시 견딜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죠?
그 이유가 지독한 사랑 때문이면 좋겠지만, 어쩌면 지독한 사랑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미래의 나에 대한 그런 지독한 사랑 때문이요.

일하다 만난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일, 그 어디쯤에서 지쳐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번아웃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일이 싫은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싫을 뿐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 다들 그런 이유로 번아웃이 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번아웃일지도 모르는 11월의 마지막날,
출근 전 들른 회사 앞 카페에서, 남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써봅니다.
저는 아직, 언제나, 온전한 저 이고 싶어서요.
물론 회사의 내가 온전한 저일 수는 없으니까요.

내일 제가, 올해의 두번째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어쩌면 북받친 마음으로 오늘 퇴근길에, 어쩌면 밤이 깊은 새벽에, 12월을 하루 앞둔 묘한 설렘으로, 두번째 글을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주인없이 비어있던 이 공간을 찾아주시고 읽어주신 분들께, 스치듯 머무르셨더라도, 감사를 전합니다. 당신의 그 발걸음이 있어, 용기를 내어 다시 글을 써보려합니다.

다시 보니 그림 속 주인공은 고민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일기장에 오늘 어떤 이야기를 쓸지, 내일은 어디로 향할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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