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나는 다시 출발선에 선다.
최근 16km 트랙 훈련을 했다. 그날 제일 마지막 그룹의 목표는 SUB4였다. 5번의 풀코스 마라톤 중 단 한 번 성공한 적이 있다. 그만큼 SUB4는 노력이 필요했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SUB4 그룹뿐이었는데, 대회 페이스보다 조금 빠른 5’00”으로 달린다고 했다. 평소 편하게 호흡하면서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는 속도는 5’40” 정도였다. 5’20”도 심박수가 180까지 올라가는데 5’00”으로 16km를 달린다니. 3km쯤 따라가다 낙오할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다행히(?) 앞에서 5’00” ~ 5’15” 사이로 이끌어 주셨다. 이 정도도 평소 같으면 오래 따라가기 버거운데, 그날따라 다리가 가벼웠고, 호흡이 평온했다. 조금 쳐지다가 다시 붙고, 긴장을 풀었다가 다시 피치를 올리며 10km까지 곧잘 따라갔다. 사실 6km 즈음부터 낙오하고 내 속도로 달리고 싶었다.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마라톤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니 10km만 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긍지와 권태가 밀고 당기는 사이, 아득했던 km 수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7km - 아직 반도 안 뛰었다고?
8km - 이제 반 남았다고?
10km 이후 - 남은 km을 트랙 한 바퀴인 400m로 나누어 뛰어야 할 바퀴 수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지구력이 제법 성장한 걸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평균 페이스 5’19”, 최고 페이스 4’54”, 평균 심박수 154 bpm, 최대 심박수 175 bpm으로 훈련을 마무리했다. 16,000m를 달리는 동안 대부분의 심박수가 최대치의 70~80% 정도에 머물렀다는 게 놀라웠다. 심장이 터질 만큼 뛰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혼자서는 힘들까 봐 시도하지 않았던 페이스를 함께 달리며 해냈다.
마음이 가진 힘이 이렇게나 크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딱 그만큼만 해낼 수 있다. 못 한다는 건 해보지 않은 것에서 오는 두려움이다. 안 된다는 건 해본 것이 만들어낸 익숙함이다. 이날 훈련을 통해 나는 쉽게 못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뇌가 규정 지은 한계보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 그렇게 두려움과 익숙함을 부수며 앞으로 나아간다. 익숙한 속도와 거리, 고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극에 부딪히며 우리는 강해진다.
혼자서는 틀을 깨기 어렵지만, 우리는 같이의 힘으로 또 한 번 해냈다. 크고 작은 성취는 우리를 더욱 끓어오르게 만든다. 마라톤을 완주하는 건 잘 달리는 사람이 아니다. 출발선에 서 있는 건 도전하는 사람이다. 마침내 메달을 목에 거는 건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다.
할 수 없는 건 없다, 하지 않을 뿐.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나는 다시 출발선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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