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리는 이유
까무잡잡한 피부에 작은 키. 어릴 적 사진을 보면 팔다리에 흉터가 많다.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자주 넘어지고, 금방 일어섰다. 학창 시절에는 늘 운동장과 체육대회를 좋아했다. 운동 신경이 두루 좋았던 내가 가장 잘했던 건 계주다. 역전승을 꿈꾸는 마지막 주자는 아니더라도, 영예로운 반 대표로 자주 달렸다.
달리기와의 오랜 인연 덕이었을까. 대학에 들어간 후, 많은 홍보 글 중에서도 단연 연합 러닝 동아리의 모집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나의 첫 러닝이 시작됐다. 처음 달린 곳은 남산 소월길이었다.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달리기도, 네모난 모래 운동장을 벗어나 시멘트와 벽돌로 덮인 땅을 밟고 달리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5km는 200m짜리 운동장을 25바퀴나 돌아야 한다는 것을. 오늘 달릴 곳은 평평한 운동장이 아닌 오르락내리락 반복되는 남산이라는 것을. 그렇게 도로를 넘나들며 매운맛 달리기를 경험했다.
단거리에서 장거리로, 자음 두 개 차이일 뿐인데. 이렇게 다른 두 달리기에 왠지 속은 기분이 들고, 자존심이 퍽 상했다. 맨 앞에서 시작한 탓에 많은 사람을 앞으로 보냈지만, 운영진 선배들은 낙오하는 나를 두고 가지 못했다. 가쁜 숨과 아픈 다리 어느 틈을 비집고 꿈틀대는 고마움과 미안함, 믿었던 나에 대한 실망이 한 데 섞였다. 욕심과는 거리를 두며 살아온 나를 처음으로 자극했던 순간이었다. 잘 해내고 싶었다.
몇 달을 혼자, 또 같이 땀 흘렸다. 한 달이 지났을 즈음 숨통이 트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때 역대급 페이스!라고 말했던 속도가 6’ 38”/km이었다. 나보다 늦게 달리기 시작한 사람들도 대부분 이 정도는 거뜬히 뛰는 것을 보고, 나는 달리기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계속 달리는 건 달리기가 좋아서다. 시작은 나를 좌절하게 했지만, 그 덕분에 남들보다 많은 성장을 경험하며 점점 더 나은 내가 되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6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완주하기까지의 노력, 달리는 모든 걸음과 나를 스치는 선수들, 그 뜨거운 삶 속에서 나의 속도로 나만의 레이스를 할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게 내가 달리는 이유다.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주는, 새로운 나를 만나게 하는 달리기를 통해 나는 비로소 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