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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권 Jan 27. 2019

서울에서 가장 싼 놀이기구

너도 뛰고 나도 뛰고 심장 뛰는 버스 타기.

한국을 제대로 맛보려면 아무래도 버스를 타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서서 버스가 오는 걸 기다리면 앞에 와서 설 텐데

굳이 정류장 맨 끝에 있는 버스까지 지각한 중학생처럼 뛰어가서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

그 꼴이 보기 싫은 쿨한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비웃으면서 버스를 기다리지만 이미 다수의 승객을 확보했다고 생각한 버스기사는 당신 앞을 지나친다. 어쩔 수 없다. 너도 뛰고 나도 뛴다. 

일단 버스에 올라타면 0.005초 만에 센서에 지갑을 찍고 얼른 자리를 잡아야 한다.

0.001초라도 늦게 찍으면 어른 아이 여자 남자 상관없이 뒷사람은 

"빨리빨리 찍지 뭐하는 플레이?!!! “라는 강한 에너지를 쏘아 대기 때문이다.

오 우리는 동방예의지국 양반들이기 때문에 절대 대놓고 뭐라고 안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살벌한 기운만 팽팽하게 감돈다.

자, 그 순간에도 긴장을 놓지 말자

버스는 0.00098초 만에 F1 레이서 Michael Schumacher를 능가하는 동물적 스타트를 보이며 

관성의 법칙을 조롱할 것이다.

버스 앞 유리창을 슈퍼맨처럼 뚫고 앞차 트렁크에 스파이더 맨처럼 붙고 싶지 않다면 무조건 보이는걸

잡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당신이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졌거나 스노보드로 단련된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자리에 앉는 걸 권장한다.

하지만 노약자석이나 임산부석이라고 쓰인 좌석은 비워둬야 한다. 아니 비워두는 게 편하다.

나도 피곤한 사람이라고! 좀 앉으면 어때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앉았다간 어르신들은 꼭 당신 앞에 서서 불쌍하게 힘들어하거나 곧 호통이라도 칠 기세로 째려본다.

노인들이 버스에 올라탈 확률이 어느 도시보다도 많은 걸 감안하면 뒷좌석에 기어가서 찌그러지던가 튼튼한 손잡이를 잡고 균형을 잡는 것이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훨씬 아껴줄 것이다.

이어폰을 꽂고 매일 듣는 똑같은 음악을 듣고, 오지도 않는 메시지, 이메일을 몇 번 확인하고 몇 번의 급정거와 미친 속도로 인한 구역질을 참으며 창밖의 황홀한 황사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샌가 당신의 도착지에 

버스가 다다른다. 

마지막 관문.

센서에 지갑 찍기

버스 타기의 마지막을 장식할 이 부분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그야말로 김연아의 마지막 스핀 돌기 같은 모든 인내심과 스피드, 근성이 집약된 피날레가 될 것이다.

왜 내릴 때 꼭 다시 지갑을 갖다 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 그냥 내려라.

다음날 버스에 오를 때 1250원 대신에 2500원이 찍히는 걸 보고도 쿨하다면. 

버스의 뒷문은 천명이 내리든 한 명이 내리든 정확하게 2.5657초 동안만 열리고 닫힌다.

그 안에 센서에 지갑을 빛의 속도로 찍고 소닉처럼 뛰어내리려면 보통 숙련이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초보자들은 지갑을 미리 찍고 내릴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데 혹시라도 눈치 없이 센서 앞에 서있으면 머리가 엄청 크고 피부가 고무로 만들어졌을 것 같은 아저씨의 손이 당신의 허리를 싸악 스치면서 당신에게 생뚱맞은 백허그를 선사할 것이다.

그렇다, 정신없는 버스로 몸과 마음이 쇠해졌을 당신에게 꼭 필요한 백허그.

뭐!?? 어이없다는 듯이 아저씨를 쏘아봐도 소용없다. 아저씨의 1250원을 절약하려는 노력에 당신이 방해가 되었을 뿐이다.

누군가 이 버스 시스템을 만든 사람은 평생 버스 안 타고 운전만 하는 사람이 분명하다.

한국사람의 빨리빨리 특성을 고려했을 때 이건 마치 키가 작고 배가 엄청 나온 뚱뚱한 사람이 하얀색 스판덱스 쫄쫄이를 위아래로 입고 다니는 것처럼 나쁜 점을 더욱 돋보이도록 하는, 똑똑한 센스의 부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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